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청출어람은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by 김나영

올해는 내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팔순이 되는 해이다. 나를 비롯한 선생님의 두 제자와 함께 만났다. 선생님의 팔순을 기념하는 책을 만드는 것에 함께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셋은 각자 다른 시기에 선생님께 배웠는데, 서로가 경험했던 선생님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주 오래간만에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를 떠올렸다.

문예창작과를 나온 것도, 심지어 국문학 조차 전공하지도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소설을 쓰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막막함이다. 어디서, 누구에게, 또는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쓰고자 하는 열망 하나만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고, 문화센터를 다녀보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소설가 정수남 선생님을 만났다. 사연은 이랬다.


내가 쌍둥이를 낳으면서부터 줄곧 친정엄마와 함께 살았는데, 볕 좋은 어느 봄날 친정엄마가 산책을 나가셨더랬다. 그리고 산책길에서 엄마 또래의 다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셨다.

엄마는 처음 본 사람과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그러니까 극 F 성향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날도 처음 본 할머니와 친구가 되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 할머니의 남편 분이 소설가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신 것이다.

“어? 내 딸이 소설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그래요? 남편에게 얘기 한 번 해볼까요?”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을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뻔한 말이 이런 방식으로도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소설을 쓰고 싶은 갈망이 목 끝까지 차고 올라와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딱 그런 때였으니까.

나는 당장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의 말투는 무척 단호했는데, 첫마디가 이것이었다.

“저는 소설 한 편도 완성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쓴 것이 있다면 가지고 오세요.”

글에 있어서는 먼지만큼의 자신감도 없었던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저,,, 동화도 될까요?”

“네. 가지고 오세요.”

일단 지원자격을 얻은 느낌이랄까?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내가 쓴 글을 보며 혀라도 차지 않으실까 걱정이 앞섰다. 당시 나는 동화와 청소년 소설의 중간쯤 되는 이야기 몇 편을 혼자 끄적이며 써둔 게 있었는데, 자물쇠로 꽁꽁 잠가두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글이었다. 차라리 일기를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선생님의 사무실을 찾아가 내가 쓴 글을 처음 보여드린 날, 선생님은 말없이 눈으로 A4용지에 출력된 글을 읽어갔다.

사라락,

A4 용지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허들을 하나씩 넘는 듯 조마조마했다. 선생님은 마지막 장을 읽고 말없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다음 말을 잇기까지 3초의 여백이 있었을까? 그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숨조차 내쉴 수가 없었다.

“좋아요. 비문도 많고, 구성도 갖춰지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는 있네요. 배워 봅시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비명을 질렀는지, 마음속 생각에 소리가 있었다면 아마도 귀를 틀어막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선생님께 소설을 배우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다지 성실한 제자는 아니었다. 선생님께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는데, 어깨에 무거운 바위를 얹고 다니는 듯한 피곤함과 늘 싸우며 살고 있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일상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글까지 쓰는 게 쉬울 리가 있을까? 게다가 원래 덤벙대기 일쑤인 나는, 어떤 날은 볼펜을, 어떤 날은 책을, 어떤 날은 숙제를 안 가져갔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안 가지고 온 아이들에게 ‘군인이 총도 없이 전쟁터에 오면 되겠냐?’는 구전처럼 내려오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정작 나는 매일 까먹고 다녔으니…….

그럼에도 선생님은 말없이 웃으시면 한마디만 하셨다.

“그래도 소설만큼은 꾸준히 쓰니까 봐 준다.”

그러면 나는 또 멋쩍은 웃음으로 ‘죄송합니다’를 읊었다.

그랬다. 나는 어떤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무리 엉터리 이야기라도 뚝딱 한 편은 만들어 갔던 것이다. 아마 그것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진즉에 쫓겨나지 않았을까?


나는 선생님께 배운, 거의 마지막 제자에 가까웠는데, 선생님이 한창 혈기 왕성하실 때 배운 제자들은, 선생님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몰아치면서 혼을 내시거나, 어떤 날은 수업도 못 듣고 쫓아내셨다고 한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나는 덜 혼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더 혼났다면 지금보다 훨씬 실력이 좋았을까?

어쨌든 그렇게 소설은 투병과 거의 함께 했고, 투병 탓에 번번이 포기하려고 했던 나를 끝까지 붙잡아주신 건 선생님이었다.

아마도 나는 선생님께 소설 작법을 배운 것보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게 더 많지 않을까?


한강 작가처럼 훌륭한 작가의 발끝은 못 따라가도, 소설가라는 호칭을 떳떳하게 내걸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되었어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난 지금도 여전히 소설가라고 불리면 쑥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으니까.

훌륭한 제자를 키운 선생님으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드리지 못한 게 죄송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선생님께 자신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끝까지 소설을 쓰는 것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소설가로든 한 인간으로든 선생님께 부끄러운 제자는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의 스승님 얘기로 시작했으니, 오늘은 스승을 넘어선 제자를 뜻하는 청출어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를 청, 나올 출, 어조사 어, 쪽 람)은 직역하자면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온다’이며,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 나오는 말로써 원문은 아래와 같다.


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푸른색은 쪽에서 (그것을) 취하지만 쪽빛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그것이) 되었지만, 물보다 차다.

(푸를 청, 취할 취, 어조사(그것) 지, 어조사 어, 쪽 람, 어조사 이, 푸를 청, 어조사 어, 쪽 람/ 얼음 빙, 물 수, 될 위, 어조사(그것) 지, 어조사 이, 찰 한, 어조사 어, 물 수)


요즈음은 스승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낯간지럽게 여겨질 정도로 스승의 권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대학 시절 우리 과 교수님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교수님’보다는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청하셨다.


‘선생(先生)’이라는 단어는 ‘먼저 태어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단지 먼저 태어나 조금 앞선 인생을 경험한 선배로서 인생의 지혜를 나누어 주고 싶다는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며 인생의 선배이기를 자처한 선생님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의 권위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의든 타의든 많은 스승님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의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준 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 분들이 스스로의 권위나 영향력을 내세워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얻은 인생의 지혜와 아낌없는 사랑 때문에 기꺼이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제자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지식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인생의 지혜는 쉽게 배울 수 없다. 내가 선생님께 포기하지 않는 법과 열정을 배웠듯, 내가 가르쳐왔고 또 가르치게 될 수많은 제자들에게 한 스푼의 지혜라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기꺼워하며 빛나는 푸름을 만들어낸 보잘것없는 짙은 쪽빛처럼.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를 청, 나올 출, 어조사 어, 쪽 람) :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온다.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keyword
이전 25화인간,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아쉬운 ‘아전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