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이 어찌 될지 모를 이 봉쇄
2022년 3월. 인구 2500만을 가진 중국 최대 도시, 아니 세계적 대도시인 상하이가 봉쇄되었다.
2020년 봄 이후 올해 3월 전까지 상해는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듯했다. 가끔 한 두 명씩 확진자가 발견되면 관련 지역의 철저한 봉쇄를 통해 모래를 덮어 불을 끄듯 다시 확진자 수를 영( zero )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감염이 발견되는 순간, 그와 관련된 장소는 그곳이 아파트건, 식당이건, 사무실이건 심지어 식당이라도, 들어갈 수는 있지만 누구도 나올 수는 없는 정책(只进不出) 아래 철저히 봉쇄를 당해야 했다.
일례로, 2022년 1월 상하이의 번화가 난징시루 南京西路의 유니클로 매장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확진자 한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가는 이유로 갑자기 건물 안에 갇혀버렸고, 마네킹에서 벗겨낸 옷을 깔고 덮으며 그곳이 안전하다는 확인(현장에서 채취한 수많은 샘플과 관련인들에게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이 끝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언제 갇힐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재난 가방을 가지고 외출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고 , 이케아 IKEA 매장이 갑자기 봉쇄를 당했을 때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적어도 먹을 것, 잘 곳이 해결되니 운이 좋았다는 농담도 나눴다. 그래, 내가 갇힌 것이 아니니 다들 그때까지는 깔깔거릴 수 있었다.
이러한 중국의 코로나에 대한 강력한 정책은 가끔 한국 뉴스에 이슈거리로 등장했다. 뉴스를 접한 가족들은 걱정스럽게 우리의 안부를 물었지만 사실 나는 이러한 강력한 정책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한가해진 중국 각지로 여행도 다니며 나름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이런 관리가 썩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적어도 2022년 3월 전까지는 말이다.
3월 초, 홍콩에서 몰래 대륙으로 넘어온 한 사람이 상하이까지 들어와 이곳 저곳, 특히 내가 사는 주변을 바쁘게 돌아다녔다는 뉴스가 흘러나온 후 상하이의 코로나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하이가 심각해지기 얼마전 홍콩 옆의 대도시 션전(심천 深圳)에서 이미 일주일 만에 제로 코로나를 달성한 중국 정부는 상하이의 바이러스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었다. “전 세계의 도시 상하이에 전체 봉쇄는 절대 없다”는 발표가 났을 때 상하이 시민들은 이런 대도시에 사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그러나 결국 상하이 정부는 3월 28일 부터 공식적으로는 60일이 넘도록 사람들을 집안에, 혹은 아파트 단지에 가두고 도시전체를 다른 지역으로 부터 철저히 고립시키는 희대의 봉쇄 정책을 강행하고야 말았다. 이러한 사실 만으로도 역사책 코로나 챕터 중 한 꼭지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다.
아, 심각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앞으로의 이어질이야기들은 제로 코로나 정책 아래 상하이의 2022년 봄,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봉쇄 생활의 이야기 이다.
상하이에서 생활하는 나 또한 두어달 넘게 갇혀 생활하며 정부측의 공지를 확인해야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했고 그 시간들을 통해 16년이 넘게 중국, 상하이에 살면서 다시한번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생각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새로운 모습을 만나기도 했지만 가끔은 그들에 대한 편견이 진정 편견이 아니었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한된 정보아래친구들과 각자 갇힌 자리에서 메신저로 나누어야 했던 각 지역의 정책과 시민들의 기가막힌 대응 또한 그저 추억으로 남기기엔 너무 웃기기도 또 눈물이 나도록 슬프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국이 코로나 때문에 난리라는데, 너는 괜찮니" 라는 질문에 이런 통제는 상상도 못 하는 사람들에게 그때의 생활을 설명을 하려니 가끔은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평생 다시 겪을 일 없을 것 같은 그 기가막힌 시간들을 일보日报형식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정치나 사회 이념, 삶의 가치관 같은 무거운 주제를 저울에 올릴 생각은 감히 없으니, 그런 부분은 각자 알아서 이해하고 판단 내려 주시길. 어차피 이 봉쇄의 이유가 무엇이었고 결과가 어떠했건, 우리는 그 시간을 살아야 했고, 살아 냈고, 또 지금 살아 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