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은 낯설었다. 벽지는 깨끗했고, 바닥엔 기척이 없었다. 창문을 열자 낯선 바람이 들어왔고 나는 그 바람을 한참 동안 맞았다.
짐을 정리하고 집을 하나하나 꾸며가면서 나는 잠시 그 사람을 잊었다. 바쁘고, 손 쓸 곳이 많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니,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잠깐 괜찮았다. 그게 도파민이었을까? 내 감정을 대신할 새로움, 내 눈을 가리는 바쁨. 하지만 그건, 딱 이사할 때 만이었다.
이삿짐이 다 들어오고,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이 집이 정말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게 실감 났다. 거실엔 박스가 아직 몇 개 남아있었고, 주방 선반엔 그 사람과 같이 쓰던, 결혼 선물이라고 친구들이 주었던 그릇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조명이 너무 밝게 느껴져 불을 끄고 작은 조명 하나만 켰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낯선 방의 공기가 천천히 내 주위를 감쌌다. 그 어떤 익숙한 기척도, 냄새도 없었다. 모든 게 깨끗했고 낯설었다.
나는 짐 정리를 하다가 멈췄다, TV를 켜고 가만히 소리를 흘렸다. 무언가를 켜두지 않으면 내가 이 방에 혼자 있다는 게 너무 또렷해졌다. 이 방에는 나만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삿짐을 대강 풀고, 나는 가장 중요한 걸 꺼냈다. 사진. 그 사람의 얼굴이 담긴, 내 기억보다 다 선명한 그 이미지들.
나는 미리 사진 열 장 정도를 골라 인화했다. 크고 작은 크기로, 액자도 사뒀다.
정갈하고 조심스럽게 마치 그 사람을 한 장씩 다시 집 안으로 데려오는 마음으로 사진을 액자 속에 넣었다. 작은방엔 두 장을 뒀다. 하나는 창가에, 다른 하나는 방문 바로 옆에.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인사할 수 있게.
큰방엔 더 많이 뒀다. 침대 머리맡엔 두 장. 자는 동안에도 그 사람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게끔. 책상 위엔 그 사람의 위패를 두었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이 ‘거기’에 있게.
결혼사진도 꺼냈다. 웨딩드레스, 턱시도, 축가를 부르며 마주 보던 그 순간. 그 사진을 벽에 걸었다, 마치 우리 둘의 공간인 것처럼, 이 집이 우리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거실과 주방이 맞닿아있는 곳에도 사진을 두고 심지어는 화장실 앞에도 한 장을 두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사진을 두면 그래도 아직은 그 사람이 나를 지켜봐 주는 것 같았다. 내 방식으로 그를 다시 데려왔다.
사진을 두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제, 어딜 봐도 그 사람이 보였다. 슬펐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나를 견디게 했다.
사진까지 정리가 끝나고, 나는 그 사람의 부재를 더 선명하게 마주했다. 새로운 공간에서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 ‘혼자’의 집을 택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내 몸을 데리고 여기까지 끌고 나온 것이다.
이 집은 그 사람을 보내기 위해 나온 곳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살아내기 위해 택한 곳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침대에 누울 용기가 없었다. 침대는 너무 커 보였고, 그 위에서 내가 너무 작아질까 봐. 결국 침대 옆 바닥에 그 사람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눈을 감자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그 사람과 함께 살던 공간에서의 내 표정, 내 행동, 내 목소리가 떠올랐다. 모든 게 지금과 너무 달라서 그 기억이 진짜였는지조차 모르겠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몸은 지쳐있었고,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공간 속, 텅 빈 나를 이 집의 천장이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조용히, 아주 작게.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 나는 그 침묵에 또다시 무너졌다. 그 사람의 사진은 여전히 조용했고, 나는 그 조용함 속에서 기어이 잠이 들었다. 혼자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첫 번째 밤이었다.
2024.05.14.
오빠, 나 이제 이삿짐 다 옮기고 오늘 책상이랑 가구 받으러 왔어. 공책 산지 꽤 되었는데 쓰지를 못했네. 벌써 2주나 지났어. 한참 못 봤는데 이제 2주가 지났나 싶고 그러네, 나 이제 여기서 혼자 살아야 되는데 오빠가 지켜 줄 거지?...
