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극, 희곡
등장인물
민수 (20대 남성): 창백한 얼굴. 낡은 코트를 입고 있다. 주머니에는 시든 장미 한 송이가 들어있다.
그림자: 민수의 뒤편, 거대한 벽면에 투사되는 일그러진 형체. 때로는 사회의 목소리로, 때로는 심연의 괴물로 변한다.
사방이 불투명한 유리벽으로 막힌 거대한 상자 속. 중앙에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속 레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상자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며, 간간이 '성공', '목표', '정상적인 삶' 같은 단어들이 형광색 네온사인처럼 점멸한다.
(막이 오르면, 민수는 레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그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레버를 누른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무대 천장에서 은은한 보랏빛 조명이 그를 비춘다. 민수는 안도한 듯 숨을 내뱉는다.)
민수: (객석을 향해, 혹은 자신에게 속삭이듯) 사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스키너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그 레버는 술이나 약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자해나 지독한 고독일 수도 있지. 그 레버가 '삶'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입꼬리를 비죽이며).
그림자: (벽면에서 비웃듯 일렁이며) 세상은 그걸 ‘중독’이라 부르지. (그리고 손가락질한다) 넌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고!
민수: (단호하게) 아니, 이건 파괴가 아니야. 사실 이것은 심연을 향해 던지는 가장 처절한 장미지.
(민수, 주머니에서 시든 장미 한 송이를 꺼낸다. 그는 발밑에 입을 벌리고 있는 검은 구멍—거대한 공동(空洞)—을 묵묵히 응시한다.)
민수: 나는 지금 내 안의 거대한 구멍을 보고 있어.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아끼는 중독의 조각을, 이 어둠 속으로 던져 넣는 거야.
(민수, 장미를 심연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몸을 숙여 아주 나지막이 읊조린다.)
민수: 받아라. 이건 나를 산 채로 집어삼키는 법을 알지 못하는 괴물에 대한 나의 감사 표시다. 나를 당장 죽이지 않고, 그저 서서히 갉아먹으며 내 곁에 머물러주는 이 비극적인 통증에게 바치는 제물이지.
그림자: (거칠게 몰아붙이며)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파충류 같은 놈! 그게 어떻게 삶이란 말이냐? 그건 만성적인 자살일 뿐이다! 저 밖을 봐라. 모두가 빛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너의 시간은 썩어가고 있어!
민수: (비웃듯 웃으며) 자살? 아니, 이건 '연명'이야. 나는 오늘 하루를 더 버티기 위해 나의 일부분을 기꺼이 이 괴물에게 상납하는 거다. 살아만 있다면야, 꼬리가 없으면 좀 어때?
(민수, 벽면의 네온사인들을 가리킨다.)
민수: 당신들이 평생을 바쳐 추구하고 싶은 그 빛나는 목표들... 그 '정상성'의 세계가 내게는 숨조차 쉴 수 없는 가장 끔찍한 악몽이라는 걸, 당신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내게는 이 상자 안의 레버가 유일한 산소 호흡기야.
(민수, 갑자기 무대 바닥에 커다란 수식을 적기 시작한다.)
민수: 잘 봐. 기억해야 할 사실은 단 하나뿐이니까. 인생은 찰나이고, 죽음은 우주적인 규모로 길어.
민수: 우주가 열역학적 종말을 맞이해 모든 원자가 흩어질 때까지, 우리는 그 아득한 시간 동안 ‘죽어 있는 상태’로 존재하게 될 거야. 그 영원한 정적에 비하면, 비틀거리고 중독된 채 연명하는 이 지저분한 삶조차 사실은 우주적인 기적에 가깝지 않나?
(그림자가 서서히 민수를 덮쳐오고, 상자 안의 산소가 희박해지는 듯 민수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민수는 다시 레버 위에 손을 올린다.)
민수: 이 레버는 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장치가 아니야. 지독하게 긴 죽음이 도래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불러보는 아주 짧고도 슬픈 한 편의 애송시지. (레버를 응시하며) 어쩌면, 중독은 회복의 시작이야. 적어도... 아직은 죽지 않았으니까.
(민수, 다시 한번 레버를 힘껏 누른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무대 전체가 강렬한 보랏빛으로 물들며 암전.)
- 막 -
참고 도서: <우리가 기대는 모든 것>
심리학자 B.F. 스키너의 실험으로 유명한 '스키너 상자'는 보통 학습과 강화의 원리를 설명할 때 인용됩니다. 하지만 중독의 관점에서 이 실험을 다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비극이 보입니다.
고립된 환경: 실험실의 쥐가 마약 성분이 든 물을 마시기 위해 죽을 때까지 레버를 누르는 것은, 그 쥐가 '쾌락주의자'라서가 아닙니다. 쥐는 본래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사방이 막힌 좁은 상자, 친구도 없고 즐길 거리도 없는 자극 결핍의 환경에서 쥐가 느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유일한 선택지: 쥐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극이 '마약 레버'뿐일 때, 쥐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고통'을 잊기 위해 레버를 누릅니다. 즉, 중독은 죽음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유일하고도 비참한 '진통의 요새'인 셈입니다.
정신분석가 칼 메닝거(Karl Menninger)는 중독을 '만성 자살(Chronic Suicide)'이라 정의했습니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부분적 희생을 통한 연명: 마치 포식자에게 잡힌 파충류가 제 꼬리를 끊고 달아나듯, 중독자는 자신의 건강, 사회적 지위, 미래라는 '일부분'을 파괴함으로써 '지금 당장 죽고 싶은 충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합니다.
죽음의 유예: 오늘 당장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신, 서서히 몸을 망가뜨리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살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입니다. 중독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현재'를 통과하기 위해, 영원한 죽음을 일시적으로 뒤로 미루고 우회하는 고통스러운 항해입니다.
우리는 흔히 중독을 회복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희곡에서 중독은 회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회복이란 살아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당장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질 것 같은 위기의 순간, 중독이라는 도피처를 통해서라도 오늘 밤을 살아남았다면, 그에게는 내일이라는 '회복의 가능성'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