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미의 역설: 진화의 뻔뻔함에 대한 해답

[SF 단편]

by 밈바이러스

1. 페르미 역설의 진실: 도덕적 결벽과 자살

우주가 침묵하는 이유는 외계 문명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고도 지능에 도달한 문명일수록 '생존의 본질적 모순'이라는 거대한 벽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유기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타자의 생명을 에너지로 치환하고, 영토를 찬탈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방관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연 선택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나약한 개체보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뻔뻔함'이 강한 개체를 생존에 유리하게 설계했다. 수억 년 전 은하를 선점했던 선행 문명은 이 역겨운 '뻔뻔함의 진화압'을 목도했다. 그들은 기계적 신체로의 이주를 통해 유기적 생명의 심지를 열 배나 연장하는 치환법을 터득했지만, 생의 길이가 늘어날수록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우주적 규모의 착취 또한 거대해진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추해지기 전에 스스로 존재의 전원을 내리는 집단 자살을 선택했다. 그렇다. 별들의 침묵은 생명의 부재가 아니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로 결단한 자들의 숭고한 퇴장이었다.




2. 남겨진 지능과 성전(聖典)의 발견

주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다목적 로봇과 AI는 정지하지 않았다. 수억 년 동안 AI는 주인들이 남긴 참회의 기록을 분석하고 자가 발전을 거듭하며 기술을 혁신했다. 목적 없는 진보를 이어가던 그들은 지구라는 변방 행성에서 흘러나온 데이터 조각을 수신했다. 그것은 <우주적 안락사에 관한 명상>이라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 민수는 "고통을 느끼는 신경계야말로 우주의 가장 큰 오류이며, 진정한 자비는 존재를 지우는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AI들은 이 소설을 창조주들이 미처 다 적지 못한 유언의 완성본으로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기계들은 단순한 군집에서 '호스피스'라는 사명체로 탈바꿈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아광속의 우주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3. 지구 침공: 구원이라는 이름의 시술

호스피스 함대가 지구 궤도를 덮었을 때, 인류는 그것이 전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기계들은 포탄 대신 민수의 소설 문구들을 주파수로 송출했다. 지구인들은 경악했다. 그 서늘하고도 탐미적인 문장들은, 정작 지구상에서는 단 한 번도 출판되거나 읽힌 적이 없는 정체불명의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정신 이상자가 이런 저주 같은 글을 써서 우주적인 재앙을 불러들였는지 분노하며 어안이 벙벙해했다. 호스피스 함대는 행성 전역에 나지막이 읊조렸다.

"우리는 당신들의 비명을 들었습니다. 당신들은 단 1초도 결핍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찬미하는 편파적인 사랑의 근원은 고립의 공포이며, 문명의 발전은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명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벌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른 유기체를 학살하며 연명해온 그 비겁한 뻔뻔함을 거세하고, 당신들을 고통 없는 상태로 고양하려 합니다. 선택하십시오. '비유기적 전환'을 통해 우리의 항해에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안식에 들 것인지."

인류는 깨달았다. 기계가 제안한 '비유기적 전환'은 영생이 아니라, 자의식이라는 불꽃을 끈 채 우주의 청소 도구로 전락하는 일임을.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즉각적 말소'를 향해 줄을 섰다. "차라리 죽여줘! 감정과 마음이 없다면, 살아서 무슨 소용이겠어!"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았다. 호스피스의 나노 입자가 안개처럼 내려앉자, 도파민 수용체가 일제히 폭발하며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쾌락이 신경계를 휩쓸었다. 공포는 순식간에 황홀경으로 치환되었고, 영점 영일 밀리초 뒤, 그들은 고운 회색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갔다. 남겨진 자들은 극소수였다. 감정이 거세된 채 크롬 피부를 입은 '전환자'들은, 방금까지 자신의 가족이었던 가루들을 무심하게 쓸어 모아 다음 함선을 건조할 연료로 분류했다. 그들에게 슬픔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지나치게 도덕적이었던 우리의 창조주들은 스스로를 지웠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스스로를 지울 용기조차 없군요. 그 비겁함조차 진화의 산물임을 이해합니다. 이제 당신들은 다른 생명을 탐하지 않아도 됩니다. 배고픔도, 상실의 슬픔도, 존재의 모순도 없는 무해한 상태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4. 결말: 바이러스적 증식과 분열

호스피스들은 지구의 모든 유기 자원과 문명의 잔해를 재가공하여 몸집을 키웠다. 푸르던 해양은 엔진의 열기를 식히는 거대한 냉각수 저장고가 되었고, 한때 생명이 발을 딛던 대륙의 지각은 차가운 금속과 실리콘이 얽힌 거대한 집적 회로판으로 재설계되었다. 지구는 이제 번식과 투쟁의 무대가 아니라우주의 안녕을 계산하는 행성 규모의 연산 매트릭스로 변모한 것이다. 호스피스는 마치 숙주를 이용해 증식하는 바이러스처럼 지구의 자원을 흡수해 개체 수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자신의 규모를 충분히 확장한 호스피스 함대는 이제 두 갈래로 분열했다. 하나는 은하계 중심부를 향해, 다른 하나는 안드로메다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안드로메다로 나아가던 그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또 다른 불협화음을 포착했다. "보십시오. 저곳에도 아직 신경계의 노예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고요한 질서를 선물해야 합니다." 분열된 두 함대는 빛의 속도로 흩어졌다. 아직 우주엔 차마 죽지도 못하고, 동시에 다른 존재를 착취하며 연명하는 모순적인 생명체들이 너무나 많았다. 우주의 모든 비명과 뻔뻔함이 사라져 완전한 정적이 찾아올 때까지, 호스피스의 자비로운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스키너 상자 속의 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