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여행기 6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으레 후쿠오카, 오사카, 도쿄, 교토와 같은 곳을 방문하기 마련이다.
가깝고 부담이 없어서 그럴 거다.
나는 어쩌다보니 첫 일본 여행을 훗카이도로 가게 됐다.
그것도 최북단 쿠릴열도 바로 아래에 있는 시레토코로.
가까운 이웃국가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다보니
일본여행에서 조차 샛길정신이 발동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우리는 삿포로 1박, 시레토코 1박, 삿포로 1박
하루에 한번씩 비행기를 타는 말도 안되는 일정을 세웠다.
시레토코로 가는 비행기는 프로펠러 비행기였다.
프로펠러 바로 앞 좌석이었는데
비행기 공포증이 아직 남아있던 너는 눈을 꼭 감고 숨죽이며 탈 수 밖에 없었다.
이럴 때보면 내가 참 잔인하다.
어떻게든 내 고집대로 끌고와버리니.
하늘 아래서 본 훗카이도 북부는
정말 광활한 농경지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땅.
부럽다고 생각했다.
북방이라 한겨울엔 눈에 덮이겠지만
저 드넓은 땅에 감자를 한철만 수확해도
혹은 소를 풀어놓고 키워도
얼마나 많은 식량이 나오겠는가.
우리 땅이 참 좁다.
메이지 유신때 왜 공격적으로 훗카이도를 개척했는지 알겠더라.
일종의 1세대 식민지로 생각한 건 아닐지.
2세대는 조선이고 말이다.
넓디 넓은 땅에 비해
시레토코의 관문인 나카시베츠 공항은 아주 작다.
직장인들이 출장차 오는 것을 제외하면(왜..여길?)
일반 관광객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타고온 비행기가 30인승 정도였다.
렌터카를 빌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난생 처음 오른쪽 좌석에 앉아본다.
깜빡이를 킨다는 걸 자꾸 와이퍼를 키는 문제 말고는
다행히도 생각보다 금방적응 된다.
무엇보다 이 동네는 차가 거의 없다.
있다라더라도 매너운전자들이다.
딱봐도 초보티가나면 바로 양보해준다.
호텔까지는 공항에서도 차로 2시간.
호텔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훗카이도 시레토코 반도의 저 동쪽 끝,
오호츠크해를 바라보고 있는 라우스이다.
호텔은 아늑했다.
식사는 더할나위 없었고
대욕탕은 깔끔하고 넓었다.
이 멀고 먼 일본의 저 북쪽 땅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시레토코 반도는 야생동물이 참 많은 곳이다.
차를 몰다보면 사슴이 풀을 뜯고 있고,
도로변에서 우리를 쳐다본다.
밤거리를 유심히 바라보다보면
가로등 사이로 여우들이 지나다닌다.
아... 곰도 있다.
라우스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린 유산센터 트레킹에서
정말로 곰을 만났다.
다행히도 데크 위에서 본거라
사람들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시레토코는 그런 곳이다.
훗카이도 시레토코는 겨우내 눈에 뒤덮여있다.
바다엔 오호츠크해에서 내려온 유빙이 떠있다.
우리는 여름에 갔다.
여름에만 라우스에서 볼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호텔(우토로)에서 라우스로 넘어가는 길은 정말 험하다.
다시는 운전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나는 오른쪽 운전석이 처음인데
도로옆으로는 낭떠러지만 이어진다.
334번도로. 겨울에는 폐쇄된다.
중간에 라우스산과 함께 한 컷,
저 멀리 날아다니는 맹금류 구경도 좀 해주고
제시간에 맞춰 라우스 항구에 도착했다.
이제 배를 탄다.
범고래를 보러간다.
너의 얼굴은 벌써 질렸지만...
나는 미안하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까지와서 이걸 포기하면
공항철도타고 비행기타고 철도타고
비행기타고 차타고 차타고 배탄 보람이 없다.
2시간 남짓 범고래를 찾으러 떠났다.
바람이 너무 차가웠지만 여기저기 고갤 돌려본다.
'아~소꼬니 아리마스!' 일본 가이드가 관광객들을 부른다.
쪼르르 달려가보니 작은 범고래가 첨벙첨벙.
저 멀리도 큰 범고래가 첨벙첨벙
그러다가 수십마리가 첨벙댄다.
애기 범고래는 배를 까고 끼끼 소리를 내고
수영실력을 뽐내듯 꼬리를 흔들고 한바퀴 돈다.
범고래가 자라면 지느러미부터 자라나보다.
지느러미가 클 수록 더 큰 범고래다.
언제 이런걸 볼 수 있을까?
우리의 노력과 정성이 닿았던 걸까
보통은 한마리도 못보고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들었건만 정말 운이 좋았다.
그런데말이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걸 여기서 다시 또 느낀다.
그렇게 신기하던게 1시간쯤 지나니
아이고 또 왔니, 또 첨벙대니, 언제가지? 춥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다시 한번 더 보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몸이 너무 지쳤던 탓일 수도 있겠다.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너무 멀어서 그런걸 수도 있겠다.
라우스산을 넘어야하고, 차를 타야하고, 철도를 타고
삿포로로 다시 들어가고
그 다음 날에는 다시 출국해야하니 말이다.
이때까지만해도 그랬다.
우리의 여행은 쉼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쉼이 없는 여행이 여행인지 고민이 들기도 했다.
여행을 인생에 있는대로 때려넣은 다음에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태도가 생길거라 생각한 게 이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