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면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유심히 찾아보곤 한다. 한 해의 정치, 사회를 아우르는 사자성어 하나를 고른다는 발상 자체도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선정된 사자성어를 볼 때마다 늘 무릎을 치며 감탄하곤 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분명 이 시국을 표현한 사자성어가 뽑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정된 사자성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량발호'이다. '도량발호'는 나조차도 처음 들어본 사자성어였기에, 내 지식이 이렇게 짧았나 반성하며 그 뜻을 찾아보았다.
'도량발호(跳梁跋扈)'의 뜻을 찾아보면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이 만연함을 뜻한다고 나오며,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도량'과 '발호'의 합성어로 보인다.
그렇다면 ‘도량’과 ‘발호’의 뜻은 무엇일까?
먼저 ‘도량(跳梁)’은 ‘뛸 도(跳)’와 ‘들보 량(梁)’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량’이 장자의 소요유 편에 나온다는 글을 읽고, 소요유 편을 찾아보았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장자가 혜자에게 말한다. "선생은 너구리나 살쾡이를 본 적이 있겠지요. 몸을 낮추어 숨어서 닭이나 쥐를 노려보다가 사방으로 이리저리 뛰는데(東西跳梁),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못해 덫에 걸려들거나 그물에 걸려 죽지요. - 이후 생략 - "
그러니까 ‘도량’은 닭이나 쥐를 잡겠다고 날뛰다가 결국 덫에 걸려들거나 그물에 걸려들 운명의 너구리나 살쾡이가 날뛰는 것이라는 게 아닌가?
상상해 보라. 한 치 앞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날뛰어대는 너구리나 살쾡이를.
두 번째로 '발호(跋扈)'는 ‘넘을 발(跋)’과 ‘통발 호(扈)’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사전에는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날뛰다’는 뜻이며, 유래가 존재한다.
중국 한나라 외척 가운데 양기라는 자가 있었는데, 20년에 걸쳐 실권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렸다. 그는 원래 일정한 직업도 없는 불한당 같은 데다가 잔인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그의 조카인 질제가 왕위에 즉위하였는데, 신하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질제가 양기를 가리켜 ‘이 분이 발호장군이로군.’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통발을 뛰어넘어 도망친 큰 물고기처럼 방자함을 나타낸 표현이다.
그러니까 ‘도량발호’의 네 글자 안에는 이리저리 날뛰는 너구리와 살쾡이도 있고, 통발을 뛰어넘어 도망치는 방자한 물고기도 있는 것이다.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른다던가, 부끄러움을 모른다던가, 혼란한 정세를 표현하는 수많은 사자성어가 존재하겠지만, ‘하찮은 동물의 방자한 만행’을 표현했으니, 이것만큼 풍자를 담은 사자성어가 또 있을까?
그 날뛰는 대상을 생각하면 씁쓸하면서도 딱 맞은 비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시위조차 비폭력과 연대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물결로 만들어가고 있는 시민들을 보며 희망을 꿈꾸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당연히 다가올 미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한 번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 회차에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인 군주민수를 소개한 바 있다. 과거 2014년에서 2016년으로 이어지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
2014년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의미하는 ‘지록위마’에서 2015년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나라가 혼란에 빠진다는 ‘혼용무도’로 이어지다가 결국 2017년 ‘군주민수’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도량발호’의 뒤를 이을 올해의 사자성어는 희망을 품은 사자성어가 선택되지 않을까?
이왕이면 '고복격양(鼓腹擊壤)'이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바람을 담은 '고복격양'을 소개할까 한다.
'고복격양(鼓腹擊壤)'은 ‘배(腹)를 두드리고(鼓), 흙바닥(壤)을 친다(擊)’고 풀이되며, '태평한 세월을 즐김'을 뜻하는 성어다. 유래는 아래와 같다.
중국 요임금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요임금이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몰래 시찰을 나갔다. 그때 민요를 부르며 부른 배를 두드리고 흙덩이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네.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농사지어 내 먹는데, 임금의 힘이 어찌 미치리오.’라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심지어 노인은 제 나라의 임금이 누군지도 몰랐다고 한다. 결국 좋은 정치는 백성이 임금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할 만큼 백성이 평안하게 하는 것이 좋은 정치라는 것이다.
티비만 틀면 시끌벅적한 정치 뉴스에 모든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있는,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정치 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도량발호(跳梁跋扈, 뛸 도, 대들보 량, 넘을 발, 통발 호) : 대들보를 뛰어다니고, 통발을 넘다.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이 만연함을 가리키는 말
고복격양(鼓腹擊壤 두드릴 고, 배 복, 칠 격, 흙바닥 양) : 배를 두드리고 흙바닥을 치다. 태평한 세월을 즐김을 가리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