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생각 8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의 세 번째 작품이다.
깊은 주제이나 이해하기 쉬운 표현. 하지만 그에 따라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 아쉬움.
제언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까운 글.
나의 세계에 반문을 제시해 줄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은 것일지도.
인상 깊은 구절만 남겨 둔다.
1.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혁명은 기술자와 기업가, 과학자들이 만들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대표하지 않는다.
- 특이점을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알 수 없는 속도로 어느 순간 맞이하게 될 특이점의 순간은 일반 시민들이나 군부, 독재자, 민주적 절차를 거친 지도자와 같은 자들이 아니라 몇몇의 괴짜, 빅테크 기업과 같은 자들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프런티어 정신이 만들었든, 트랜스휴머니즘에 바탕을 뒀든 그 결과는 일반인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다.
- 아직은...! 그럼에도 이들이 만든 도구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가는 순전히 정치의 영역일 가능성이 높다. 특정 집단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사용방식의 사회적 합의... 이러한 것들은 정치로 풀 수 있다. 저자는 어느 시점에 타이밍을 놓칠 경우 알고리즘에 의해 대중의 견해가 형성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항상 내 견해가 어디서 온 견해인지 이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뿌리가 무엇인지, 누가 이익을 보는지 잘 살펴보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2. 국가가 외부 침략이나 끔찍한 전복 사고에 직면했다는데 누가 과밀 병원과 강물 오염에 대해 걱정할 시간이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끝없는 위기의 흐름을 만들어냄으로써 부패한 과두제는 지배를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
-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와 관련된 내용이다. 나는 이것이 어떤 사회든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위기가 임박했음을 강조하고, 이미 발생한 위기를 재확산하고 마음에 공포를 심어주면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뉴스를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위기의 레토릭'이라는 말을 붙여주고 위기를 강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기득권이 얻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3. 인류가 늦지 않게 자유주의의 길로 복귀해 재난을 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16년 9월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 유엔 연설에서 청중을 향해 "세계가 민족과 부족... 날카롭게 나뉘고 궁극에는 갈등 속으로 퇴보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대신 "자유 시장과 책임 정부, 민주주의와 인권, 국제법의 원칙이... 금세기 인간 진보를 위한 확고한 기반으로 남기"를 기원했다.
- 오바마는 트럼프의 집권이 어떤 세상을 가져올지 두려웠을 것이다. 1기 때의 트럼프는 지지기반이 없었다. 주요 보직의 인사들 또한 본인의 결정과 어긋나기 일쑤였다. 2기는 다르다. 트럼프보다 더욱 강경한 사람들이 트럼프를 대변한다. 자유시장과 책임정부는 무너져가고 있고, 국제법의 원칙은 이미 힘의 논리에 굴복했다. 그럼에도 긍정적 전망을 견지해야만 한다.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실현적 예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우리가 자동화를 생각할 때, 인간 운전사 한 명을 자율주행 차량 한 대와 비교하거나 인간의사 한 명을 AI 의사 하나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보다 인간 개인의 능력들을 합산한 것을 통합 네트워크의 능력과 비교해야 한다.
-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
5. 인간의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은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의사 결정을 해킹하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신뢰도는 더욱 커지고, 그와 동시에 인간의 감정은 점점 더 의심받게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인간의 운영 체계를 해킹하는 데 성공하면서 우리는 정밀 유도된 조작, 광고와 프로파간다의 융단폭격에 노출될 것이다.
-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누군가가(혹은 무엇인가) 내 머릿속에 심어놓은 것이다. 세상은 온갖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야기들에는 내게 부여된 역할이 있고, 어떤 것을 소비하면 그에 대한 대가로 무엇인가 나아진 상황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역할극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게 우리들의 인생이다. 다만 이제는 이게 점점 더 정교해질 것이라는 거다. 이제까지 없었던 욕망을 자극한다거나, 특정한 정책을 지지하게 한다거나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미 그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제 1시간을 넘게 '중국의 낮은 국민성과 저급한 위생상태'를 주제로 하는 쇼츠를 돌려봤다. 분명 목적이 있는 게시물이었다. 그럼에도 그걸 계속해서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중국을 혐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이미 이런 식으로 온갖 미디어에서 얕은 방식의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보통은 그럴 노력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중국을 혐오하게 만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들이 이뤄내고 있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둘은 철저히 구분해서 취할 것은 취해야만 한다.
