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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하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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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장 Nov 22. 2022

왜 글을 쓰는가

아빠의 일기장

아빠는 깡촌에서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한 트럭 기사였다.

아빠가 직업으로 여러 종류의 자동차들을 몰기는 하셨지만 내 기억 속 저장된 아빠는 5톤이나 짐을 실을 수 있는, 큰 화물 트럭의 운전기사였다. 열 살, 남들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은 컸던 나도 혼자 오르기 힘들 만큼 크고 높았던 그 트럭.


전라도 억양이 분명한 아빠가 경상도 부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일찍 어깨너머로 운전을 배워둔 턱에 일자리는 곧 잘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엔 택시, 그다음엔 큰 시내버스, 그래도 그 수입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어 아빠는 큰 화물 트럭에 까지 올라타셔야 했다. 의자는 점점 높아졌지만 일은 점점 힘들어졌고 사실 수입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장거리 운전을 끝내고 돌아오신 아빠의 곤색 점퍼에는 전국 방방곡곡의 바람내음,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 묻어있는 기름 내음,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바람과 함께 태웠을 담배 내음이 섞여 머리가 핑 돌만큼 독한 노동의 냄새가 배어있었다. 혹여 다른 가족들의 옷에 기름때가 옮겨 묻을까 엄마가 따로 빨아둔 뒤에도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집 밖 빨랫줄에서 한참 휘발유 냄새를 뿜어내던 그 점퍼.

  곤색 점퍼와 함께 더운물로  피곤함을 내려놓으신 아빠가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운행일지를 쓰는 것이었다. 출발지와 목적지, 소요된 시간, 운행거리, 소요된 기름,  그리고 아빠에게 가장 중요했을  운임까지. 곤색 점퍼 안 주머니에 잘 보관해 두었던 영수증과 작은 메모지들을 꺼내어 조심스레 풀로 붙이시는 것으로 아빠의 운행일지는 마무리되었다.  



 이런 운행일지가 습관이 되셨는지 아빠는 트럭 운전을 그만두신 후에도 늘 일기를 쓰셨다. 술, 담배 외에는 달리 지출이 없었을 테지만 (아, 가끔 동료들과 화투놀이를 하실 때  예상과 달리 큰돈을 잃어 엄마를 속상하게도 하셨지만) 아빠는 매년 연말이 되면 과감히 고급스러운 다이어리를 구매하셨다. 가죽을 흉내 낸 고급진 양장 커버에 매끈하고 우아한 아이보리 칼라 속지를 가진, 하루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양지 상사의 다이어리. 아빠의 일기책은 매년 12월 31일, 마지막 날의 기록을 끝낼 때까지 다이어리를 둘러싼 종이 커버가 그대로 유지될 만큼 아빠가 소중히 다루신 물건 중 하나였다. 중학교 때부터인가, 아빠는 내게 다이어리를 심부름을 시키셨고 나는 종이 내음이 가득한 큰 서점에서  고급스러운 다이어리를 내 것인 양 카운터에 내밀며 뿌듯해하곤 했다. 다이어리를 꽉 채울 만큼 많은 일이 있는 셀럽이라도 된 것처럼. 그리고 그런 아빠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 왜 일기를 쓰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글씨를 꾹꾹 눌러 무언가를 재잘재잘 쓰는 것이 좋았고 내 생각만으로 가득 찬 노트가 생긴다는 것이 즐거웠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이미 스스로 정리를 하셨는지 어쨌는지 아빠가 수십 년간 모아 오신 다이어리는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아빠의 마지막 다이어리에는 당신이 젊으셨을 때만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 시절에는 없던 아빠의 마음이 있었다.


아이들이 와서 좋았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보아 반가웠다

소주가 쓰다

몸이 아프니 슬프다

이렇게 시간이 가니 아쉽다

할 일이 없어 괴롭다



 벽에 등을 기대고 배를 긁으며 티브이를 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해야 할 일도, 기록해야 할 사실도 줄어들면서 일기장을 앞에 두고 당황하신 아빠가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일기장을 펴고 이전이라면 절대 겉으로는 말하지 않던 작은 감정까지 기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밥벌이 중 정확한 셈을 위해 시작되었던 아빠의 일기는 그렇게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그 삶에 대한 생각을 한 줄 한 줄 받아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 그 삶은 없어져 버렸다.

아빠도 기름값 50000원, 왕복  489km,  운행비 10만 원 기록의 끝에 그날의 짧은 소회를 남겨둘 만한 조금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 내가 읽은 아빠의 일기장은 조금 더 기쁘고 조금 더 슬프고 조금 더 가슴 아프고 혹은 조금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 글을 쓴다. 다행히 나를 둘러싼 객관적인 사실들은 이제 핸드폰 일정표에, 디지털 사진첩에 시간, 초 까지도 단정한 글자체로 박제되어있어 이제 내게 가물가물한 기억을 잡아두기 위한 일기 쓰기는 필요하지 않다. 대신 내게 머무르는 크고 작은 감정들을 한데 모으고 버무려 글로 남겨두려 한다.


설렘은 잡아두고

확신은 새겨두고

아쉬움은 달래주고

슬픔은 쪼개어내고

행복은 몇 배로 불릴 수 있는,

내 감정과 생각이 주인공인 글쓰기.


언젠가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되면, 알려드려야지. 매일 지친 어깨로 매일 아빠의 일기를 쓰는 모습 덕분에 나도 내 일기장에 충실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일기장으로나마 아빠의 마음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너무 늦었지만, 아이들을 반가워해 줘서 감사했고, 기쁘다 하셔서 나도 기뻤고, 늘 즐기시던 소주가 쓴 맛이 나고 괴로울 때 함께 해드리지 못해 죄송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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