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14살짜리 레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우고 있다. 강아지의 이름은 심바라고 하는데, 리트리버의 평균 수명을 10살~12살로 보고 있으니, 심바는 꽤나 장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어릴 적 심바는 아주 개구쟁이 같은 녀석이었다. 대게의 레트리버가 그렇듯 물만 보면 앞뒤 잴 것 없이 달려드는 바람에 동생을 당황하게 한 적도 많았고, 어떤 날엔 길 건너편에 사는 예쁜 여대생을 보기 위해 담을 넘어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것인지, 함께 자라던 한 마리를 먼저 떠나보내고, 이제는 껌딱지마냥 동생을 따라다니는 떼쟁이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돌멩이도 씹어먹을 만큼의 먹성과 소화력, 그리고 무한한 체력을 갖고 있던 그놈은 이제 매일 아침 홍합 성분이 들어간 관절 영양제를 먹고, 조금 딱딱한 사료를 먹으면 꼭 배탈이 나고 만다. 어느 강아지가 그렇듯 심바도 산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요즈음엔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것조차 힘이 들어한다. 어떤 날엔 힘겹게 산책을 하고 있는 심바를 보며 사람들이 응원을 할 정도니까.
그저께, 오래간만에 심바의 산책에 동행했다. 오래 걷지 못하는 심바를 커다란 캠핑용 웨건에 태워 인근 공원까지 데려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공원에 와서였을까? 심바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상기되어 있었다.
웨건에서 심바를 내려놓자마자, 심바는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힘차게’라는 것은 심바의 기준이다. 마치 전력 질주를 앞둔 것처럼 귀가 들썩일 만큼 어깨를 씰룩이며, 큰 반동으로 앞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힘찬 기세가 무색하게도,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심바는 고작 어린아이 보폭으로 서너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우스워 동생과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나 곧바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시간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모습은 꼭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 나선 학부모 같았다. 요즘이야 학부모가 운동회에 직접 참여하는 일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달리기에 나섰다가 꼭 한두 명쯤 넘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빨리 달리고 싶은 열정과 마음은 여느 청춘 못지않은데, 몸이 따라주지 못해 생기던 일이었다.
심바의 청춘이 그렇게 야속하게 지나가 버렸듯, 우리의 청춘 또한 어느새 그 곁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그러고보니 요즈음 나는 출근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고민을 할 때가 있다. 당연하게도 좋아서 고르고, 또 좋아서 입는 것이지만, 나이 값을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은 여전한데, 나잇값에 맞추기 위해 취향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마음과 몸이 같은 속도로 늙는다면 좋으련만, 마음이란 놈은 참 청개구리 같아서 어릴 적에는 나이 듦을 동경하고, 늙어서는 청춘을 동경한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과 몸의 어긋남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몸은 이미 늦가을에 접어들었는데도 마음만은 아직 봄 한가운데를 서성이니 말이다. 그날 심바가 보여준 느리고도 힘찬 걸음이 우스우면서도 애잔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 걸음 속에는 지나가 버린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그럼에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었다. 결국 늙는 것은 몸일 뿐, 마음은 끝내 제 나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오래도록 청춘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오래도록 청춘의 자리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담아 화양연화에 대해 써볼까 한다.
'화양연화'라고 하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조위와 장만옥이 출연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떠올릴 것이다. ‘花樣年華(화양연화)'는 전통적인 사자성어가 아니라, 영화에서 쓰이기 시작하며 인생에서 꽃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을 뜻하는 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영화 속 ‘화양연화’가 마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 〈화양연화〉는 1962년 홍콩, 같은 날 한 아파트에 이사 온 주모운과 소려진이 서로의 배우자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지만, 끝내 서로를 선택하지는 못한다. 결국 서로를 향한 감정은 비밀로 남은 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그들에게 ‘화양연화’는 가장 아름다웠기에 더욱 아프고, 가장 찬란했기에 더 애절했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BTS의 노래 ‘화양연화’ 역시 방황과 고뇌 속을 통과하는 청춘을 그리고 있다. 빛나는 시절은 결코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흔들리고 아파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화양연화'란 어쩌면 ‘치열함’과 동의어가 아닐까. 지나간 어느 시절을 막연히 그리워하기보다, 지금 이 시간이 훗날 내 인생의 '화양연화'로 남을 수 있도록 후회 없이 치열하게 살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오늘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식일지도 모른다.
* 花樣年華(꽃 화, 모양 양, 해 년 빛날 화) : 꽃처럼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