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다를 좋아한다.
부드러운 백사장과 파도사이의 경계에서
움푹움푹 빠지는 걸음을 내딛을 때
온 몸을 바닷물에 담그고 파도에 몸을 맡긴채 둥둥 떠다닐 때
가만 앉아 어디에서부터 불어오는지도 모르는 바람을 맞으며 저 먼 곳을 응시할 때
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를 느낀다.
오키나와 N해변은 파초가 만든 동굴을 지나면 나오는 산호와 바다가 만든 장소였다.
N해변엔 부드럽게 모래로 흩어져버린 산호들이 하얗게 내리깔려 있고,
바닷물은 너무 가볍고 따뜻해서 손가락 사이로 너무나 쉽게 갈라졌다.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으나 바람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했다.
우리는 온 몸을 잔잔한 파도에 맡겼다.
물 위에 누워 어둑해지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가끔은 상상한 것보다 현실이 더 비현실적이야"
내 옆에 둥둥 떠 있는 네가 말했다.
"바닷물이 따뜻한 우유 같아"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하늘의 붉은 빛이 보라색으로, 군청색으로, 검정색으로 변할 때까지 가만히 떠 있었다.
우리는 이 바다가 언제까지 우리몸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엇인가와 내기하듯
아무런 말 없이 시간과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아까의 비현실보다도 더한 비현실, 몽환에 가까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은빛이었다.
검게 변해있던 백색해변과 에메랄드 바다, 너와 나도 모두 은빛으로 물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세계가 은빛으로 변했다.
"우리가 도대체 어디에 온거지?" 내가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우리는 두발을 딛고 온 사방을 둘러 보고 있었다.
오키나와 N해변, 우리가 알던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었다.
낮과 밤을 구분하기 어려운 서울에서,
그것도 형광불빛 아래 각자의 업무공간에서
이런 곳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일상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는 생활이 반복되고 그것을 일반적인 삶이라 이름 붙이더라도
가끔은 삶에서 벗어나 비현실과 몽환에 가까운 현실로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곳을 찾았다는 것.
우리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해야만했다.
2024년 10월 오키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