참고: <하마터면 깨달을 뻔>, 크리스 나우바이어
- <하마터면 깨달을 뻔>, 크리스 나우바이어
목소리는 빅스비지 “내”가 아니다
진화의 어느 시점에 우리의 사고와 언어가 너무 강하게 얽혀버렸고, 우리 삶의 주도권을 장악해버린 듯한 “목소리”가 곧 “나”라는 느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우리는 종종 목소리와 사용자를 혼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에도 뇌는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 이야기는 내면의 목소리 형태로 들려오곤 하죠. “졸려”, “배고파” 등의 단편적인 이야기로부터, “조금 심심한데, 친구한테 먼저 연락해볼까?” 같은 나름의 논리와 구조를 갖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좀비 사태가 발생하면 어떡하지?”)
내면의 목소리는 마치 영화의 내레이션의 느낌을 띄기도 합니다. 마치 현재 상황에 대한 해설이나 나라는 주인공의 마음 상태에 대한 독백처럼요. 가자니가 박사는 그런 내레이션이 언어를 처리하고 생성하는 좌뇌를 거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좌뇌에서 만들어지는 내면의 주절거림과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경과학적 실험들이 있습니다.
좌뇌는 상황을 해석해서 해설(이야기)을 만든다
우선, 가자니가 박사의 분리뇌 실험인데요. 뇌전증의 치료를 목적으로 뇌량(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부분)을 절단한 환자들 대상으로 한 실험입니다. “좌뇌와 우뇌가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게 될 때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분리뇌 환자의 좌뇌에게는 닭 발 사진을, 우뇌에게는 눈이 덮여 있는 풍경 사진을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각 뇌에게 새로운 사진들을 보여주며, 처음 보여준 사진과 관련성이 있는 사진을 고르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때, 좌뇌는 닭 사진을, 우뇌는 눈을 치울 수 있는 삽 사진을 골랐습니다.
이후 환자에게 왜 닭발과 삽을 골랐냐고 물었습니다. (언어 처리는 좌뇌에서 하기 때문에 좌뇌에게 물어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좌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닭발은 당연히 닭과 연관이 있는 것이고, 삽은 닭똥을 치울 때 필요하니 연관성이 있어 골랐다”고 답했습니다. 우뇌는 눈과 눈 삽을 연결한 것이지만, 좌뇌는 닭발 과 닭, 그리고 다시 닭과 삽을 연결해서 개연성은 있지만 결국 소설일 뿐인 이야기를 뚝딱 지어내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크리스 나우바이어의 말을 빌리면, 좌뇌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증거를 토대로 아주 손쉽게 이치에 맞고 그럴싸한 설명을 전개하지만, 사실이 아닌 설명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좌뇌가 솔직하다면, “글쎄요, 우뇌랑 얘기를 안 한지 너무 오래돼서요.” 이런 답을 했어야 합니다.
또 다른 실험이 있습니다. 분리뇌 환자의 우뇌에게 “걸어라”는 암시를 했더니, 환자는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왜 걷냐고 물으니 환자는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러 간다”고 답했습니다. 우뇌와 소통할 수 없게 되어버린 좌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보만을 활용해서, 주변 상황, 그리고 자신의 내적 상태를 돌아보며 그럴싸한 이유를 지어냅니다. 좌뇌는 우리가 한 행동의 진짜 이유를 모르니까, 상황에 맞춰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좌뇌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데 아주 특별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비록 그것이 맞는 설명이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좌뇌와 우뇌가 아주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는 좌뇌의 얼렁뚱땅 그럴싸한 이야기 공장이 우뇌에 의해 억제되거나 하지 않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들이 또 있습니다.
