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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규 Jun 15. 2020

무릎 꿇고 회개했습니다.

배웠으면 써먹어라-학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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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무릎 꿇고 이발할 때가 제일 힘듭니다. 십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할머니가 울먹이면서 말씀하십니다. "미안해서 으짜요. 다리가 많이 아프실 것이지요?" 할머니를 진정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발을 멈췄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빙긋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 아직 총각입니다. 튼튼해요." 울먹이던 할머니의 표정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수줍게 할머니도 농담으로 응수하십니다. "얼굴은 총각인디, 조금 전 이발사 선상 아들 얘기는 그럼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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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당신 아들 얘기도 푸짐하니 늘어놓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이 많이 그리우신가 봅니다. 주름진 이마만큼이나 아들과의 굴곡진 사연이 많으셨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들이 많이 보고 싶으셨구나. 여기 이발사도 아들이니, 오늘 아들이 이발해 준다고 생각하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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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울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도 제가 그리우실 겁니다. 울 어머니 머리도 만져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앞에 한번이라도 무릎 꿇고 정성을 드린 적이 있었던가. 얼마 전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엄마, 다음에 고향 가면 제가 엄마 머리 이발해 줄까요?" 어머니는 아들의 수고가 미안하신 모양입니다. "아니, 머리 염색도 해야 하고, 집에서 냄새나니 여기 미용실서 하면 된다." 언젠가는 아들이 이발해 준 머리를 보고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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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옥수수 3개를 꺼내 제 가방 속에 넣어 주셨습니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저 이발비 주신 거예요" 할머니는 제 손을 꼭 잡고 현관을 향해 걸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발비를 달라고 하면 줄 것인디. 받지도 않을 것이니 옥수수가 이발비여."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잘 먹을게요. 다음 달에 또 올게요." 할머니는 아들 생각이 또 나신 모양입니다. "에구, 늙으면 죽어야 하는디. 이발사 선상만 고생시켜서 어짜슬까."  앞서 간 아들 생각에 저 또한 많이 그리우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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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은 몸을 굴려서 거실 가운데로 기어 왔습니다. 옆에 서 있던 요양보호사님이 말을 건넵니다. "선생님 무릎 아프시죠? 의자에 앉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이 고생하셔야겠어요" 김형은 신체장애 때문에 의자에 앉을 수가 없습니다. 머리에 물을 뿌리며 김형에게 말했습니다.  "머리는 어떤 스타일을 원하세요?" 김형은 웃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요양보호사님은 머리에 비듬이 많으니 빡빡 밀어 달라고 했습니다. 김형에게 그리해도 좋겠냐고 물었더니 요양보호사님이 언어장애가 있어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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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님은 김형이 적어 준 인생 목표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김형의 인생 목표는 '의자에 앉는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은 요양보호사님이 집에 방문했더니 김형 머리에서 피가 흐르더랍니다.  혼자서 의자에 앉아 보겠다고 용을 쓰다가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룰 수 없는 일이 '의자에 앉기'랍니다. 갑자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불편한 마음은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대수롭지 않았던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인생 목표랍니다. 오늘 김형의 인생 목표를 듣고 오지기 한방 먹고 갑니다. 나는 앉아 있을 수 있음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감사한 적이 있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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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님이 땀 범벅이 된 저의 얼굴보며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마스크까지 하고 더운데 많이 힘드셨죠?" 땀을 닦으며 복지사님께 말 했습니다. "무릎 꿇고 회개하는 시간 같았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나의 삶, 오늘은 제대로 무릎 꿇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구나.'



글쓴이 :  배.주.남 손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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