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 듯이’라는 단어가 내게 걸어준 최면
오늘은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두 번째 소설집이 내일 날짜로 출간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전화를 받고 난 이후부터 아쉬움과 후련함이 뒤섞여 묘하게 상기된 채 하루를 보냈다.
소설의 평가야 독자의 몫이기에 내가 내 작품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오늘만큼은 두 번째 소설집을 만들어 낸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해가 가라앉고 어둠이 내려앉자, 상기되었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때가 문득 떠올랐다. 오늘은 그때의 일을 떠올려볼까 한다.
처음 내가 소설을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그때 나는 아마도 산후 우울증과 비슷한 것을 겪었던 것 같기도 한다. 작은 동요에도 마음에 심하게 요동쳤고, 이 감정을 배출하고 싶은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이 꿈이 얼마나 황당하냐면, 학창 시절의 나는 국어과목을 좋아하긴 했지만 한 번도 글을 잘 쓴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시절엔 ‘과학의 달’ 같은 행사를 하면 아이들마다 글짓기나 그림, 과학상자 중에 하나를 고르는데, 그런 때조차도 나는 어김없이 그림이나 포스터를 선택할 정도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한 번 들기 시작하더니, 좀체 그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학교도 계속 다니고 있었고,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전무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때 무작정 문을 두드린 것이 ‘숲 속 동화마을’이라는 다음카페였다. 카페지기가 ‘범초’라는 호를 가진 김재원 동화 작가님이었는데, 무턱대고 동화를 배우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그분을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메일을 주고받으며 글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일 년 남짓 배우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힘든 육아와 직장생활, 여의치 않는 내 건강상태가 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 범초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한 단어는 이후로도 내가 줄곧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마도 그때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내 마음이, 내가 쓰는 메일에 고스란히 드러났었던 모양이다. 매번 메일에 꼭 등장하는 말이 ‘내가 해도 될까요?’라던가 ‘내가 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이었으니까.
그렇게 메일로 지도를 받은 지 몇 달이 되던 어느 날, 선생님은 다른 때보다 더 긴 장문의 답장을 내게 주셨다. 그 글의 요지는 이랬다.
꾸준히 글을 쓴다면 분명히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 믿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깝다. 그래서 문득 호를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를 지어줄 테니, 훗날 작가가 된다면 자신이 지어준 호를 꼭 쓰라고 말이다.
그 호가 바로 ‘보란’이었다. ‘보란’은 ‘보란 듯이’에서 따 온 두 글자이다.
그러니까 ‘보란 듯이’는 ‘남들 앞에서 자랑스럽거나 당당하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보란 듯이’의 뒤에는 꼭 ‘해내다’나 ‘이루다’라는 서술어가 따라붙는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스스로 불가능할 것만 같이 여겨져도 ‘보란 듯이 내 꿈을 이루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는 아플 때도 글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계속 내게 주문을 걸었다.
‘보란 듯이’, ‘보란 듯이’라고 말이다. ‘보란’이라는 멋진 호를 갖고 싶다면 어쨌든 나는 포기하지 않고 보란 듯이 해내야 하니까.
결국 나에게 ‘보란 듯이’라는 단어는 도전을 위한 최고의 암시이자, 최면이자, 주술의 단어였으며, 끝내 포기하지 못하게 나를 붙잡아준 것이다.
오늘은 남들이 모두 손가락질해도 ‘보란 듯이’ 도전을 이어가는 뜻을 가진 ‘우공이산’을 함께 소개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우공이 산을 옮긴다’라고 풀이되며,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며, 유래는 아래와 같다.
옛날 중국의 북산에 우공이라는 90세의 노인이 있었는데, 태행산과 왕옥산 사이에 살고 있었다. 두 산이 가로막혀 왕래가 불편하던 우공이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했다.
“저 험한 산을 평평하게 하여 예주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한수의 남쪽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이 반대하며 말했다.
“당신 힘으로는 조그만 언덕 하나 파헤치기도 어려운데, 어찌 이 큰 산을 깎아 내려는 겁니까? 또, 파낸 흙은 어찌하시렵니까?”
아내의 만류에도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까지 데리고서 흙을 파서 삼태기와 광주리 등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마저 우공을 비웃으며 만류하자, 우공이 말했다.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두 산을 지키는 신은 이러다가 자신들의 거처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놀란 나머지 천제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천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하여 두 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다고 한다.
꿈에서 그치면 그것은 정말 꿈일 뿐이지만,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현실이 된다.
지금 어떤 꿈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시작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90세의 우공도 도전하는 마당에, 주저할 필요가 있겠는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도달할 테고, 목표를 도달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성공의 크기와 상관없이 삶의 큰 자산이 되는 경험이 된다.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삶은 그 자체로 값지니까.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을 우, 공평할 공(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옮길 이, 산 산) : 우공이 산을 옮기다.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