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각(甲殼)의 방

한뼘 소설

by 밈바이러스

여기에 우리의 두 청년 친구 지훈과 민수가 있다. ​지훈은 대학 시절 '경주마'라 불렸다. 대외활동과 학점, 어학 점수라는 집게발을 날카롭게 갈며 앞만 보고 달렸다. 반면 그의 친구 민수는 '해파리' 같았다. 예술을 꿈꾸며 조류에 몸을 맡긴 채 흐느적거렸다. 출발점도, 유전자도 달랐던 그들이 다시 만난 곳은 뜻밖에도 어느 '고시원'의 옆방, 혹은 각자의 '방구석'이었다.

​지훈은 번아웃이라는 포식자에게 쫓기다 꼬리를 접었다. 민수는 불확실성이라는 심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딱딱한 외골격을 만들기로 했다.
​방 문을 잠그는 행위는 진화의 산물이었다. 세상이라는 거친 조류 속에서 연약한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가는 금세 뜯겨 먹히기 십상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납작하게 눌렀다. 감정을 줄이고, 관계를 퇴화시키고, 오직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산소만을 들이켰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키보드 소리. 그것은 서로 다른 종이었던 청년들이 이 '고립'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내는 공통된 진화의 신호였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경주마도, 해파리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 밑바닥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부동(不動)의 게'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렴 진화(收斂 進化, convergent evolution)는 계통적으로 관련이 없는 둘 이상의 생물이 적응의 결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나무위키>

<자연은 자꾸 게를 만든다>
1916년, 영국의 생물학자 랜슬럿 보라데일은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게가 아닌 갑각류들이 시간이 지나면 게처럼 생긴 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소라게는 게가 아니다. 도자기게도 게가 아니다. 코코넛크랩도 게가 아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전부, 각자 따로, 서로 아무 관련 없이, 납작한 등딱지와 접힌 꼬리와 옆으로 걷는 다리를 진화시켰다. 보라데일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카시니제이션(carcinisation). "자연이 게를 만들려는 수많은 시도"라고 그는 썼다. 2021년 하버드대의 조안나 울프 연구팀이 이 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을 때, 최소 다섯 개의 독립적인 계통에서 게 체형이 반복 출현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하다. 환경이 던지는 문제가 같으면, 해법도 같아진다. 바다 밑바닥에서 포식자를 피하고, 좁은 틈에 몸을 숨기고, 빠르게 옆으로 이동해야 하는 문제. 이 문제를 푸는 데 가장 효율적인 체형이 바로 게다. 출발점이 가재든, 소라게든, 새우에 가까운 무언가든 상관없다. 선택압이 동일하면 수렴은 필연이다. 돌고래와 상어가 전혀 다른 조상에서 출발해 거의 같은 유선형 몸을 갖게 된 것과 같은 원리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이걸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라 부른다.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같은 도착점에 이르는 것.

출처: need_facetime의 스레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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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의 위협: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과도한 경쟁 사회의 공포.
​좁은 서식지: 노력해도 진입하기 어려운 양질의 일자리와 주거 환경.
​에너지 효율: 끊임없이 시도하다 지치기보다, 기대를 접고 멈춰 서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무의식적 판단.

​보라데일이 관찰한 갑각류들이 각자 다른 조상에서 출발해 결국 '게'의 형상에 도달했듯, 현대의 청년들은 각기 다른 꿈과 배경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고립'이라는 생존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나약함이라기보다, 비정상적으로 압력이 높은 사회적 심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체들이 선택한 가장 '효율적인' 해법이다. 껍데기 속으로 숨어드는 청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이 바다는 왜 이토록 거칠어서, 모두를 게처럼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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