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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Aug 10. 2022

영도에서 한 달 살기

영도에서 만난 문화예술 기획자들(1)_영도문화도시센터 W크루 배세진님

영도문화도시센터 배세진 크루


저는 사실 센터에 오기 전까지 기획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세진) 처음에는 알바로 가볍게 시작했던 일이, 주 3일에서 주 5일이 되고. 하다 보니까 사업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영도 자체에 대한 호감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보경) 사실, 엊그제 행사에서 소고춤 추시는 것 보고 깜짝 놀랐어요. 풍물을 전공하신 건가요?

세진) 풍물은 취미로 하는 거예요. 직업이나 전공은 아니고. 고민을 할 만큼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은 직업으로는 하지 않고 오래된 취미로 가져가는 것으로 정했어요.


보경)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세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처음에는 운명 같은 스파크, 강렬한 경험을 느꼈고, 이게 내 길은 아닐까? 고민을 했었어요.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다 보니 풍물이 큰 카테고리로는 전통 연희인데, 전통 연희를 하는 다른 동네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직업적으로 연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닌, 고창 농악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거구나'하고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직업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보경) 그럼 무엇을 전공하셨나요?

세진) 원래 저는 도자 전공자, 공예과였습니다. 도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했어요. 저도 원래 부산 사람인데, 중학교 때 경기도 이천에 있는 도예 특성화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죠. 그리고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다니며 도자 공부를 하고, 졸업 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이라는 수제 기와 만드는 선생님의 공방에서 한옥 문화재 수리 보수용에 쓰이는 기와를 만들다가 그만두고 부산으로 돌아왔었죠.


보경) 부산으로 내려오시고 취미 활동을 위해 고창으로 가신 건가요?

세진) 제가 고창 농악을 시작한 것은 대학교 때 풍물 동아리를 들어가면서에요. 여름 방학 때 고창 농악 전수를 받으러 갈 사람을 선배들이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가게 되었는데, 엄청난 스파크를 경험하면서 그 이후로도 고창을 꾸준히 다니게 되었어요. 2학년을 마치고 집행부를 넘기며 학교를 휴학하고 고창으로 갔어요. 그때 1년 동안 고창에서 살았는데, 서현덕 항해자님을 만났죠. 한 해 동안 현덕님과 다른 두 분과 총 4명이서 악기를 배우고, 일하며 생활을 했습니다.(*서현덕 님은 항해캠프의 항해자로 참여하고 있다.)


보경) 두 분 호흡에 깜짝 놀랐어요.

세진) 항해캠프 끝나기 전에 다시 다듬어서 한 번 더 해보자고 했어요.

보경) 두 분은 정작 아쉬우셨군요.

세진) 그럼요. 전날 두 시간밖에 연습을 못해서... 생각보다 다들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농악을 안 해본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 것이 처음이어서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보경) 잘 모르지만, 두 분이 신나 하시는 모습이 보여서 저희도 함께 신났던 것 같아요.

세진) 전날 연습할 때는 될까요? 했는데, 막상 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보경) 사실 저는 세진님의 첫인상이 '엄청 조용하신 분'이었는데, 공연 전 후의 인상이 엄청 달라져서 깜짝 놀랐었어요. 달라진 모습에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항해자 분들도 놀라셨을 것 같아요.

세진) 저는 엄청난 파워 E인데요, 일을 하다 보니까 조금 진지해진 것 같아요.


세진) 제 안에서는 풍물도 그렇고, 제가 다닌 학교가 '전통문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런 과목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같은 도자 학교여도, 일반 학교의 도자와는 다른 수업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통'이라는 키워드가 제 안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풍류도 있고, 기능, 예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다 보면 단순히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닌 철학, 사상을 함께 배우게 되는데 동양 철학에서 얘기하는 그런 것들이 마음에 많이 와닿거든요. 그것 자체가 제 삶이라고 생각하고, 제 삶이 도자 작품이나 춤을 출 때 녹여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서 제가 영도로 오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기획에 대해 무엇을 얘기드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삶 자체를 기획하고 있었다면 그런 맥락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보경)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일하게 되신 것은 언제부터이신가요?

세진) 항해캠프를 위해서 들어온 사람이라, 저는 6월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이제 한 달 반 된 완전 샛 병아리예요.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사업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소화하는 것이 필요했고, 기획 운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머리로는 입력했는데, 상황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예상을 잘 못했어요. 하지만, 계속 부딪혀가면서 배우고 있고, 예리 선생님이 든든하게 잘 케어를 해주고 계세요. 센터에서 제 별명이 아가 새예요. 예리 선생님은 저의 어미새, 마미 버드이고요. 제가 베이비 버드라고 베(배)버라는 별명이 있어요. 성이 배 씨 기도 해서.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믿음이 있어요. 예리 선생님도 계시고, 센터장님도 계시고 동료들과의 신뢰관계 속에서 힘들지만 행복해요.


세진) 친구 소개로 취업을 앞두고 오게 되었는데,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네요. 진지하게 영도에서 제 작업장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기도 하고. 저는 다양한 지역에서 12년을 돌아다녔어요. 경기도 이천, 충남 부여, 전북 고창, 전남 장흥, 일본 등. 그런데, 지역 환경 자체에 호감이 생기고 애정이 생긴 건 영도가 처음이에요. 남포역에서 내려서 영도다리를 걸어서 출근을 하는데, 그 풍경을 출퇴근할 때 보는 것이 좋아요.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고, 오늘 하루가 끝났구나 생각하면서 지하철 타고 집에 가요. 그냥 그게 너무 좋아요.

