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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흡연을 즐깁니다.

간접적이긴 하지만요

by 보부장

나는 가끔 담배 연기를 즐긴다.


최근 들어 금연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흡연자들이 여기저기서 구박을 받는 터라, 웬 시대에 맞지 않는 고백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직접 연초에 불을 댕겨 입에 무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부터 주변이 담배향이 느껴지면(즐긴다는 표현에 어울리게 냄새라 부르지 않고 향이라 칭한다) 코를 막고 인상을 쓰며 몰상식한 범인을 잡아내겠다며 눈을 희번덕 거리는 대신 가만히 숨을 한번 더 들이마시며 공기 중에 아직 흩어지지 않았을 담배향의 끄트머리를 들이마셔본다.


아직 흡연자들에게는 너그러운 중국에서 생활하는 까닭에 담배향을 맡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길을 가다 잠시 빨간 불에 멈춰 선 자리에서, 햇살이 좋아 잠시 앉은 커피숍 테라스에서, 새시가 없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도 담배 연기는 언제나 익숙하게 나타났다 또 금방 사라진다. 꽉 막힌 사무실 건물 화장실을 제외한 곳이라면, 사실 옅은 담배냄새가, 나는 그리 싫지 않다.




한때 흡연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어렸던 그때, 이미 담배를 즐기던 친구에게서 처음 담배를 건네받아 연기를 빨아들였다. 입 담배라는 둥, 코담배라는 둥 객관적이고 않고 의미도 없는 장난 섞인 평가가 따라붙었지만 원래 익숙한 듯 그대로 한 개비를 다 피우고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불을 껐다. 자연스럽게.


사실 담배와 어색한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평생 담배를 피우신 아빠의 담배 연기와 냄새에 워낙 절어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선생님에서나 아이들에게서나 비좁은 버스에서 붙어선 아무개에게서나 마른 풀이 타는 듯한 담배냄새는 공통분모처럼 사람들 사이사이에 배어있었다. 돈을 주고 산 담배도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보다 어쩌면 어릴 때 아빠 심부름으로 산 것이 더 많았을지도.

어쩌면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처음 직접 연기를 빨아들인 그날까지 계속 담배와 친한 사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스스로 불을 댕겨 담배를 입에 물게 된 그날부터 나는 , 그냥 끄트머리에 빨간 불이 붙은 흰 막대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뿜으며 깔깔깔 친구와 같은 취미를 갖게 된 것이 즐거웠다. 나와 내 담배 친구는 통유리가 유명했던 작은 맥주집에서 이른 저녁 시간부터 1500원짜리 맥주를 한잔씩 앞에 두고 담배를 피워가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담배도 몸에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지 나는 그 뒤로도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거리낌 없이 길거리에서건 휴게실에서건 쉽게 담배를 폈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담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가족들에게 나의 흡연을 감추느라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담배가 맛있어서 라기보다 다른 사람들과 즐기는 그 시간이 좋아 담배를 폈고, 담배를 피우는 어린 여자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의 시선이 싫어 가족들에게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척했다. 사실 감출 필요도 없었던 것이, 우리 가족들은 고등학교 졸업까지 범생이었던 내가 담배를 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을 터라 담배와 관련된 질문을 받을 일도 없었다.


졸업을 하고 직장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올라서면서 내가 늘 함께 담배를 물던 친구와는 멀어지게 되었고 직장 선배, 동료들과 가끔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골치 아픈 일을 털어내는 시간을 갖곤 했다. 같은 주제를 나누는데 담배는 끈끈하게 사람들 사이를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마치 이 이야기는 이 담배연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야 라는 암묵적인 동조를 함께 하는 듯. 그러나 즐거운 이야기보다 대부분 힘든 일 이야기를 함께 해야 했던 그 시간에 내게 담배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함께 하는 사람들 없이 혼자서 태우는 담배는 연기와 빨간 불꽃, 타들어가는 가느다란 흰 몸매 만으로 전혀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아 나는 결국 담배에 안녕을 고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지금은 아이들에게 담배는 마약만큼이나 가까이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소개를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미 담배를 피우지 않은지 오래였지만, 몇 년 전 미국에 살던 내 첫 담배 친구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단 둘의 여행 동안 차에서, 식당 테라스에서 맛있게 담배를 폈다. 둘 다 아기 엄마라는 담배와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쓴 후였지만, 그냥 처음 담배를 피우며 즐거웠던 그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 깔깔대는데 담배는 시간 여행자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입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질 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거리가 깔깔대며 하나씩 둘 씩 함께 뿜어 나왔다. 그때 알았다. 우리에게 담배는 즐거운 시간을 함께한 또 다른 친구였다.


지금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담배의 해악을 알려주는 공익광고의 효과라기보다는, 서로 낮게 연기를 뿜으며 속닥 속닥 얘기를 나누던 친구가 곁에 있지 않기 때문에, 담배를 손에 쥐고도 그때의 그 기분과 즐거움까지 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담배를 달고 사는 사람들은 보통 스트레스를 푸느라 담배를 피운다지만, 담배를 피운다고 내 스트레스가 해결되진 않았다. 오히려 몇 년 전, 안 피던 담배를 피워보니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머리가 지끈 거려 머리가 멈춰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은 아예 없어지게 되었다.


가끔, 길에서 가끔 마주치는 담배 연기가 아련하게 날 달래줄 때가 있다. 중국 담배는 한국 담배보다 훨씬 독하고 고린내도 조금 더 하지만, 공기 중에 이미 흰 연기도 보이지 않을 만큼 옅어진 상태에서 내게 와닿는 담배 연기는 그저 옅은 향기로 나를 깨우고 잠시 친구와 함께 한 그 시간들을 내게 데려다 놓는다. 빨간 불이 초록 불로 바뀔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누군가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뿜었을 그 연기는 내 어깨와 눈썹 사이의 긴장을 쫓아내고 고맙게도 내게도 잠깐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스무 살의 내가 스무 살의 친구와 통유리 앞에 앉아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담배를 피우는 배달 아저씨들의 꽁무니를 좇아 질주를 하거나 담배 연기를 향해 코를 킁킁대는 정도는 아니니 오해 마시길. 그냥 그렇게 색깔 없이 옅은 향기로 추억이 다가온 것처럼, 다시 페달을 밟으며 코 끝의 추억을 떨어내고 달리는 수밖에. 그래도 담배향 덕분에 한 번은 미소를 지었으니.


오늘도 추억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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