6. 알고리즘이 인간 운전자로부터 역할을 넘겨받기 위해 반드시 완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보다 낫기만 하면 된다.
- 국제무역도 비교우위로 이뤄지고, 상품의 거래도 비교우위로 이뤄진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택시기사보다 안전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
7. 21세기에는 집단적인 차별을 넘어 개인 차별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질 수 있다.
- 어떤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인종, 국가, 문화 등)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면 이제는 개인의 배경, 학습, 능력 등으로 인한 차별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의미
- 중국의 사회신용점수라는 제도가 있는데 개인 차별의 문제는 현실인 것 같다. 이런 나라에 혁신을 바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8. 이때 위험은 AI를 개발하는 데는 너무 많이 투자하는 반면 인간의 의식을 증진하는 데는 너무 적게 투자하면, 컴퓨터의 아주 정교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타고난 어리석음에 힘을 실어주기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봇은 우리의 가장 기은 두려움과 증오, 갈망을 파악하고 그것을 내적 지렛대로 삼아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해커들은 개인 유권자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들의 기존 선입견을 악용해 그들을 조종하는 법을 알아냈다....(따라서) 그런 결과를 피하려면 인공지능 개선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만큼, 인간 의식을 증진하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 너 자신을 알라. 내가 조종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라. 의문을 가지고, 고민해 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미 단순한 사고로 할 수 있는 작업들은 대체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모든 걸 자동화할 수 있음에도 단지 사회적 시선 때문에, 노조 때문에, 소비자들 때문에 못하고 있을 뿐이다.
-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토론 문화도 개선되어야 한다. 예전 JTBC에서 하던 썰전만큼 통쾌한 대담이 없었다. 심지어는 100분 토론도 10년 전에는 더 치열했다. 지금은 모두가 모두를 눈치 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다름을 이해하고 욕하지 않아야 한다. 나와 주장이 다르더라도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가짜뉴스, 댓글부대, 조회수 조작 등의 반칙은 엄벌해야만 하고 모두가 각각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9. 인간은 가축화한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비슷해져 갈 것이다)
- 저자는 젖소를 예시로 들었다. 젖소는 우유를 생산한다. 인간은 온갖 데이터를 생산한다. 현대사회에 데이터는 곧 권력이고 부다. 우리는 생각하길 멈추고 데이터만을 생산해 낼 것이다. 이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 여기에 대해 처음엔 일견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데이터라는 것이 왜 가치 있는지 생각해 보니 다른 결론에 다다른다. 데이터가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일관된 결론을 가진 데이터만 있을 뿐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데이터이다. 우유는 일관된 품질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상표로 포장된다. 데이터의 소스는 다르지만 결론이 같다면 이것은 하나의 데이터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많은 데이터라 하더라도 잡음에 불과하다. 처리의 효율성 측면에서 본다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단순 통계를 작성할 때에도 반복되는 같은 데이터는 아무런 결론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 문구하나를 가져와본다.
"수학의 힘"
편향에 관해 : 다른 나라에서 얻은 정보가 영국에도 적합하하면서 소음이 너무 많지 않은 통신 채널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1년 내내 햇볕이 내리쬐는 나라들이 추구하는 해법은 흥미롭기는 하겠지만, 영국에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영국은 기후가 비슷한 북유럽 국가들이 더 나은 비교대상이기 때문에 이 국가들에서 어떤 전략을 추구하는지 살펴볼 가치가 있다. "서로 독립적인 정보원"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네덜란드의 정책은 흥미롭기는 하겠지만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도 네덜란드와 비슷한 정책을 추진한다면 두 나라를 추가로 살펴봐도 새로운 정보가 별로 없을 것이다 추구하는 전략이 다른 국가들을 살펴야 배울 점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원자력으로 전기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프랑스나 수력발전소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노르웨이를 더 살펴보면 좋다. 비록 이 선택지들을 영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말이다.
10. 우리는 지금 거대한 데이터 처리 메커니즘 안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며, 아주 효율적인 칩으로 기능하는 길들여진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11. 그 결과 세계화는 세계의 통일로 가기보다 실제로는 '종의 분화'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인류가 다양한 생물학적 계층 혹은 심지어 다양한 종으로 분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세계화는 수평적으로는 세계를 통일하고 국경을 없애지만, 동시에 수직적으로는 인류를 분할할 것이다.
