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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규 Jun 08. 2020

저는 이발사입니다.

배웠으면 써먹어라-학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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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학원을 등록하게 된 것은 김 원장 때문입니다. 김 원장에게 앞으로 뭐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을 떨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김 원장은  "이발사 하세요. 제가 헤어숍 하나 챙겨드릴게"라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순진했던 모양입니다. 김 원장의 미용실에는 늘 손님들이 북 쩍거렸습니다. 한 달 수입도 꽤 된다는 김 원장의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김 원장에게 물었습니다. "이 나이에 여성 고객이 오겠습니까?" 김 원장은 능청스레 웃음을 띠며 말했습니다. "남자 이발사 하세요." 저는 그때 '이용사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이발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말 한마디에 걱정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김 원장의 뒷배를 믿고 미용학원에 등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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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6년 전 일입니다. 한 적한 미용실에 혼자 이발하러 온 저에게 김 원장이 말을 건넸습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대낮에 오신 것 보니 직장인은 아니시죠?" 김 원장은 수다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여자 원장이라면 더 좋을까요? 어떨 때는 이런 남자 원장이 이발을 하는 것이 저는 더 편합니다. 김 원장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뭐 하는 사람 같아요?" 머리만 보면 그 사람의 인생도 안다는 김 원장의 수다에 제가 돼 물었습니다. 김 원장은 한치의 생각도 없이 말했습니다. "교수님 같은 이미지입니다. 혹시 대학교수세요?"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점쟁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스칠 즈음 김 원장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이시구나. 이미지가 선생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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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이 저를 대학교수나 선생님처럼 보인다는 관상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말솜씨 때문입니다.  그때 김 원장에게 저의 직업을 말해 주었습니다. 제 답변에 김 원장은 갑자기 들고 있던 가위와 바리깡을 내려놓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저의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강사님, 저희 직원들에게도 강의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수다스럽던 김 원장의 돌변한 태도에 저는 정중히 대답했습니다. "암요. 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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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발사가 되기 전, 기업교육 강사였습니다.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을 만난 때는 기업교육 강사로 활동한지 10년 차에 접어들었던 때입니다. 회사를 떠나면서 제 자신과 약속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강사 생활 10년 차에는 꼭 재능기부를 하자' 손과 손이 부딪쳐 박수소리가 나듯, 김 원장의 필요와 나의 목표가 잘 만났습니다. 김 원장은 동종업계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여러 미용실 소속의 미용사들이 모였습니다. 그해 나와의 약속, 재능기부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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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6년 전, 그 일이 마음에 빚이라고 했습니다. 강사료 한푼 받지 않았던 저를 늘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미용학원에 등록하러 가던 길에 김 원장과 통화했습니다. 그의 응원 한마디가 귓가에 맴 돌았습니다.  "손 강사님한테 받은 사랑, 이렇게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 이제 맘이 편합니다." 저는 김 원장에게 말했습니다. "원장님, 감사드려요. 꼭 자격증 따서 원장님 가게 앞에 이발소 차릴게요. 하하" 미용학원으로 가는 길은 좁은 골목길입니다.  좁은 골목길 때문인지 가는 길 내내 가슴이 떨리고 긴장되었습니다.  허름한 대문 옆에 쌓인 쓰레기 더미, 작은 목판 하나가 버러져 있었습니다. '하면 된다...' 버려진 목판하나에 잠시 위안을 느꼈습니다. 휴대폰에 한장 담아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하늘의 응원이 아닐까요? 운명 같은 목판과의 만남, 뭔가 잘 될 것은 예감을 안고 좁은 골목길을 서둘러 빠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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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날, 첫 걸음은 떨리고 긴장되었지만 '하면 된다'는 목판 글귀를 믿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  '어찌 살아오셨을까?' '이리도 밝은 표정을 하고 계실까?' '이 고객의 한숨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이 내뿜는 삶의 향기를 상상했습니다. 학원 가는 길 내내 이발사의 쓸모를 그려보게 됩니다.  학원입구에 서서 하늘을 보며 외 마디 외쳤습니다.  '저는 이발사입니다. '  



글쓴이 :  배.주.남 손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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