흔들다리 효과와 잘못 짚은 오인
우선, 흔들다리 같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만난 이성에게 더 강한 매력을 느낀다는 실험이 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생리적 각성의 원인이 흔들다리 때문인데, 뇌는 이걸 이성에게 느끼는 설렘이나 매력으로 ‘잘못 짚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뇌는 신체에서 오는 변화나 각성 신호를 감지할 때, 주변 상황이나 맥락을 보고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추론합니다. 실제로 기본 감정이 6~7개라고들 말하지만, 진짜 감정은 두려움(공포) 하나 뿐이며, 나머지는 추론과 이야기가 가미된 감정이라는 최근의 신경학 연구가 있습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 피험자에게 몰래 흥분제를 투여하고, 행복 또는 분노를 연기하는 사람과 함께 있도록 했습니다. 이때 피험자는행복한 연기를 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흥분의 이유를 행복에서, 화난 연기를 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흥분의 이유를 분노에서 찾았습니다.
애매한 얼굴 표정을 다양한 이미지와 함께 배치하면, 우리가 읽어내는 그 사람의 표정과 감정도 달라집니다. 가령, 무덤과 함께 배치되면 슬픔을, 따끈한 스프와 함께 배치되면 배고픔을 느끼는 식으로요.강압적인 폭력에 시달리며 차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온 얼굴에 표출하고 있는 한 흑인 청년을 상상해보세요. 하지만 맥락을 조금 보태봅시다. 때는 2024년 파리 올림픽이고, 그는 방금 1위를 차지하면서 금메달을 확정지었습니다. 사실 그의 찌뿌리는 표정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승리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온 얼굴로 표출하고 있던 것입니다.
우측 선호 편향
책상에 완전히 똑같은 물건을 여러 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사람들에게 “어떤 물건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 하고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가장 오른쪽에 있는 물건을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왜 그걸 고르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좌뇌가 아주 기막힌 이유를 지어냅니다. “아, 이게 색깔이 좀 더 예뻐 보여서요.” “질감이 더 좋아 보여서 마음에 드네요.” 같은 식으로 말이죠.
위의 사례들을 보면, 이 우리의 빅스비(내면의 목소리)가 지어내는 이야기는 좌뇌에게만 말이 되면 오케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죠. 좌뇌는 가지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끊임없이 현실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심지어 정보가 부족하거나 틀렸을 때도, 어떻게든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떠듭니다. 마치 평생 동안 우리 귀에 대고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야. 분명 그럴 거야. 난 틀림이 없거든.” 하고 속삭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건대, 그 목소리는 앱이지 “사용자”인 나와는 다른 무엇입니다. 이 목소리가 “나”라고 하기에는, 우리는 이 목소리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통제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언어의 힘이 세서, 역으로 끌려다니기도 합니다. (절대 시큼한 레몬 과즙이 혀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나 공격수와 골키퍼가 숨 헐떡이는 긴박한 1대1 상황을 상상하지 마세요.)
내면의 목소리가 곧 나라면 나는 (내킨다면) 그 내면의 목소리가 잠잠해지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마치 어수선한 교실을 “조용히 해!”라는 더 큰 소리로 묻어버리려는 시도에 불과한데요. 그 메아리를 듣고 다른 아이가 분명 “너나 조용히 해!”라고 외치면서 더 큰 소리의 “조용히 해!!”가 교실에 울려 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목소리에 반응을 해주지 않고 저절로 흘러가게 두는 것입니다. 목소리는 그저 떠올랐다가 사라질 뿐이거든요. 빅스비 같은 어시스턴트처럼 이용하면 됩니다. 빅스비는 우리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네 주인님!” 이렇게 반응을 해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죠.
해석장치에 대한 자각: 미소 짓기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해석장치(좌뇌)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막 지어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석과 해설의 대상이 다른 사람을 향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부족한 정보와 편견을 바탕으로 B급 소설 한 편이 뚝딱 써지거든요. 해석장치를 의식하고 있으면, 그 해석을 채택할지 말지 선택권을 갖게 되고, 이야기를 예전처럼 심각하게 보지 않게 됩니다. “해석장치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신경계에서 생리적 반응을 덜 일으키게 되는 것이죠.”