- 최근에 고향친구와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30년 뒤의 노화방지기술에 관한 대화였다. 나는 사실 나 혼자 30년 뒤에는 노화방지 기술이 생겨, 늙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기가 종이 분화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있는 자는 (최소한) 늙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지 못한 자들은 늙고 추해질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한 번 역행하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쉽다. 노화를 방지하고, 젊음을 되찾고, 신체를 대체하고, 유전자를 조작할 것이다. 종의 분화가 일어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호모족들이 함께 살 것이다.
12. 만약 모든 부와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그 열쇠는 데이터 소유를 규제하는 것이다.
- 정치는 모든 것을 멈출 수도 있다. 세상을 뒤엎을 수도 있다. 아직은 말이다.
13. 자신의 몸과 절연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자기 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면 세계에서도 결코 평안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14. 핵전쟁을 막고 지구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국제 체제만 해도 건설하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물론 이런 체제는 변화하는 세계환경에 맞게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가령 미국 의존도를 지금보다 줄이고 중국과 인도 같은 비서구 열강에 더 큰 역할을 맡겨야 한다.
- 비서구열강이 과연 믿을만한 파트너인지 다시 한번 검증이 필요하다. 중국과 인도가 믿을만한 파트너인가? 자국 우선 민족주의를 가장 열심히 주장하는 국가들이 아닌가? 그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면 그들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보다 본인들을 먼저 이롭게 하지는 않을 것인가? 이제까지 피해본 것을 되찾겠다면서 말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한다. 물론 이건 지금의 서구열강이 먼저 보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다른 국가 또는 집단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15. 이전 시대에 민족 정체성이 형성된 것은 인류가 지역 부족 범위를 훌쩍 넘어가는 문제와 기회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제도는 전례 없는 일련의 지구적 곤경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지구적 정체성이라는 걸 도대체 어떻게 정의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까. 일부 SF영화에서는 외계의 적 덕에 하나의 지구가 완성되기도 한다. 아니면 우주적 재앙 앞에서 하나의 지구가 된다. 그것도 아니면 광신적 믿음이 하나의 지구를 만든다. 기후위기 대응, 빈곤퇴치, 북극곰을 지키자 와 같은 나이브한 이야기는 지구적 정체성을 만들기엔 너무 나약하다. 더 강한 것이 필요하다.
16. 정치를 지구화한다는 것은 한 나라나 심지어 도시 단위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도 전 지구 차원의 문제와 이익에 좀 더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17. 많은 전통적 종교들이 보편 가치를 옹호하고 우주적 타당성을 주장해도, 지금은 근대 민족주의의 시녀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18. 이민 찬성론자들은 유럽 자체가 극도로 다양한 데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견해와 습관, 가치만 해도 스펙트럼이 넓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유럽이 활기차고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민자들은 실제로는 유럽인들도 고수하지 않는 상상 속의 유럽 정체성을 강요받아야 하나?
- 한국은 이민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이번에 경북지역에 봉사활동을 갔더니 이미 일단 외국인은 엄청 많고 더 신기했던 건 이들이 농촌 사회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ㅇㅇ가족센터, 복지센터 등 지역 복지기관엔 이미 외국인 선생님들, 주임님들이 일을 하고 있다. 동사무소도 마찬가지. 이미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였다. 우리 사회에 우리의 색깔로 적응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한국만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아무리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글로써 기술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들끼리 모여 살며, 그들의 식생활을 유지하는 이주민과 한국의 것을 이해하려 하고 한국 보편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는 이주민은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 그 정도만 원하는 것이다. 한국적인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 애국을 바라지도 않는다.
19. 그렇기 때문에 테러범들은 군의 장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연극 연출가처럼 사고한다.
20. 반면, 테러는 훨씬 드문 사례라 해도 프랑스 공화국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근대 서방 국가는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국경내 정치 폭력은 불허하겠다는 명시적 약속 위에 정당성을 확립해 왔기 때문이다.
21. 국가는 정치 폭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제 그것은 공명판이 되어 아무리 작은 무장 공격의 충격도 거대한 소리로 증폭시킨다.
