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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하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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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장 Nov 13. 2022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 없음  

최근 간단명료하고 날렵하지 않은  문장들을 보며 나이 든 여자의 청승맞은 긴 머리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소중한 책 선물을 받았다.


그림처럼 쌓여있는 책들 중, 내가 좋아하는 책을 골라가지는 독특하고 주동적인 선물 방식이었는데  “역대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가들의 섬세하고 아름 다운 내면의 고백”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누군가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해 둔 것 같았다. '내가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떠들었던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손은 빠르게 , 저요 저요, 이 책을 신청했다.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소설가들의 에세이에는 내가 참고할 만한 문장들이 많을 이라는 기대감에 두근두근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역시, 대상까지 받은 작가들의 글이란.  각각 스무 페이지 남짓한 짧은 글들은  거대한 서사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없이도 좋은 글이 고팠던 초짜 글쟁이를 쉴 새 없이 채워주어 , 나는 22편이나 되는 글을 미간의 근육까지 두텁게 세워 가며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빠르게 한번,  그리고 좋았던 글은 줄을 쳐가며 꼼꼼히 다시 한번, 계속 곁에 두고 읽어보고 있다.





좋은 글들을 읽게 되어 마음이 꽉 차기는 했지만

그에 비해 내 글들이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저기 올려놓은 글들을 빼꼼히 열어 보자니, 흠..읽기에 부끄러워진다. 글자들을 부분 부분, 혹은 뭉텅이로 주워 담고 싶지만  글 창고는 작고도 빈약한지라 바꿔 내놓을 단어들도,  문장들도 없다.

그렇다고 그림은 능한가, 뭐. 딸아이는 유치원 때 자신이 그린 사람인지 나무인지 정체가 분명치 않은 온통 분홍인 그림들을 흑역사라 부르긴 하더라만,  딸아.  엄마는 어제 그린 그림도 부끄럽단다.



머릿속에 잔뜩 섞인 알록달록 생각의 실타래들을 어떻게 내 펜 끝에 걸어 글을 짜낼 수 있을까? 책을 가슴에 얹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낮은 한숨을 뱉었더니 아이가 묻는다.

엄마 무슨 고민 있어?

응? 고민?


고민

영어: Worry  걱정거리

중국어: 苦恼 kunao 쓴 뇌- 머리가 괴로운 일.



해외여행 중에라도  콧물이 날 때 먹어야 할 감기약과 목이 아플 때 먹어야 할 감기약까지 구분해서 알아낼 수 있을 만큼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초록창 검색 결과라지만 지금 나의 “고민” 이 그런 의미라면 나는 이번 검색 결과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엄마 고민 없어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 궁금하고,  또 아직은 방법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것이 내게 걱정이 되거나 머리가 아픈 일일 수는 없는 걸.

그냥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써야 할까 궁금할 뿐이야

오히려 기대가 되기도 해

한숨을 쉬어서 너에게도,  글에게도 , 내 그림들에게도 미안.



질문과 답에서 깨닫는다.

글과 그림은 내게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이나,  공부는 충분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좋은 성적을 받아내고 말겠다는 결심이 가득한 시험 전날 뒤척임 같은 것임을.


그래서 , 고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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