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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Aug 18. 2022

영도에서 한 달 살기

영도에서 만난 문화예술 기획자들(2)_심오한연구소 심바

심오한연구소 대표 심바


사실, 제가 문화기획자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문화를 이용하는 사람이거든요.

심바)  심오한영화제에서 했었던 프로그램으로 얘기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례들을 이야기해볼까?" 하면 무겁게 느껴져서 안 올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영화를 한 번 보자 했죠. 영화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한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도 있고, 계급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을 할 때는 사실 문화를 활용해서 사람들이 모이고, 제가 생각했었던 지점들을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해요.


그래서 저는 영화를 매개로 하는 것처럼, 문화를 기획하기보다는 문화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이슈를 생각해보자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었어요.


마을이나 지역을 주제로 기획을 한다고 했을 때도, 제가 살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영도를 소비하는 게 좋지 않은 거예요. 영도는 카페 말고도 다양한 모습이 있으니 구석구석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깡깡이 마을이 벽화가 예쁜 마을이 아닌 옛날 산업 시설이 있는 곳이라는 걸 사람들이 다 알기는 힘드니까, '깡깡이마을을 소리로 바라볼까?'라는 생각을 하던지, 흰여울 마을을 걸으면서 해녀 이야기를 나눈다던지, '영도의 풍경을 드로잉 해볼까?' 드로잉을 하면 그것에 대해서 다르게 다가오고 바라보게 되니까 이런 식으로 꾸민 것 같아요.


공간으로 프로그램 기획할 때도, 사실 그 공간들이 영도에서 사시는 분들이 자신의 특색을 가지고 운영을 하고 계신데, 단순히 미디어에 소개될 때는 '예쁜 카페다. 트렌디한 카페다'로 소개되거든요. 이런 거 보다는 각각의 공간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특색이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고, 운영자 분이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프로그램 일 수도 있고, 공간의 정체성 목적성을 드러내는 것들을 요청드렸거든요.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심오한연구소 기획 프로젝트 포스터(좌 - 심오한 영화제, 우 - 섬섬섬 프로젝트)


보경) 제가 생각하기엔 사실 그게 문화 기획이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연결하고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가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문화예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심바님처럼 사람들이 단순히 '카페의 뷰가 좋네'만 하고 지나가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에 다른 활동에 눈길이 많이 갔어요. 그래서 그때 심바님이 기획하신 <소리의 섬>도 참여했던 거고요.


심바) 문화기획자라고 불리는 것에 큰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실 문화라는 것 자체가 소프트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감동이던 감정이던 그런 것들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문화예술기획자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어서 스스로 그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를 부르는 이름이 진짜 많아요. 저는 심오한연구소를 운영하는 사람일 뿐인데, 어디 가면 대표일 수도 있고, 청년 활동가 일 수도 있고, 마을 활동가일 수도 있고, 로컬 크리에이터일 수도 있고, 문화기획자일 수도 있고, 사실 어떤 범위에도 속한다고 느끼지 못하거든요.


보경) 그럼 심바님이 스스로 정의한다면 어떤 말로 소개하고 싶으세요?

심바) 저는 “심오한연구소를 운영하는, 지역과 청년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사람들을 모으는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심바와 오동의 반려 강아지 꾸꿀이


보경) 저희가 오늘 여기에서 이야기하게 된 것도 좋지만, 영도에서 심바님이 좋아하는 공간이 없어졌다는 얘기가 슬프더라고요.

심바) '문제없어요'라는 공간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작은 카페인데, 운영자 분이 자신의 특색으로 잘 운영하셨어요.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좋고, 제가 좋아하는 책, 음악을 큐레이션 해 놓으신 분이셨어요. 강산애 노래가 나온다거나, 트렌디하지 않은 옛날 팝이 나온다거나.


안타깝게도 인스타그래머블한 스타일을 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보니, 영도에 카페가 워낙 많이 생기기도 했고... 작년에 공간이 없어졌어요. 이외에 자주 가는 곳은 와치 홈바예요. 와치홈바는 늦게 열어서 심오한집에서 뵙자고 했어요.


보경) 주로 이 공간에서 일을 하시나요?

심바) 네. 저는 주로 일을 여기에서 해요. 특히 요즘 같은 경우 덥기도 하고, 꾸꿀이(심바의 반려 강아지)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그리고 심오한 집 공간이 사실 좋긴 합니다.

보경) 저도 굉장히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심바) 1층 보시면 아시겠지만, 편한 분위기이지 않나요? 사람들이 오면 심오한집에서 누워있기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부산 영도 핫하다고 해서 오셨는데, 심오한집 침대에서만 계시는 분들도 많고 그렇습니다.


심오한연구소 2층 작업실 풍경


보경) 어떻게 '지역'과 '청년'을 주제로 연결하는 기획을 하게 되셨나요?