내 사랑 거기는 안 힘들고 좋지? 밥은 맛있는 거 먹는지, 친구는 만났는지 궁금해. 아픈지도 궁금하고.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 나 잘살게. 오빠도 행복해야 돼. 나 잘 사는 거 지켜봐 줘.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오빠. 진짜 사랑해. 그동안 고생했어. 보고 싶고, 사랑해요.
아침이 왔다. 해가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누워서 한참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조용히 웃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물 한 잔을 마시고, 물에 찬밥을 말아 그냥 몇 숟갈 떠먹었다. 입맛은 없었지만, 배는 고팠다. 먹어야 했다. 안 먹으면 멀쩡한 척하는 것도 못 할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눈앞이 조금 맑아졌다.
그리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을 쓰고 싶었다. 아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컴퓨터를 켜고 몇 분간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줄을 썼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
그 한 줄로 충분했다.
오후가 되자 햇빛이 기울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오자 새로 산 커튼이 살짝 흔들렸고, 멀리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팔을 뻗어 그 바람에 손을 내밀었다. 아무 냄새도 없고, 아무 온기도 없는 바람이었지만 그걸 맞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 있구나 싶었다.
해가 지기 전, 밖에 나가 걸었다. 아주 가까운 편의점까지. 정말 별 거 아닌 거리였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 혼자 걷는 동안 나 자신을 계속 확인해야 했다. 무섭진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과 딸기우유 하나를 샀다. 집에 돌아와 딸기우유를 마시며 다시 컴퓨터를 켰다. 이번엔 조금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하루,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걸 해낸 하루였다. 먹었고, 마셨고, 걸었고, 썼고, 살았다. 그 사람은 이제 영원히 없고, 나는 여전히 울었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 하루를 통과했다.
그 후로 거의 매일 나는 친구들과 있었다. 특히 새로 이사한 집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던 친구와 자주 붙어 있었다. 친구들과 어떤 날은 밤새 같이 술을 마셨고, 어떤 날은 말도 없이 울다 잠들었다.
내 친구들은 나의 모든 흐트러짐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나를 바로잡으려 하지도 않았고, 내 감정을 조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는 찢어진 상태 그대로 두고 바로 옆에 있어 주었다.
친구들이 나를 매일 찾았다. 그 덕에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할 수 있었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좀 나아진 것 같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졌어.”
“이젠 조금씩 살 것 같아.”
그리고 그 말을 내뱉은 바로 그 밤, 나는 혼자 울었다. 괜찮은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고, 밤에도 잠이 들었고, 식욕도 돌아오고 있었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기도 했다. 근데 그 웃음이 끝나는 순간, 내 마음은 그때, 그날로 돌아갔다.
나는 괜찮아 보이기 위해 “괜찮다”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고, 그 연기가 점점 진짜 같아져서 무서웠다. 사람들은 내 얼굴에서 더 이상 울음을 보지 못했고, 나조차도 내가 울고 있는 줄 모른 채 하루를 통과하곤 했다. 하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아침마다 몸이 무거웠고, 잠에서 깰 때마다 그 사람의 아픈 얼굴이 떠
올라서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내가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고 있었고, 그 사진 앞에 앉으면 숨이 차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죽었고, 나는 남았고, 이 모든 날들이 애도라기보다는 생존에 가까웠다. 나는 이겨낸 게 아니라, 조용히 버티는 중이었다. 그저 조금 덜 울었을 뿐이고, 조금 더 먹었을 뿐이고, 아주 잠깐 웃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 다만, 그 무너짐을 이제는 소리 내지 않는 방식으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
2024.05.19.