좌뇌의 해석과 해설은 강력한 기능입니다. 다만 너무 곧이곧대로 믿지 말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안의 해석기라는 것의 존재를 인식하면 “해석기가 또 판단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구나. 이 세상이 어떤 곳이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지.”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만으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깁니다. 이제 이야기에 씩 웃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타인에게도 이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종류의 해석기를 탑재하고 있으니까요. 말을 넘어서, 타인의 행동, 태도, 선택 역시 “즉흥적인” 생물학적 기능으로 보고, 슬며시 웃어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좌뇌의 이야기는 곧잘 행동과 태도, 그리고 선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즉흥성에 대해서는 또 한 번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행동과 말은 그냥 일어나기도 합니다.)
+ 크리스 나우바이어는, 이 해석기의 작동이 너무나 습관적이라서 마치 생리 현상처럼 되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손톱이 자라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또,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믿음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생각이나 믿음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인 해석장치 : 그 이유가 진짜 이유일까?
우리의 빅스비(좌뇌)는 당신의 행동 이유(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려고 하는지)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표면적인 차원에서 즉흥적으로 생성합니다. 하지만, 빅스비가 제시하는 행동의 이유와 생각의 흐름은 근본적, 궁극적 이유가 아니라, 가장 그럴듯한, 근접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비가 오길래 우산을 펼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근접 이유는 비가 오니까. 하지만 조금 더 깊은, (유사) 궁극적 이유는 “비에 맞으면 감기에 들어 생존과 번식의 과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으니까”일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이유는 자신의 일관성과 주체성, 도덕성을 변호하기도 합니다. 빅스비가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그럴듯한 설명(근접 원인)보다 DNA의 설계대로 발생한 뇌에는 더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이유가 따로 있을 수 있습니다. 의식적인 노력과 인간 지성으로 조금 더 심층적인 이유를 파낼 수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 있지요. 어쩌면, 가장 심층적인 것은 언어의 두레박으로 퍼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든 행동과 선택에 이유를 붙이려고 시도를 하지만, 어떤 일들은 분명 그냥 일어납니다. “나는 내 모든 행동을 계획하고 책임지고 있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일정 같은 경우는 분명 사전에 계획할 수 있겠지만, 모든 행동의 세부 사항을 일일이 의식한다면, 밖에 나가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입니다. 뇌는 인지적 구두쇠라 별일 없다면, 대부분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모든 이유가 미리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이유가 행동이나 사건 발생 이후에 자라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데에 관여된 모든 요소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 요소가 날씨가 될 수도 있고, 배고픈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배고픈 판사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석방 심사에서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판사가 배가 고픈가’다는 겁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요소가 고작, 판사가 판결 전에 ‘밥이나 간식을 먹었나’인 것입니다.
생각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뇌는 한 번에 한 단어씩을 짜맞춰서 의식에 올립니다. 뇌도, 의식도, 그 문장이 완성되기 전에는, 그 문장이 어떤 단어로 끝맺게 될지 전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말이 가질 수 있는 함의를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단어를 짜맞추지는 못합니다. 한 문장이 조립되고 나면, 그 한 문장을 되뇌면서 작업 기억 공간(일시적인 기억 저장소)에 올리고, 그제야, 통합된 문장에 대해서 비교적 진지한 검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우리는 생각하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사밀한 공간에서 통합된 문장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편,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낼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의 82~85%가 실제로 소리를 내서 말할 때도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모니터링할 때 활성화 되는 뇌 부위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도 겹치고요.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활용해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보고, 그걸 들어보는 시뮬레이션을 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1차 원고(내면의 목소리)를 더 나은 버전으로 개정할 수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리허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을 검토하는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로 우리는 작업 메모리의 용량에 구애받지 않고, 더 나은 생각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마음껏 개정할 수 있습니다.
의식은 정교한 리허설 기능을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