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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안인사

가을을 알아채는 방법

입추가 지나면 생기는 일

by 보부장


엄마, 9월이에요.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도, 여름이 물러간다는 처서도 한참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낮엔 엄마 표현대로 “머리가 벌어질 만큼” 무섭게 햇볕이 내려 쬐어요. 하늘은 파아랗게 맑고 청명해만 지는데, 그래서 그런가요? 햇볕의 힘은 더세지는 것 같아요. 절기는커녕 달력도 잘 쳐다보지 않는 요즘 아이들에게 입추니 처서니, 한자 냄새 가득한 단어를 꺼내는 나는 이제 정말 “옛날 사람”이겠어요.

그런데 엄마, 절기란 참 신기해요. 여기저기서 가을이 느껴져요.

먼저 출근길, 온몸으로 맞는 무더운 공기들 속에 촘촘히 바늘 끝 같은 찬 기운이 있어요. 에어컨 바람처럼 무더기로, 억지로 갓 만들어낸 인공적인 냉기가 아니라, 뜨거운 열기 속에서 참고 지내다 조금씩 손을 뻗어낸 인내심이 느껴지는 힘 있는 찬 기운예요. 나에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가을이기도 해요. 며칠 전 출근길에 이 찬기를 만나고 여름이 곧 가겠구나 , 기뻤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구나, 아쉬웠어요.

더위에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 세수 후에 스킨로션을 간단히 바르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땀이 흘러도 얼굴이 땅기는 것 같아 수분 크림을 듬뿍듬뿍 바르기 시작했어요. 손도 건조해서 향이 좋은 핸드크림도 집안, 사무실 여기저기 던져두고요. 이제 종아리엔 각질도 일겠네요. 땀은 땀일 뿐, 가을의 건조함이 뺏아가는 피부 속 수분을 채워주진 못 하나 봐요.

손가락 끝이며 손목, 무릎이 저릿저릿히 지는 것도 찬바람이 돌기 시작한다는 거죠. 아직 이런 사우나 같은 고온 속에서도 무릎에 작은 얼음같은 냉기가 느껴져서 사무실에서는 작은 무릎 담요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아직 선풍기나 에어컨을 끌 수는 없고 무릎은 시리고. 아, 입동이 지나면 목덜미에도 얼음이 얹히더라고요. 그땐 뜨끈뜨끈 붙여줄 발열 파스를 한 박스 사줘야죠.

어디 몸이 좋지 않은 거 아니냐구요? 아니요. 어느 해부턴가 가을의 절기를 지날 때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내 몸의 작은 변화들일뿐이에요. 그러니 하는 말이지요, 절기란 참 신기하고 무섭기까지 하다고.. 환경오염 문제로 지구 평균 온도가 상승한다, 빙하가 녹는다, 봄가을이 사라진다 얘기들이 많지만 때가 되면 계절은 찾아오고 온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맞아요. 그중에서 특히 내 몸은 가을을 반기는가 봐요.

아차, 마지막 한 가지. 더운 여름을 지나며 “지치지 않으려면 입맛이 없지만 잘 먹어야 한다”는 좋은 핑계로 몸이 잔뜩 무거워져 버렸는데, 아뿔싸, 가을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죠. 요즘 어찌나 입맛이 돌던지 말이에요. 엄마가 만들어준 소중한 김치에 흰밥만 먹어도 한 그릇 뚝딱, 뭐든 유난히 맛있더라구요. 가을이 오는 게 맞네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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