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2 노고단

간단 여행기 1 - 아내시점

by 호랑이아저씨

어렸을 적 생각해보면 경상도에 살았지만 자주 지리산 인근에 놀러왔던 것 같다.


기억에 아빠 차를 타고 갔던, 어딘지 모르지만, "지리산 노고단"이라 했던 곳에 내 인생의 여러번의 새해의 날들을 맞이했던 듯 하다.


하지만 이번에 남편이랑 남원에 놀러가서 "지리산 노고단'을 가서야, 내가 어렸을 적 갔던 곳은 "지리산 노고단"이 아닌 "지리산 성삼재"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리산 노고단을 올라가 본 적은 있기나 했던 걸까!

지리산 성삼재 휴게소

남편이 산에서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몇일 전부터 귀에 박히게 이야기를 해서, 이것 저것 준비해서 지리산 성삼재에서 출발을 했다.


사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내 체력이 많이 좋아진 것인지는 몰라도, 한 숨에 노고단 대피소까지, 또 노고단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 '야생 동물 주의'라는 문구에 순간 순간 겁은 났지만 설마 그 야생 동물의 피해자가 내가 되겠어 라는 마음으로 겁나지 않은 척 올라갔다.


나는 조계종의 유명하신 스님이신 성수 스님이 이름을 지어주시고, 신라 선덕여왕 같은 여성이 되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노고단이 옛 신라 화랑들이 훈련을 하던 곳이고, 국가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해서 많이 기대를 했고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지리산은 정말 깊고 넓고 멋있고 따스한 산이었고,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햇살이 따스했다. 여기를 둘러싼 시골말을, 남원, 구례, 하동 전라도의 시골 마을 마을을 비춰주는 듯 했다.


하지만 몇발자국 더 올라간 노고단은 너무나 춥고 거세고 차가웠다. 온갖 바람과 얼음결정체가 노고단의 돌 하나 하나를 꽁꽁 얼려 놓았다. 너무 추워보이고, 외로워 보이고, 많은 세월의 풍파가 얼어 붙게 한 것 같았다. 온갖 한반도, 아니 전라도 이 지역의 고통을 지리산 노고단에서 짊어지고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오랜 세월을 말이다.


노고단의 서림과는 달리 둘러싼 멋지고 따스한 풍경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런 마음이 너무나 얕은 마음이었을까? 풍경을 담고 있었는데, 내 핸드폰 카메라 속에서 검정색 까마귀 같은 새가 한마리 날고 있기에 이 추운 곳을 잘도 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엄청난 굉음이 머리 위를 지났고, 내 나이키 캡모자는 날라가 버리고, 노고단 위에 나랑 남편밖에 없었는데 남편은 갑자기 "OO야!!! 저기.!!!! 전ㅌ..." 나는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도 몰랐지만, 무조건 남편 쪽으로 뛰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전투기였다. 전투기 엄청 큰 블랙 전투기가 머리위를 굉음을 내고 지났다.


나는 남편이 소리를 지르기에 일단 남편한테 달려가야겠다라는 자동 반사적인 생각으로, 노고단 탑 옆을 뛰었다. 전쟁이 난줄 알았다. 뛰어가는 순간, 한 돌부리에 걸려, 아, 넘어지는구나를 느꼈다. 결국 내가 착지한 곳은 돌 무더기 바닥. 무릎 손, 잘못하면 얼굴까지 다 다칠뻔했다.


손에는 피가 났고, 무릎은 너무 아파 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고, 춥기는 너무 춥고, 주저 앉아 일어나진 못하고, "왜 나한테 소리를 질렀어!! 오빠한테 뛰어가다가 넘어졌잖아 어어엉엉"


내가 남편 반대로 뛰었으면.... 저 밑으로 떨어졌을 수 있겠다고 너무나 아찔했다.


다행이 움직일 수는 있어서 일단은 정신을 차리고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노고단 대피소까지 다시 내려갔다.


그런 이상한 기이한 해프닝이 있었다.


노고단 대피소에 다행이 잘 내려왔다.


대피소에는 추운 겨울 산 바람을 피해 가족, 친구 단위 등산객이 자리를 비킬 생각이 없었다.


혼자 온 내 또래 여성분이 자리를 양보해주는 덕에 다행이 자리에 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싸온 먹을 거리들을 꺼냈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남편은 "이지밥 핫앤쿡 라면애밥 짬뽕맛" 을 만들었다. 이거 정말 물건이다.


예전에 겨울의 제주도 설산 여행에도 굉장히 맛있게 먹었었는데, 이번에는 더 맛있었다. 우리 둘 중 하나가 여기에 넣을 물을 올라가는 길에 분실한 탓에, 쌓인 눈을 녹여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눈물겨운 라면애밥이 떠올랐다.


양보해준 그 여성분은 혼자 이 산을 올라오면서 먹을것 하나 준비를 안해온 것 같았다. 어제 남원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제과"에서 사온 카스테라 반쪽을 떼어서 드시라고 줬다. 민망할까봐서 "자리 비켜주셔서 감사해요 :)" 하고 드렸다.



남편은 지리산이 으슥하다는 표현을 했으나, 나에게 이 곳은 참 아름답긴 했다. 근데 기운이 분명 세고 영엄한 곳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 곳에 따스함이 더욱 가득하길 빌어본다.

[출처] 2026.01.02 노고단 (아내)|작성자 호랑이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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