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관한 문장들. zip
요즘 책을 읽다 보면 유독 가족에 관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어려운 관계다. 세상에는 가족과 관련된 텍스트와 영상이 넘쳐난다. 우리 가족은 이러한데 다른 집은 이러하더라, 우리 가족은 정상적인 가족이 아닌 게 아닐까? 혼란을 겪고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혹은 자신의 가족이 미디어에 비치는 화목한 가족의 형태에 들어맞아 다행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미디어에 나오는 연예인 가족의 모습이 쉽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비록 매체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과 다르더라도 잘못된 것은 없다, 다를 뿐이지. 그래도 괜찮다, 가족이다.
책 <모순>의 주인공인 안진진의 삶을 읽어내리다 기억 저편 조승리의 에세이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가 떠올랐다. 결핍을 모르는 활동 보조인 수미 씨의 말에 버럭 화를 내던 작가의 모습이 말이다. 성치 못한 자식을 챙기고 희생해야 함이 당연하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욕하는 수미 씨의 말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작가가 말했다.
“수미 씨는 장애인 자식 없어 봤잖아요. 그래본 적 없으면서 희생하지 않는다고 헐뜯을 자격 있나요?”
그리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부모를 존경하진 않아요. 또 존경할 만한 부모 밑에서 태어날 수도 없고요. 세상에 수미 씨 부모님 같은 분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편협한 사고예요.”
수미 씨는 자신의 오만함을 시인했다.
작가는 수미 씨의 말에 왜 화가 났던 걸까?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와 ‘너를 지켜내서 다행이야’라고 말한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서일까?
장애가 있는 자식을 가진 부모는 미운 말을 쏟아내다가도
다시 사랑을 속삭이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는 겪어 알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그 부모를 욕하는 수미 씨에게 화가 난 것이다.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 속 주인공 ‘안진진’ 또한 부모로서의 어려움과 인간으로서 가지는 그들의 고뇌를 이해했다. 아니 받아들였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도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가출했던 것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많이, 실컷 원망하고 미워해서 그 미움이 기화되기라도 한 듯, 병들어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연민했다. 연민 속에 사랑이 있었다.
p.21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안진진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불행의 연쇄에도 짐짓 무덤덤해 보인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모순을 그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p.51 ‘진모의 인생은 나의 남동생의 인생이다. 주체를 나로 놓고 보면, 그러면, 중요도가 확 달라진다. 조용히 입 다물고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내 인생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나의 남동생의 인생고 가끔씩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안진진의 가족을 보고 ‘가족도 아니다’, ‘내버려 둬’, ‘절연해’라며 쉽게 내뱉을 것이다. 멀어질 필요가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나, 절연이란 어려운 일이다. 안진진의 말마따나 나 또한 불행이 닥친 가족을 보면 그냥 구경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가족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내 엄마, 내 아빠, 내 오빠, 내 동생에는 조금씩 내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나 또한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가족들에게 계속 참견하며 살아갈 것이다.
p.173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연적의 뒤통수를 갈겨 감옥에 갈 행동을 한 안진진의 동생 진모의 행동을 꾸짖고 욕하는 사촌 주리는 수미 씨를 떠올리게 한다.
만약 과거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한 조승리 작가의 어머니에 대해 수미 씨와 주리가 들었다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그녀를 나쁜 어머니라고 생각했을까.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면,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양면이 있음에도 한 면만 보는 그녀들에 답답해했던 것이겠지. 나를 사랑한다 했으면서 손바닥을 때리는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던 경험이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혼내고 손바닥을 때려도 제삼자가 아닌 자식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있다. 사실 때리길 원해서 그랬다기보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인생에 어찌 행복만 있을 수 있겠는가. 불행이 있기에 행복도 느낄 수 있고 행복이 있기에 불행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풍부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둘 다 느끼는 삶이 아닐까? 그래서 안진진의 어머니는 버텨낼 수 있었고, 이모는 버텨낼 힘이 없던 게 아닐까. 적당한 불행은 오히려 삶에 활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