내 사랑 안녕, 나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요. 아 어제는 어머님이랑 오빠한테 다녀왔어. 거기서 또 같이 울고 그랬어. 오빠 다 보고 있지요? 나는 괜찮다가 어제 자기 전엔 또 좀 힘들었다. 오빠 새 사진 뽑아서 여기저기 액자 만들어서 뒀거든. 오빠가 어디든 있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이제 우리 집화장실 빼고 다 오빠 사진이야. 좋아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내 사랑 너무너무 보고 싶다. 토요일 새벽에는 꿈에도 나왔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내 옆에 안 있고 어딜 자꾸 놀러 가냐. 내 옆에 있어 줘야지! 나 지켜줘야지. 사랑해 오빠 나 내일 출근하는데 내가 일 할 수 있을까? 운전 조심 해야겠다. 여보. 낮잠은 이제 못 자겠지? 나 속상한 거 있어. 내가 너무 늦게 알았어. 나는 멍청이야. 오빠 그렇게 된 줄도 모르고 밥도 먹고 낮잠도 잤잖아. 나는 병신이
야. 어떻게 내가 모를 수가 있지?. 이렇게 사랑하는데 뭐 느낌이라도 있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나는 세상 아무것도 모르고 낮잠이나 잤어. 미안해. 내가 더 빨리 못 가서 미안해요. 사랑해 내 사랑. 나 내일 출근 잘하고 올게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
상을 치르고 2주쯤 지났을 무렵, 나는 회사를 다시 나갔다. 그날 두고 갔던 가방이 서랍 속에서 빼꼼 나를 반겨주었다. 책상 앞에 앉았을 땐, 내 손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했다. 괜히 어깨를 두드렸다가, 뭔가 말할 듯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친했던 동료들이 나를 위로하러 왔다. 그들의 눈길만 느껴져도 눈물이 났다.
나는 하루 종일 울었다. 그냥 울었다. 소리가 나면 소리가 나는 대로 참지 않고 그냥 눈물을 쏟아냈다. 2층에서 일을 하는 내내 1층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그 사람이 죽는소리 같았다. 저 기계들 사이에서 그 사람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다. 단 몇 시간이었는데도 하루가 아니라 몇 날 며칠을 버틴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팀장님, 과장님, 주임님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밥은 제대로 삼킬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혼자 두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차 안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운전석에는 팀장님이 있었고, 조수석에는 주임님이 묵묵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과장님과 함께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밥을 먹으러 가는 길 내내 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흐느낌이 좁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팀장님은 백미러로 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울어도 돼. 괜찮아요.”
그러고는 음악 소리를 높였다. 음악 소리가 울음 위를 덮어주듯 차 안을 채웠다. 과장님은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단단하게. 그 손의 온도가 내 손끝을 붙들고 있었다. 조수석의 주임님은 뒤돌아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묵묵히 곁을 지켰다. 그 침묵마저도 나를 위한
배려였다. 나는 세 사람 사이에서 내내 울었다. 세상이 뿌옇게
흔들렸지만, 그 따뜻한 마음이 그날의 공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밥은 제대로 삼키지 못했지만, 함께 울어주고 함께 지켜준 그 시간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나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었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 억지로 일을 했다. 누가 말을 걸면 목소리는 떨렸고, 웃어야 할 순간에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지만, 그마저도 오래 하지 못했다. 같은 팀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내 자리를 스쳐 갔다. 그 무언의 배려가 더 슬펐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은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집에 가면, 그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서야 한다는 게 겁났다. 그대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 책상에 매달린 채로 버텼다. 눈물이 또 차올라도, 숨이 막혀도, 억지로 앉아 있었다. ‘괜찮다’는 얼굴을 하고 영겁 같은 시간을 버텼다.
그날 밤, 집에 들어와 이불을 덮고 엎드려 울었다. 책상 위의 그 사람 사진이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 말이 위로가 아니라 명령처럼 들려서 더 고통스러웠고 그 말을 따르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고, 그에게 미안했다.
사진 앞에서 나는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
리움이 아니라, 책임감에 짓눌리는 사람. ‘잘 살아야 한다’,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가 어깨 위에 얹혔다. 하지만 정작 나는 부서져 있었고, 그 괴리 속에서 더 미안했고, 더 외로웠다.
2024.05.20.
안녕 내 사랑. 나 회사 갔다 왔다. 도착하자마자 또 뿌잉 했어. 나는 더 슬퍼하고 싶은데 내가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는 건가 싶어. 내 사랑 너무 보고 싶은 내 사랑....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흔들리면 오빠가 옆에 있다고 생각할게. 작은 새가 내 앞에 날아들면 오빠가 왔다고 생각할게. 내가 잠을 잘 자는 날은 오빠가 나 지켜줬다고 생각할게. 맛있는 거 먹을 때는 꼭 오빠도 같이 먹는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내가 오빠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항상 도깨비처럼 내 옆에 슉 온다고 생각할게. 모든 순간에 오빠 생각할게. 친구랑 너무 놀지 말고 나랑도 놀아줘 나랑 노는 게 제일 재밌다고 했잖아. 나도 란 말이야. 보고 싶은 내 사랑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세요. 그리고 그냥 내 옆에 계속 있어, 난 그렇게 믿을래. 사랑해 여보.