심바) 오동(심바의 남편)이 하는 일이 청년 일이기도 했었었고, 저는 오히려 청년보다는 공정여행사에서 일을 했고 지역 관련해서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영도에서 기획을)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면 여기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더 했던 것 같아요.


이주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나서 와 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제가 저로 존재하지도 않았고, 제 친구가 없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2시간 40분 걸리죠? 친구들이 언제든 올 수 있겠지, 내가 서울 언제든 갈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실제로 한 번 만나려면 엄청 힘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친구로 만날 사람들이 필요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보니 오동의 아내로 소개되는 것이 아닌, 제 중심으로 관계를 만드는 게 사라지는 것 같아서, 누구의 연결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보경) 청년 관련 의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는 욕망이 더 크셨을까요?

심바) 그 욕망이 더 컸다기보다는 그것 때문에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영도에 청년 의제 관련된 활동이 서울보다 없었으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의제 중심의 모임이 아닌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다면 사심으로 연락하기도 하고, 열심히 마음 맞는 청년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기획의 목적이 세 개나 있었네요. 1. 의제 얘기해 보자. 2. 함께 봐 볼까? 3. 나의 욕망까지.


프로그램을 개인적으로 더 열심히 했다는 것을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하고 모임을 열곤 했는데, 더 마음이 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지나고 보니까 내가 살려고 그렇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바의 기획 프로그램 <소리의 섬> 현장 사진

보경) 저희가 소리의 섬으로 만났던 게 2-3년 전이었나요?

심바) 2020년이었을 거예요. 저 너무 신기했었어가지고. 보경님이 모자를 쓰고 오셨잖아요. 모자 되게 잘 어울린다, 모자 되게 예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초면에 얘기할 수 없으니까 기억하고 있던 게 기억났었어요. 메시지를 보낼 때 기록이 남아 있어서 누군지 기억 못 하고 '어 오셨던 분인가?' 싶었는데, (오셔서) 얼굴 뵈었더니 기억이 다시 나더라고요.

심바/보경)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네요. 잘해야 한다….


보경) 공정여행사와 소셜섹터에서 일을 하셨다고 한 인터뷰를 봤는데, 심바님이 하고 싶으셨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어요.

심바) 옛날이야기네요. 제가 여행 쪽으로 가게 된 것은 옛날에 배낭여행을 갔는데, 여행이 너무 즐겁고 좋았어요. 그래서 이제 원래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가 그것은 내 성미와 맞지 않다. 나는 바로 결괏값이 보여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친구랑 여행에 관련된 프로젝트 창업을 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너무 빨랐다는. 플랫폼을 기획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지만 그때는 빨랐다. 처음 창업하다 보니 뭣도 몰랐다...


그래도 여행 쪽으로 계속해보고 싶어서 찾는 도중에 제가 여행을 하는 방법이 공정여행, 지속 가능한 여행의 방법임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 찾다 보니 SEEDS라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윤리적 캠페인을 하는 곳에 들어갔다가, 좋은 분을 만나서 공정여행 쪽으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하다가 이주노동자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공정여행사에 취직하게 된 거예요.


공정여행사의 모토는 '여행으로 세상을 바꾼다.'였지만, 해보니 '아니다. 세상 못 바꾼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이야 비건 인지도가 높지만, 그때는 '비건이 뭐야?' 할 때여서. 그래서 '여행으로 세상을 못 바꾸면 어떤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고민하다가 사회적 경제, 사회 혁신을 하는 희망제작소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여기로 오게 된 것이죠.


심바의 책장

보경) 이러한 것들이 심오한연구소의 한 달 살기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있네요. 앞으로 심오한연구소에서 지역과 해보고 싶은 것, 청년들과 나누고 싶은 아젠다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심바) 지역과 해보고 싶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아요. '영도 안에서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른 분들한테도 남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 또, 영도라는 곳에 계속 안전망, 관계망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청년들이 왔었을 때, 여기서라면 이것저것 해볼 수 있고, 다시 한번 더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나중에 혹시 한 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안전망, 관계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수가 양적으로 많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잘 지치지 않고 한다면 그런 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라는 게 있어요.


저의 매해 관심사가 바뀌듯이 청년들과 나누고 싶은 아젠다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 꼭 목적 지향적인 만남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관계 지향적인 사람이고, 그렇기에 청년들과 만나는 것도 연결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나, 그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서, 제가 지치지 않고 그 마음을 잘 이어나갈 수 있다면 관계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함께 그런 망들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심바는 심오한연구소를 운영하며 지역과 청년들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영도에 대한 애정이 많은 영도 살이 7년 차 이주민이며 사투리를 배워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문화 기획'이라는 단어에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을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개인적으로는 결혼 이후 변화된 환경 속에서 '나' 중심의 관계를 쌓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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