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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아쉬운 ‘아전인수’

by 김나영

친한 지인들과 오래간만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소금빵으로 유명한 곳이었던 까닭에 작은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한 나는, 운이 좋게도 편하게 수다 떨기 좋은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는 만석이었고, 카페에 한 커플이 들어왔다. 카페 안을 둘러보다가 가방만 놓인 자리 앞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들이 놔둔 가방이라는 것을. 그 카페는 의자가 유독 작아서 가방을 놔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가방 만으로 한 테이블을 차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옆에 앉은 사람들은 커플을 힐긋거리면서도 끝까지 가방을 치우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가방을 치워주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커플은 결국 카페를 떠났다. 커플이 떠난 자리를 응시하며 마시는 아메리카노 맛이 유난히 씁쓸했다.

빈 좌석을 꿋꿋하게 차지하고 있는 가방을 보며, 문득 제 것만 챙기는 데 급급한 현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계발서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 있다.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지 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라.'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임은 분명하다. 예전엔 남들의 평가에 연연하며, 조직의 이익 앞에서 개인의 자유나 행복 따위를 내보이는 것은 이기적이거나 무능력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시대였다. 그 사회 속에서 우리 아버지들은 가정을 등한시하고 밤늦게까지 회사에 충성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의 조언 때문인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춘 사고의 전환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조직이나 사회를 위해 제 한 몸 불사를 만큼 멍청하지 않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평가에 휘둘리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비록 비도덕적 행위로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도.


새 학기를 맞이하기에 앞서 교사들은 새 학년, 새 학급, 새 업무를 정하게 된다. 그리고 일 년의 안위를 위해 선생님들의 치열한 눈치작전도 시작된다. 어떤 아이를 맡고, 어떤 업무를 담당하느냐에 따라 일 년의 고단함의 정도는 천지차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교의 상황과 아이들의 특징, 업무에 알맞은 능력, 교육적 이유 등 다양한 사유로 기피하는 업무를 맡게 되는 일은 언제나 발생한다.

승진이나 명예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요즘 학교 분위기에서 기피 업무를 자처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그런 일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기웃거리다가 새로 전입 오는 교사에게 떠맡겨지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거절을 잘 못해서, 또는 맡긴 일은 군말 없이 해오던 그런 사람의 몫으로 남게 된다. 심지어 그런 사람 중에 기간제교사가 많다는 건 더 슬픈 일이다.

그럴 때마다 억지에 가까울 정도로 제 것은 꼭 챙기면서 끝까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담임을 맡거나, 혹은 업무를 맡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맡은 과목의 수업 시간을 배분할 때조차 절대 물러섬이 없다. 심지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 또는 공동체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 많으면서도 절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가진 게 많지 않더라도 다른 아이들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아이들이 공존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해가 갈수록 전자의 아이들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은 이런 이기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사자성어 ‘아전인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 : 나 아, 밭 전, 끌 인, 물 수)’ ‘자기 논에 물 대기’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뜻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제 논에 물 대기’라는 속담과도 같은 뜻이다.

물길을 터서 여러 사람의 논에 물을 대야 하는데, 물길을 끌어다가 자기 논에만 물을 대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田자는 벼의 재배법에 따라 조성된 밭을 본떠 그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밭’이 아니라 ‘논’의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자성어에도,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벼농사를 시작한 아주 오래전부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제 논에만 물을 대면 제 논의 벼는 당연히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하지만 물이 부족해 말라가는 옆 논의 벼와, 비쩍 말라가는 벼처럼 근심으로 말라가는 이웃 농부의 모습을 보고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다니...

인간의 한자는 ‘人(사람 인)’, ‘間(사이 간)’이다. 사람을 표현하는 한자어에 ‘사이’라는 뜻이 포함되듯,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런데 어떻게 온전히 자신만 의식하며 살 수 있겠는가?


무엇이든지 치우친 것은 옳지 않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너무 연연하다가 자신의 소중함을 잃는 것도, 개인의 행복과 이익만을 쫓으며 남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어느 것도 옳다고 할 수 없다.

‘나’와 ‘우리’의 균형을 맞추며,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존중하면서도 남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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