22. 미디어가 테러에 집착하고 정부가 과잉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의 테러인 것이다.
23. 누군가 21세기의 조건하에서도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묘수를 찾아낸다면 일거에 지옥의 문들이 열릴 수 있다.
- 의연해야만 하는 이유다. 어떤 뉴스에 우리는 호들갑을 떨곤 한다. 어떤 알림에, 어떤 경고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이 일어날 확률은 고작 1만 분의 1이다. 예를 들어 난카이 대지진이 일어난다고 해보자. 나는 2박 3이 간 오사카로 여행을 갈 예정이다. 난카이 대지진이 30년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되고 있고, 나는 3일 동안 일본에 있을 예정이다. 3일/365일*30(년) = 0.26%의 확률로 대지진을 경험하고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0.26%는 어느 정도의 확률이라고 봐야 할까. 대충 0.3이라고 보면 333개의 숫자 중 내가 고른 숫자가 정확히 랜덤 하게 결정될 정도의 확률 이다. 가능은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거의 불가능한 숫자인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시도에 말이다. 큰 수의 법칙은 사실이다. 10,000년의 시간으로 횟수를 늘리면 무조건 그 결괏값을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독립시행의 관점에서 내가 그 사건을 겪게 될 확률은 정말 희박하다. 그럼에도 여행을 포기하고, 또는 세계화를 포기할 것인가. 내가 차 사고를 당할 확률이 1%가 있다고 해서 운전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암에 걸릴 확률이 1% 이상이라고 해서 내 고환이나 자궁을 절단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테러는 잡음이다. 이 세상이 굴러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든 자신의 사상을 전파시키고자 하는 일부 무리의 잡음일 뿐인 것이다. 그것 때문에 세상이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으나 의연하라. 내 가족이 희생자가 되었다고 해도 의연하라...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레토릭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너무 강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24. 인간의 어리석음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힘들 중 하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 때가 많다.
- 왜냐.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구를 믿고 허구로 삶을 구성하는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어리석음은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우리가 합리적이라는 신화에 매몰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추동되는 사건들이 인간의 역사를 바꿔왔다.
25. 더욱이 새로운 세계대전을 불가피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이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면 각자 군대를 증강하게 되고, 이것은 군비 경쟁으로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어떤 분쟁에서도 타협을 거부하고, 상대국의 선의의 제스처마저 함정일 뿐이라고 의심하게 된다. 남은 길은 전쟁밖에 없다.
- 왜 유럽연합이 탄생했는지, 어떻게, 데탕트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군비경쟁 축소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등을 공부해 볼 필요가 생기는 것 그때의 시대상황과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26.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다양한 의식과 의례를 수행하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일신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이야말로 유일한 신이며 이 신은 보편적인 복종을 요구한다고 믿었다.
- 다양한 신을 믿는 편이 좀 더 살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지 않겠구나.
27. 세속적인(세속주의) 교육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증거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 과학의 기본 전제가 그렇다. 패러다임과 그 반증,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이미 60년 전에 얘기한 내용이다. 세속주의 과학은 본인의 무지를 인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반증이 추가될수록 새로운 이론에 가까워진다. 무지 또는 반증 그것이 세상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절대적인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뿐이다.
28.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일련의 절대적인 해답을 믿지 않으면 인간 사회는 와해될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꺼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곤란한 질문을 제기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모든 구성원이 단일한 해답을 무조건 수용해야만 했던 사회보다 더 번영했을 뿐만 아니라 더 평화로웠다.
- 여태껏 많은 책에서 인간 보편의 가치는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보편이고 사실일까? 아니다. 그것 또한 스토리텔링이자 레토릭이다. 내가 폭력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지 않는 이유는 다만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폭력을 통해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그것이 정당한 사회라면, 나는 무력을 키워야만 한다. 그것이 정답이다. 이렇듯 세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결투로 그 결과를 가를 수도 있고 단순한 줄 서기로 그 결과를 가를 수도 있다. 사회의 약속된 합의는 언제든 어떤 사건을 통해서든 바뀔 수 있다.
