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존재했지만 들을 수 없는 그 소리들
중국은 검열이 심한 나라이다. 방송국이며 신문사 같은 언론을 통제하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이겠고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연히 일어나던 일이라 퉁명스러운 표정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여 볼 수 있지만 개인에 대해서도 세심하고 엄청한 강도의 통제가 이루어진다. 가장 간단한 예로 전 세계 언론, 문화, 방송, 심지어는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흔한 플랫폼들이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경로"라는 표시로 접근금지되어있다. 앱 스토어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다양한 의견에서 중국 사람들을 떼어놓으려는 심산인 것이다.
사실 중국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주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있지만 덩샤오핑 시대 개방 이후 자유 경제주의의 장점을 빨리 받아들이고 시대 흐름을 잘 탄 일부 대도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본이 주는 자유를 어느 나라보다 만끽하며 살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개혁 개방 파도에 올라타 일찌감치 경제적인 부를 거머쥔 사람들은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중국의 적절한 통제 시스템을 오히려 즐기며 조금은 덜 치열하게, 느슨하게 살아오고 있었다. 돈만 있다면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는 철저한 자본주의식 사고로. 하지만 그런 그들의 오해는 이번 봉쇄를 통해 완전 박살이 나고 말았다.
중국사람들은 정부 지시에 잘 따르는 편이다. 좋은 표현으로는 "순하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정부나 공공 기관에 대해 겁을 내는 정도이다. 그래서 내 재산,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크게 흥분하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이뤄진 봉쇄 통지에도 "이게 무슨 일이람" "이를 어쩐담"하며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몇백 명이 모인 대화방에서 정부를 비난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이런 처사에 단체로 맞서자며 사람들을 부추기는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조치가 행해졌다면 시청이나 경찰서, 혹은 대통령 거처가 한 순간에 박살이 났을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나라라면 온 거리가 밝은 촛불로 가득 찼을지도.
그도 그럴 것이 몇 사람 이상이 모인 단체방에서 정부나 정책을 크게 비난하거나 특히 사람들을 선동하여 단체 활동을 하자고 부추기는 내용이 오가게 되면 앱 자체 검열에서 관련 단어가 감지되어, 그 방은 자동으로 삭제되며 단체방에 속한 인원들은 경고를 받게 된다. 단체방 관리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내용이 심각할 경우 공지 없이 메신저 계정 자체가 없어지기도 한다. 메신저 계정 하나쯤 없어지는 것이 어떨까 싶지만, 거의 모든 생활이 위챗 wechat이나 즈푸바오 zhifubao 같은 메신저 앱으로 이뤄지는 중국 사회에서 메신저 계정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코로나 이후 이 두 가지 앱에서 제공하는 그린 코드가 없으면 집 외에는 아무 곳도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아, 집에서의 생활도 불가능하겠구나. 며칠이 지나도록 핵산 검사를 하지 않으면 경찰들의 반갑지 않은 방문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체방에서 정부를 지칭할 때 중국어 병음인 zhengfu를 간략히 "zf "등으로 암호화해서 거론하곤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암호지만 "이런 내용은 조금 조심스러워"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도 이러한 점을 우려해 코로나를 ㅋㄹ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근 몇 년이래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고,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단어지만 워낙 조심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다. 대학생 때 주먹 불끈 쥐고 단체 구호라도 외쳐봤던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지금 우리에게 불타오르는 정의감 같은 건 없다. 그저 외국인이라도 그 문을 들어서는 순간 죄인이 되어버린다는 중국 공안국(경찰서)과는 어떻게든 엮이고 싶지 않은 뿐이다. 화가 나지만 이곳을 탈출하기 전에는 참는 수밖에 없다.
봉쇄가 되었다 하니 제일 먼저 돌아오는 질문은 보통 "그럼 시장이나 마트는 어떻게 가"였다. 하지만 질문이 맞지 않다. 시장이나 마트도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봉쇄 초기에는 마트도, 시장도, 관공서도 모두 문을 닫고 길거리에는 그 누구도 통행을 할 수 없었다. 흰색 방호복을 입을 따바이 大白들만 느린 걸음으로 가끔 오고 갈 뿐, 심지어 길거리를 떠도는 개와 고양이들도 잡아가 처리를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설마 싶었지만 포획망에 겹겹이 실려 어디론가 사라지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정부에서 나눠주는 구호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고 배송 차량, 인원 문제로 일부는 상하이 시내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썩어버렸다는 뉴스가 돌았다. 구호물자 공급이나 품질에 문제가 없었던 우리 아파트에서도 감자가 크다는 둥 작다는 둥 닭고기가 검다는 둥 희다는 둥, 크고 작은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구호품 비교 사진에서 다이아몬드 등급을 인정받은 부자동네가 그저 부러운 모양이었다. 강제로 갇혀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기본적인 문제는 묻지 않고 부수적인 것들에 불만을 표하다니. 뭐가 진짜 문제인지 그들은 생각해보았을까.