세진) 그리고 이 카페도 항해 캠프 소개해줬던 친구가 소개를 해줬는데, 그때 풍경에 대한 충격이 컸어요. 그래서 영도에서 여기를 제일 좋아하는 장소로 뽑았어요. 그때 루프탑에서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보경) 오늘 인터뷰 장소로 이곳을 선택하신 건, 저에게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으신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세진) 뭐랄까, 다른 지역은 그냥 자연만 있는 풍경들이 주로 많은데, 크레인이 있고, 배가 있고. 산업과 사람이 만들어 낸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이 풍경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마음에 와닿아요. 색감도 좋고.

보경) 도자 하시는 분의 말씀 같네요. 만들어 내는 것들에 대한.

세진) 시원한 풍경의 크기가 제 마음에 와닿아요.


보경) 일을 하시면서도 영도의 탁 트인 풍경들을 잘 누리고 계신가요?

세진) 바빠서 자주는 아니지만, 센터장님이 문화재생팀 회의를 나가서 하자고 하셔서 이 카페에서 회의를 한 적도 있고, 점심시간에 밥 먹고 멀리 카페도 다녀와보고, 그렇게 일하고 있습니다.


보경) 영도에 이전에도 와보신 적 있으세요?

세진) 아버지가 선생님이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 잠시 근무하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아버지 뵈러 학교에 잠시 왔다 갔다 한 적이 있어요.

보경) 그때의 영도와 지금의 영도는 어떻게 다르신가요?

세진) 그때는 제가 이런 풍경을 느끼고 할 그런 시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좁고, 비탈이 심한 곳이고, 이런 곳에 버스가 다니는구나 이 정도로만 어렸을 때는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경) 일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나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세진) 문화 기획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데, 그게 너무 어려워요. 저 역시도 사람을 마주할 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사람에게 나를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좋은 것은 어떤 갈등이나 부딪히는 상황이 와도 그 상황이 영원하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도 풀어져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이클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조금 용기도 생기고, 조금씩 두께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겁이 나고 안절부절못했는데, 지금은 개의치 않아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까지 내가 컨트롤 가능한 상황에서만 살아왔는데, 운영은 또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조금 힘들어도, 누군가가 행복하고 그분에게 좋은 경험이 되고 인상에 남는다면 저는 저의 고생이나 힘듦이 다 상쇄되더라고요. 되게 좋네요.


보경) 세진님이 계속 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세진) 그럼 좋겠네요. 이 캠프가 끝나고 영도에 놀러 와 주세요. 영도로 오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함. 께. 해. 요.!

보경) 저는 사실 항해자로 참여하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더라고요.

세진) 저도 다음엔 항해자 해보고 싶어요. 내년엔 항해자 할래요. 파티할 때 같이 하고 싶은데, 운영자의 입장이다 보니 항해자분들이 저를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일하는 데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마음은 이미 중리 바다에 같이 들어가 있는데... 아쉬워요.

보경) 항해자 분들도 크루 분들과 함께 시간 보내고 싶고, 놀고 싶어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함. 께. 해. 요!


보경) 동료분들과 일의 협력에 관련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세진) 예리 선생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고요. 예리 선생님은 극강의 T이십니다. 저는 파워 F에요. T와 F의 만남이 너무 좋은 게, 일 할 때 T의 성향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그걸 예리 선생님을 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디렉션을 주시니까 일하기가 편하고, 어떨 때는 제가 너무 개인적인 사견이 들어가려고 할 때,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좋은 건 둘 다 J인 점이 잘 맞는 것 같아요. 하늘이 주신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센터에는 문화재생팀, 경영지원팀, 커뮤니티사업팀 총 3개가 있는데, 문화재생팀 크루 선생님과 주로 소통을 해요. 선생님들 개개인의 캐릭터가 뚜렷하고, 각자 일을 열심히 잘하셔서 되게 분위기가 좋아요. 함께 하면 시너지도 나고 거기서 많이 배워요. 동료 크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부에서 수평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고, 각자의 사업을 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일을 해서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세진) 사실 요즘 워라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센터 선생님들도 우리는 그게 너무 없는 게 문제이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제가 성장해야 하는 이 시기에 최대한 많은 인풋을 넣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 워라밸을 우선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붓는 분위기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하는 일들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경) 함께 불태우고 싶은 동료분들을 만나셨군요!


보경) 세진님은 ‘전통문화’에 대한 것들을 배워오셨는데, 항해캠프가 끝나고 영도에서 일을 이어나가신다면 전통문화와 관련된 기획을 해보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세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데요. 저도 아직 영도를 공부하고 알아가는 중이다 보니, 명확한 프로젝트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영도가 역사적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진하다고 생각해요. 영도에 동삼동 패총 전시관이 있는데, 선사시대의 유물들을 모티브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보경) 아직까지 영도에서 전통문화 관련된 기획을 한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항캠이 끝난 후에 세진님의 기획이 기다려지네요. 응원합니다!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항해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배세진 크루는 영도에서 일한 지 약 1.5개월이 된 새내기 문화예술 기획자이다. "저는 아직 기획자가 아닌데요."로 시작된 인터뷰는, 배세진 크루의 '전통 문화에 대한 뜨거운 온도'와 '영도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자신만의 기획을 꿈꾸고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항해캠프를 통해 운영의 경험을 쌓은 배세진 크루의 두께감이 있는 다음 기획이 기다려졌다.


* 항해캠프란?

<내-일의 항해캠프>는 문화도시 영도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자신의 문화기획을 직접 수행함과 동시에 동료들과 협력을 통해 문화적인 일을 도모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인터뷰 장소 : 카페 38.5(부산 영도구 태종로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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