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들은 왜 봉쇄 해제되었을까

생각지 못한 시점에 줄어든 내 체중, 2kg

by 보부장


나는 30년이 넘는 다이어트 전문가다.

어렸을 때의 철없던 온갖 시도는 접어두고 최근 약 10년간의 다이어트 기록을 되돌아보자면


-며칠에 걸친 쉽지 않은 가격 협상을 통한 1년 치 헬스클럽 등록은 기본이다. 그리고 일 년에 딱 협상 기간만큼만 더 방문했던 것 같기도…

-근육을 만들 목적은 아니지만 단백질 파우더를 준비해 둔다. 밥 대신 먹으면 살이 빠진다던데 밥과 함께 먹으니 어째 살도 근육도 같이 늘어나는 것이 단점이다.

-지방 흡수를 막아준다는 일본산 식품보조제를 먹는다. 식전 식후 두 종류 브랜드별로 모두 구비하고 있다. 출장길에 다이어트 전문가인 팀장님을 따라 사 본 것인데, 이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먹거나 기름기가 흥건한 음식에 느끼함을 주체할 수 없는 날,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가끔 먹고 있다. 이미 유통기한이 4년이 지났지만 뭐 어때. 탈이라도 난다면 장을 비우는 효과까지 볼 수 있을 것 같다.

-번외로 배꼽에 넣어두면 온 몸의 혈기를 왕성하게 해 주어 살을 빼준다는 재료를 알 수 없는 신기한 고약 덩어리도 사서 붙이고 다닌 적이 있다. 정수리에 한기가 들어 급히 한약방을 찾았던 날, 내 배꼽에 붙어있던 한약 고를 발견하신 선생님과 남편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친절히 혈액순환의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해요 선생님, 좋게 얘기해주셔서.




그렇게 정석이건 변통이건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증가하던 내 몸무게가 봉쇄 이후 천천히 줄어들고 있다.

3월 18일부터 2주 동안 2kg 이 줄더니 그 후 2주 동안 2kg 더, 총 4kg 이 넘게 체중이 빠졌다.


워낙 발발거리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는 틈만 나면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걸으며 조금이라도 더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주부추후足不出户, 한 발짝도 문 밖을 벗어나지 말라는 통지 이후에는 하루 평균 걸음수가 200-300걸음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론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느라 자박자박 바쁜 걸음만 해도 적은 수는 아니겠지만 평소 걷던 걸음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식사량이 현저히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전보다는 풍족하게 먹지 못하고, 식자재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일부러 배를 골리던 때보다는 많이 먹고 있는데 말이다. 살이 빠지다니.


혹시나 해서 작아서 입지 않는, 아니, 입지 못하는 바지를 꺼내어보았다. 올해 초, 스타일도 좋고 가격도 딱 맘에 드는데 사이즈가 조금 작아서 고민을 하다가 ‘그래 이 정도 살은 뺄 수 있지’라고 덥석 집어왔다가 역시 봉쇄 직전까지도 입지 못 했던 바지였다. 아직 달랑 거리는 택을 모르는 척하며 조심스럽게 입어보는데 어라, 꽉 조여서 보기 흉하게 도드라지던 힙과 아랫배가 자연스럽게 옷 속에 숨겨졌다. 안되면 내년에는 긴 셔츠와 함께 입어야지 생각했는데 다행히 짧은 티셔츠에도 흉하지 않게 입을 수 있겠다. 히히.


왜 살이 빠졌을까. 이 기쁜 소식을 호들갑스럽게 소문을 내고 여기저기 반응을 들어본 결과 아마 버터가 잔뜩 들어간 빵이나 과자, 다음 한 입을 자꾸 유도하는 조미료로 만들어진 식당 음식, 자주 마시진 않지만 당분이 어마어마한 나이차와 과일주스를 끊었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 소금이나 설탕을 적게 사용하는 맛없는 조리법 덕분에 나도 모르게 식사량이 줄어들었나? 매우 타당하군.


그런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니 걷기 등의 기본적인 운동도 하지 못해 근육이 빠져나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얼마 있지도 않은 근육을 키우기는커녕 전혀 쓰지 못하고 있으니. 체중이 줄어든 일을 무작정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했는데, 뼈에 지방만 붙어 있을 상상을 하니 어휴, 층간소음이고 뭐고 제자리 뛰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질문에 그렇게 예민한 성격은 아니라며 웃어넘겼지만 꼼짝 못 하는 봉쇄 생활과 식자재 전쟁의 참패 후 진하게 느껴지는 패배감도 영향이 있었을까? 나는 괜찮다고, 별로 힘들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으면 같으면 한라산 꼭대기이라도 한 걸음에 올라갈 수 있을 듯하다. 하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어하던 딸아이가 아직 혼자서는 땅을 짚는 시간이 더 많을 만큼 서투른 자전거가 다 그립다 할 정도이니, 봄이면 땅에 붙을 시간이 없던 내 궁뎅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구나. 가만, 그래서 힙이 유난히 더 홀쭉해졌나…?






살이 빠져 새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새 옷이라고 챙겨 입고 나갈 곳은 없다는 것은 많이 슬픈 현실이다. 가끔 에어컨을 켜고 싶을 만큼 더워지는 날씨를 보아하니 올봄은 이미 꽃잎과 함께 안녕 안녕. 이 옷은 내년 봄에 다시 꺼내 입어야 할 듯하다. 자르지 않은 가격택도 그대로 함께 다시 고이 모셔둔다. 어차피 올해는 봉쇄로 도둑맞은 봄, 내년에 새로 맞이할 때 이 또한 새 옷이라 우기면서 꺼내 입어야지. 아, 그때까지 체중이 다시 불어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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