그렇게 한 주를 더 다녔다. 매일 아침 회사에 도착하면 숨이 막혔다. 계단을 오르기 전부터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울렁거렸다.
내 자리는 창가에서 멀고, 형광등은 어둑했고, 환기도 잘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주 동안 일을 해냈다.
내 자리 앞쪽은 박스들이 쌓여있는 곳이었다. 그 구석은 어둡고 조용했다. 누가 자꾸 거기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 같았다. 말없이,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의 형체가 그 구석 어디쯤에서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출근을 하고, 일을 시작하지만 늘 내 귀엔 1층 기계소리가 들렸다. 웅웅 울리다가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누군가 소리치는 듯한 고통으로 변했다. 나는 점점 그 기계가 “도와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기계음 사이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느 날엔 계단을 오르다가 구석 그림자를 보고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 사람이 그 구석에 서 있었다. 눈이 아닌, 감각이 그렇게 느꼈다. 그 사람은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 앞을 지나쳐야만 했다. 숨을 죽이고, 눈을 피하고, 그 사람을 보지 않은 척하며 올라갔다.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게 현실인지, 내가 만들어낸 환각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회사라는 공간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밀실 같은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 되어 책상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일주일 뒤까지 일하겠다는 말을 회사에 하고 결국에는 포기해 버렸다. ‘몸이 아파서요.’, ‘정신적으로 무리가 와서요.’ 그런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았다. 그냥 나는 이 세상 어딘가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고, 회사는 그 세상 밖의 세계여서 갈 수 없었다. 회사도
그걸 알아줬다. 상사들도, 동료들도 나를 이해해 줬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일했는데, 살아남지
못한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2024.05.26.
안녕. 나 오늘은 엄마랑 이모랑 우리 집 왔다 갔어. 점심때 파스타랑 피자도 먹고 커피도 한잔하고 왔어. 날이 오늘은 흐렸는데 커피 먹고 나오니까 해가 쨍하더라. 오빠 생각 많이나. 지금도 그냥 꿈같아 꿈 아닐까? 왜 꿈에서 안 깰까. 진짜 너무 보고 싶다 내 사랑. 너무너무 보고 싶어 오빠는 얼마나 억울할까? 이제 나랑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데 하늘나라로 가게 돼서 얼마나 슬플까. 이제 일 안 해도 되고 자유로워서 거기서 행복할까? 나 보고 싶어서 나만큼 오빠도 슬프겠지?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속상하겠다. 나 잘 살고 싶은데 잘 안될 것 같아. 오빠 속상해도 어쩔 수 없다. 나 너무 슬퍼 일도 못하겠고 집에 가만히 있고 싶어. 혼자 있고 싶어요. 아니 다들 진짜 고맙고 미안하다? 근데 너무 슬퍼서 괜찮은 척이 안돼 진짜 안 믿겨 어떻게 나한테서 오빠를 빼앗아가냐 내 전분데 어떻게 오빠가 죽냐. 하루씩만 살아 내보자 버텨보자 하고 어찌어찌 지나간다 시간이. 오빠랑 같이 있고 싶어. 내 사랑 너무 사랑해요, 보고 싶다 진짜 어떡하냐 나.
2024.06.03.
여보 오늘은 치과 갔다가 당신 보러 납골당 다녀왔어. 오늘은 아침부터 너무 눈물이 나서 조금 힘들었어....
거기 걷는데 오빠랑 같이 맨날 걸었는데 이제 혼자니까 조금 많이 슬펐어. 그래서 납골당에서 막 퍼 붙고 막 울고 떼쓰고 왔는데 그게 좀 후회되네. 미안해. 나 그런 거 들어줄 사람 없잖아. 그러니까 속상해도 좀 봐주라 내 사랑. 오늘처럼 힘든 날은 좀 봐줘. 잔소리 금지야....
나도 납골당에 살고 싶다. 부부끼리 같이 그거 유골함 같이하는 거 그거 나도 하고 싶어. 오빠 옆에 있고 싶다. 겁 많은 내 사랑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하는데 못 그래서 미안해. 나는 오빠가 너무 그립다. 진짜 보고 싶어. 다시는 못 볼 내 사랑. 너무 사랑해. 진짜 진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