말도 안 되는 온갖 상황에도 순한 양같이 굴던 상하이 사람들도 배고픔은 못 견디겠는지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럭셔리 구호품을 받은 부자 동네 건 당근 하나 양배추 한 개만 공급받은 동네 건 단체로 밥그릇을 두드리는 항의가 일어났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신분을 감추고 집안에서 베란다 밖을 향해 밥그릇을 두드리며 "배고프다 먹을 것을 달라"를 외쳐댄 것이었고, 별다른 마찰 없이 그저 항의로 끝났다고 들었다. 이 또한 항의사태가 지난 후, 한국 뉴스를 통해 접한 소식이다. 아마 사설 외부망을 통해 sns를 타고 해외로 나간 짧은 동영상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문 밖을 나서지도 못한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온 항의 구호가 "배고프다" 였다니 21세기 대도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꽁꽁 묶인 상태긴 했지만 정부에 대한 불만에 극에 달하던 4월 말쯤, 내용을 알 수 없는 동영상이 사람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위챗 모멘트에서 나타났다 삭제되고 나타났다 삭제되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다들 궁금해했지만 이미 삭제되어 볼 수 없는 그 파일의 이름은 "4월의 소리 四月之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흔한 4월의 소리-벚꽃나무 아래 까르르 거리는 소녀들의 웃음소리, 꿀을 나르느라 바쁜 브브브 꿀벌의 날갯짓 소리, 햇살이 부서지는 호수 위 뒤뚱뒤뚱 오리배 페달에 감기는 찰랑거리는 물소리는 여기에 없다.
게시물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친구에게 전달받아 조심스럽게 열어본 이 동영상 파일에는 검은 상해의 풍경을 배경으로, 슬픈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절대 전체 도시 봉쇄는 없을 거라는 단호한 정부 인사의 목소리에 이어 아픈 부모님을 병원에 모셔가게 해 달라는 남자의 울음 섞인 목소리, 기계처럼 원칙만 읊어대는 침착하고 차가운 공무원의 목소리, 엄마 곁을 떠나 격리를 떠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밥그릇을 두드리며 구호품을 달라고, 혹은 문 밖을 나서게 해달라고 단체로 항의하는 목소리. 어떻게 채집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준비되지 않은 봉쇄가 불러온 상하이 시민들의 슬픈 목소리들이 상하이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파일의 내용에 공감을 무척이나 한 듯 분노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동영상을 퍼 나르거나 개인의 모멘트에 게시를 시작했고, 영상은 게시하는 순간 자동 삭제되었지만, 항의의 의미로 삭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게시를 한다는 게시물도 함께 올라왔다. 나라의 큰 행사를 지지하거나 경축하는 일 외, 이렇게 중국 사람들이 단체로 행동하는 모습을 (비록 소수이지만)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게시물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며, 사실 그 파일에 대한 얘기를 중국 사람들과 나눠본 적도 없다. 동영상을 떳떳하게 게시했던 우리 아파트 몇몇 주민들 또한 단체방에는 이 파일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늘 그랬듯 구호품에 대한 불만이나 귀여운 고양이 자랑에 바쁠 뿐이었다.
내가, 그리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화가 났던 건 이런 슬픈 4월의 소리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와중에도 "질서와 규율로 행복한 상하이" "상하이 파이팅" 등의 국뽕 냄새가 물씬 나는 홍보 영상과 구호들이 뉴스며 각종 플랫폼에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상하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봉쇄가 끝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상하이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을 보니, 그저 이곳에서 오는 물건이나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심만 계속 키워대고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중국 외 다른 국가 사람들이 더 실상을 잘 알지 않았을까. 해외에서 발행된 뉴스들은 갇힌 사람들의 어려움에 포커스를 맞추긴 했지만 적어도 객관적이긴 했으니. 중국 사람들은, 어쩌면 상하이 시민들조차도 그때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그 옛날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른 지역에서 몰랐던 것처럼.
이제 그때 우리가 겪은 4월의 소리는 더 들을 수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정부의 계획대로 이미 다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몰래 개인의 컴퓨터에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 그 소리들은 마치 그 다른 이름의 파일이 된 냥, 어느 날 조용히 사라져 버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