29. 스탈린주의만 그런 게 아니다. 정치 이념의 반대편에 있는 자본주의 역시 처음에는 대단히 개방적인 과학적 이론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도그마로 경직돼 갔다. 많은 자본주의자들은 자유 시장과 경제성장의 주문을 계속 되풀이해서 왼다. 땅 위의 현실은 아랑곳없다.
- 신용사회가 무너진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모든 빚은 청산된다. 모든 빚은 부도수표가 된다. 세상이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특정한 믿음에 의해 자본주의를 신뢰한다. 계속 성장하리라는 믿음이다. 성장의 담보가 없으면 할인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대출은 일어날 수 없다. 금리는 치솟고,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자본을 빌려줄 수 없을 것이다. 성장의 신화는 반복된다. 지구를 벗어날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이주를 꿈꾼다. 화성에 자본이 닿는다. 화성으로 끝일까? 도그마는 반복될 것이다. 그만큼 강하다면 말이다.
30.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명이나 자유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어도, 이 이야기에 대한 믿음 덕분에 권위주의 정권의 권력을 억제했고, 소수자들의 피해를 막았으며, 수십억 인구를 빈곤과 폭력의 최탁의 결과로부터 보호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역시 도그마일 뿐이다.
31. 인권의 도그마는... 초인간, 사이보그, 초지능 컴퓨터를 다루기에는 맞지 않다.
-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가치들이 어쩌면 이젠 끝날지도 모른다. 천부인권이란 말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트랜스휴먼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오염된 지구를 벗어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산된 완벽한 궤도 내 인간만이 투표권을 가지고 지구 생태계를 좌지우지할 권력을 지닐 수도 있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결국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정치다. 정치를 통해 내 삶을 보장받아야 하고, 내 생산수단을 지켜야 만한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일어났을 때 효과적일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직 민족주의 국가주의 도그마에 갇혀 그러한 규제 완화의 경쟁에 모든 국가가 동참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문제다.
32.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그늘이 있다. 어떤 신조를 따르든지 불가피한 그늘을 인정하고 우리에게는 일어날 리 없다는 안일한 확신을 피해야 한다. 세속주의 과학은 전통 종교 대다수와 비교하면 한 가지 큰 이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그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세속주의 과학은 내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배움을 추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절대적인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데, 일신교 중심의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 유대교 등은 아직 정신 차지리 못했다. 한참 멀었다.
33.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사람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을 더 신뢰할 것이다.
- 옳다고만 얘기하는 것은 사이비다. 내가 잘못됨을 아는 것은 고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34.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남들의 지식을 신뢰한 것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35.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방향실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 주는 뉴스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 우리가 우리 의견을 계속해서 돌아보아야만 하는 이유다. 내 의견이 내 목소리의 반향은 아닌지, 우리들끼리의 외침은 아닌지 항상 살 펴야만 한다.
36. 대부분의 우리 견해는 개인의 합리성보다 공동체의 집단사고에 의해 형성된다.
37. 혁명적인 지식은 권려의 중심에서 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38. 사실을 알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의도와 무관하게 잘못된 일에 연루될 수 있다.
39. 사실 인간은 늘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왔다. 호모 사피엔스야말로 탈진실의 종이다.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 데서 나온다.
- 가짜뉴스가 반복된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언제든 있었다. 그 접근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지금은 더 교묘해진다. 마치 내가 선택을 한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봐야만 한다.
40. 사실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데 거짓 이야기는 진실보다 본질적인 이점이 있다. 만약 자신이 속한 집단의 충성심이 얼마나 강한지 아라보고 싶다면, 시험 삼아 사람들에게 분명히 참인 사실보다 어떤 불합리한 것을 믿어보라고 요구하는 편이 훨씬 낫다.
41. 진실과 권력의 동반 여행은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머지않아 각자의 길을 가게 돼 있다. 권력을 바란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허구를 퍼뜨리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42. 첫째, 믿을 만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정보와 주의는 핵심 자산이다... 두 번째 요령은, 만약 어떤 이슈가 특별히 중요해 보인다면 그것에 관련된 과학 문헌을 찾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우리의 정보와 주의가 돈이고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내가 정확한 정보를 얻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정보의 값은 분명 아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공짜 정보들이 널려있기 때문에 이것 외에 추가로 구매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 주변에 항상 음식이 널려 있다면? 굳이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할 필요를 느낄까? 그 음식이 독을 주는지 안 주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그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면 말이다.
