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不惑이 아니라 不執

미혹되지 않는 것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고집스러움이다.

by 김나영

논어에는 사십이면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한다.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명확히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요즈음 우리나라의 세태를 보며, 불혹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인가’가 아니라, ‘고집스럽지 않은 인간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만약 그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잘못된 것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러니까 미혹됨을 경계할 게 아니라 고집스러움을 경계해야 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여기서 고집과 아집이라는 단어의 뜻을 한번 보자.


固執(굳을 고, 잡을 집)은 '자신의 의견만 굳게 내세운다'는 뜻이고, 我執(나 아, 잡을 집)은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하나 더, 壅固執(막을 옹, 굳을 고, 잡을 집)도 있는데, 이는 심지어 억지가 아주 심한 고집을 가리킨다.



살아온 궤적만큼 인생의 지혜가 쌓이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우리는 지혜가 아닌 아집으로 똘똘 뭉친 고집스러움을 차곡차곡 쌓아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스로 절개 있는 대나무라고 착각하며 곳곳 하게만 서있을 게 아니라, 차라리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을지언정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을 읽고, 바람의 뜻을 받아들여 자신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현직대통령이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비상계엄부터 지금까지 그가 하는 모든 언어와 행동을 돌아보며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 새삼스럽게 느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결과를 부정한 것으로 매도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헌정질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신념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울 학, 어조사 이, 아니 불, 생각 사, 곧 즉, 망할 망/ 생각 사, 어조사 이, 아니 불, 배울 학, 곧 즉, 위태로울 태)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배운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고, 깊이 있게 사색해야만 제 것이 될 수 있다.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게 있다.

배우려고도 하지 않은 채, 독단과 독선에 빠져 자신만의 편향된 사고에만 몰두한다면 얻는 것이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위태롭기까지 한 것이다.

그 위태로움이 사회에서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으니 이것만큼 무섭고 위험한 게 또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어처구니없는 그 모습을 보면서 또 한가지를 배운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가정을 늘 염두에 두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잘못을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귀를 열고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나이 듦의 바른 모습이 아닐까?

keyword
이전 22화때로는 무모한 자신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우공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