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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Jun 05. 2020

03. 스페인 가정집 3개월 월세살이

제2부. 스페인에서의 271일을 회상하다


고급 아파트 방 하나에

보증금 400유로

월세 400유로



마드리드 중심가에 400유로, 50만 원짜리 고급스러운 월세방이라니, 행운이다. 쁘린시뻬 삐오(PRINCIPE PIO)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의 방 하나를 얻었다. 보증금 50만 원에 50만 원짜리 월셋방이다. 들어가는 입구 화단도 잘 정돈되어 있고 경비도 철저한 곳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 가격은 마드리드에서 술집들이 즐비한 시끄럽고 지저분한 빌라의 방 하나를 얻는 가격과 별반 차이 없는 가격이다.      


“세실리아, 나는 아나(ANA)라고해. 우리 집은 귀여운 개 세 마리를 키워. 얼마나 귀엽고 애교가 많은지 몰라. 베란다에서만 지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알레르기는 없지?”

“저도 개를 좋아해요. 근데 개들은 어디 있죠?”

그녀가 손가락으로 베란다를 가리켰다. 이런. 귀엽다고 하기엔 덩치가 산만한 셰퍼드 한 마리가 베란다 쪽에 널브러져 있다. 놀랜척하지 말자 생각했다. ‘뭐, 그것쯤이야.’ 어학원의 기숙사비 210만 원에서 160만 원을 매달 절감하고 사는 일이니 감수 안 되는 일은 없겠다. 스페인은 단기간 임대라 해도 3개월이 최저 기간이다.


약간의 폐쇄 공포증을 갖고 있다. 데이트한다고 자동차 안에서 서너 시간을 가다 보면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버스를 타면 맨 앞자리 시야가 트인 곳에 앉는다. 카페에 앉아 공부를 할 때도 전면이 창문이거나 시끄럽더라도 야외 공간을 더 선호한다. 이런 내가 창문을 90도로 활짝 열어젖히면 해 뜰 녘과 해 질 녘을 만끽할 수 있는 방을 얻었으니 대만족이다. 창 없이 음습한 기숙사의 방에 비하면 호화롭기 그지없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아나와 마주쳤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 자글자글한 눈가 사이에 드러난 매서운 눈꼬리가 보였다.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이 불안한 느낌은 무엇일까? 요즘 스페인으로 어학연수 오는 이들을 상대로 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경찰서를 오가는 일이 잦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받고는 유학생들이 귀국할 때 즈음 전기세가 정산이 되지 않았다는 등 수도세가 많이 나왔는데 고지서가 없다는 등등의 이유로 보증금을 날름 드시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나 돈독 오른 주인들이 이민자들이나 유학생들에게 일삼는 일들이다. 우리나라엔들 없을까. 세입자가 꼼꼼히 챙기는 수밖에.     


비록 세 평도 안 되는 방이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 또한 주인 아주머니의 올가미에 걸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후 마지막 달 보증금을 뺏길 뻔했다. 잔머리를 잔뜩 굴려 월세의 반을 미루고 미루다가 전기세와 물세로 정산하면서 20만 원 정도의 손해로 그쳤다. 타국까지 와서 금전적 손실을 경험하다니 억울하지만 행정처리가 늦는 스페인에서는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석달도 되지 않아 집을 옮기려고 했던 진짜 이유는 보증금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머물렀던 이 집은 정상적인 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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