43. 사실 인간이 세계를 장학하게 된 것은 칼을 발명하고 매머드를 죽여서라기보다 인간의 정신을 조종한 결과였다. 정신은 역사적 행동과 생물학적 현실을 자유롭게 만들어내는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와 생물학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상이다. 심지어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상인 자유와 사랑, 창의성조차 다른 누군가 매머드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낸 돌칼 같은 것이다.
-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내가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돌칼들이 고도로 발달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인식 내 마음에 박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원초의 내 모습을 알 수 없다. 내 모습이 게으른 것인지, 이것이 학습된 게으름인지 그것을 알기 위해선 나는 세상과 연을 끊어야만 하고, 어쩌면 내 어릴 적 기억마저 모두 망각한 채로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찾은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나는 행복할까? 지금처럼 생각하고 글을 쓰는 나는 어디로 없어진 지도 모른 채 살아가야만 할 텐데 과연 그것이 지금의 이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남이 나를 조종하는 것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다만,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 취사선택의 기준마저 어느 이야기의 부여된 역할놀이극에 불과할 지모르나 나는 일단 내 가 세운 기준에 맞춰 무너지지 않는 신념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게 내 인생을 빛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44. 반면 21세기의 우리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로 넘쳐난다. 검열관들조차 정보를 차단하려 애쓰기보다,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하찮은 것들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느라 바쁘다.
- 뉴스는 뉴스로 덮는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 시선을 차단하는 것보다 쉽다.
45. 모든 이야기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 나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꼭 맹점이나 내적 모순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완전무결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 인생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야기는 두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첫째, 내가 맡을 어떤 역할을 부여해야만 한다.... 둘째, 좋은 이야기는 무한정 확장될 필요는 없지만 지금 나의 지평은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46. 사람들에게 어떤 허구를 정말로 믿게 만들고 싶다면, 그것을 대신해서 희생하는 족으로 그들을 유도하라.
47. 특정한 믿음을 위한 희생이 크면 클수록 신앙은 더 강해진다.
48. 희생은 당신의 사랑이 진지하다는 것을 연인에게 혹신시키는 방법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 당신이 정말 사랑에 빠져 있음을 확신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49. 도저히 이상에 맞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해결책으로 희생에 의지한다. 어떤 힌두교도는 세금 사기에 가담하고, 이따금 몸을 파는 매춘부도 찾고, 나이 든 부모를 학대하기도 하지만, 자신은 아요디아에 있는 바브리 이슬람 사원의 파괴를 지지하고 그 자리에 힌두 사원을 짓는 데 헌금까지 냈으니 아주 독실한 신자임에 틀림없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50. 인간은 동시에 몇 가지 이야기를 믿었으며 어느 한 이야기의 진실만 절대적으로 확신한 적은 없었다. 이 불확실성은 대부분의 종교를 덜컥거리게 했다. 이에 따라 종교는 신앙을 핵심 덕목으로, 의심을 최악의 죄악 중 하나로 간주했다. 마치 어떤 것을 증거도 없이 믿는 데에 본질적으로 선한 무엇이 있는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근대 문화가 부상하면서 상황은 뒤집혔다. 신앙은 점점 정신적 노예처럼 보였고, 의심은 자유의 전제 조건으로 비치게 되었다.
51. 내 안의 선전 기계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기억들과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들로 나만의 신화를 구축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진실과는 닮은 것이 별로 없을 때가 많다.
-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리처드 도킨스는 나의 육체와 정신이 유전자의 확산에 필요한 표현형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유발 하라리는 내 안의 선전기계가 나의 이념을 내게 맞춰 구성한다고 얘기한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세상의 편견을 실행하고, 세상에 유전자를 남기는 기계에 불과한 것인가?
52.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페이스북 계정이나 자기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와 자신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몸과 마음의 실제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53. 어떤 거대한 이야기에 직면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실체인지 상상인지 알고 싶다면 핵심 질문 중 하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54. 하지만 인생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내가 죽고 난 뒤가 아니라, 죽기 전에 생기는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삶을 이해해야 한다.
55. 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뭔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내 정신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반응한다. 고통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나 자신의 정신이 일으키는 정신적 반응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더한 고통의 발생을 그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