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 오키나와 나가하마

간단 여행기 5 - 남편시점

by 호랑이아저씨

바다를 참 많이 다녔다.

부산 영도 할머니댁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그 때 기억이 좋아서일까. 바다만 보면 뭔가 마음이 편하고 따뜻하다.


사실 마음만 따뜻하고 편했지 바닷물에 발을 담그거나,

몸을 담그는 건 너와 만나기 전까지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반면 너는 물만 있으면 일단 발이든 몸이든 적셔야 직성이 풀렸다.


영도 바다는 가까이할 수 없는 바다였고,

네가 살았던 해운대 바다는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바다였기 때문일거라고 추측해본다.

우리가 만난 건 서울이었지만, 어느 시점에 부산의 어느 장소에서 분명 스쳤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살다가 만나서

오키나와까지 오게 되었다.


항을 나서자 한여름같이 따가운 햇살에 찌는듯한 더위가 우릴 맞이했다. 10월 말이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정말 바쁜 와중에 짬을 쥐어짜서 고작 2박 3일로 왔기 때문.

차를 급히 빌리고, 오키나와 본섬의 중간쯤위치한 리조트로 차를 몰았다.


겨우 도착한 리조트.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한다.

우리는 짐을 급히 풀고, 바로 바다로 달려나가본다.


그런데 이게 길이 좀 신비롭다.

리조트를 나서서 키보다도 높은 풀숲 사이로 난 길을 헤치고 나가야만 해변이 나오는데, 풀숲으로 만들어진 길 끝으로 해변이 곧바로 보인다.

때문에 사뭇 비밀의 바다로 향하는, 혹은 다른 세계로 향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길을 지나야 바다가 나온다

풀숲길을 헤치고 오니, 하얀 백사장이 우릴 맞이한다.

크지도 않다. 그렇다고 작지도 않다.

오키나와는 날씨가 여행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는 딱 알맞은 날씨에 딱 알맞은 수온을 만났다.


정말 잔잔한 파도에 밑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물, 여기에 발을 담그면 그래도 10월인데...짜릿한 차가운 물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물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하다. 이게 바다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따스함, 포근함. 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해변에서 뛰어다니고, 석양도 바라보다가, 물에 들어가서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물고기 찾겠다고 갯바위 근처로도 가보고... 그러면서 해가 완전히 넘어 갈때까지.

해지는 나가하마

날이 어둑해지자 모래사장 속에 숨어 있던 게들이 한 두마리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한낮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더니...

밥 때 맞춰 돌아가는 것 같았다.


우리도 밥때를 맞췄다.

이온마트에서 산 회와 맥주를 먹고

산책겸 다시 해변으로 향했다.

개코도마뱀이 발길에 맞춰 스륵스륵 흩어진다.

리조트 앞 가로등만 보이고 다른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이 너무 어둡다보니 겁많은 너는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나는 해변으로 가야할것만 같았고, 언제또 와보겠냐며 너를 다그쳤다. 결국은 내 승리.


해질녘 갔던 어둑어둑한 풀숲길을 따라 해변에 도착하자

완전히 새로운 경이 또 우릴 놀라게 한다.

신비로운 걸로 치면 아까보다 3배정도


한밤중인데도 하얀 백사장은 더 하얗게, 해변도 더 반짝이게 빛나고 있던 것.

다시한번 말하지만 오키나와 여행의 성패는 날씨가 좌우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

'단, 달이 떠 있으면 가점을 줄 수 있음'

100점 만점에 95점인 날씨에 달빛가점 5점을 받아 100점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넋놓고 바라본다. 한참을 멍하니 있는다.

게들이 또 바다로 뛰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