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에, 나는 가만히 멈춰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가 없는 시간 속에 내가 휩쓸려 사라질 것 같았다.
일상을 완전히 되찾을 수는 없었지만, 살아 있는 내가 남은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침대에만 파묻혀 있지 않으려고 애썼다.
햇볕이 따뜻한 날엔 억지로라도 집을 나섰고,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라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일상이라는 걸 의도적으로 끌어와서, 내 곁에 앉히려 했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도, 나는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몸이 무겁고, 마음이 도무지 따라주지 않아도 나는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도피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버티는 방식이었다.
친구의 생일 파티에도 참석했다. 촛불이 켜진 케이크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면 웃었고, 그 웃는 얼굴이 사진 속에 남았다. 돌아오는 길, 혼자 눈물을 쏟았지만 그래도 나는 갔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집이 제일 가까웠던 친구는 거의 매일 내 옆에 있었다. 혼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듯, 늘 곁을 내어주었다.
어떨 땐 내가 친구 집에서 삼 일을 내리 자고, 어떨 땐 친구가 우리 집에서 삼 일을 묵었다. 그렇게 번갈아가며 서로의 공간을 공유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낯선 집 천장 대신 친구의 숨소리가 들렸고, 밤에 불을 끄면 내 방 안에서도 친구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 덕분에 하루하루가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그 곁에 기대어 겨우 버텼다. 친구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 무너진 시간들을 홀로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그 친구는 나에게 가족이자 방패였고, 무너지는 나를 붙잡아주는 버팀목이었다.
우리는 밤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우리는 다 같이 웃고 떠들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지면 나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사람 생각나.”
그러면 친구들은 대답 대신 잔을 채워줬다. 어떤 날엔 노래를 틀었고, 어떤 날엔 그냥 등을 토닥였다.
혼자 자는 날도 물론 있었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교대로 내 옆을 지켜줬다. 내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누군가는 늘 내 침대 옆에 있어 줬다. 내 동반자 같은 그들은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혼자서만 일어서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납골당에 가는 일만큼은 늘 혼자였다. 친구들에게조차 함께하자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일부러 그랬다. 3일에 한 번, 규칙처럼 찾아가 그 사람 앞에 앉았다.
“오늘은 좀 버텼어.”
“술 마셨어.”
“많이 생각났어.”
그곳은 울음이 허락된 공간이었다. 바깥에서는 애써 삼키고 눌러야 했던 울음을, 그곳에서는 마음껏 터뜨릴 수 있었다. 누구도 눈치 주지 않았고, 울음소리가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있는 장소였다. 집에서는 목구멍 끝에서 막혀 나오지 않던 이름이, 그 앞에서는 저절로 흘러나왔다. 마치 대답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하얀 벽면에 줄지어 놓인 작은 칸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나는 늘 같은 자리를 찾았다. 그의 사진, 차갑게 빛나는 대리석 앞에 앉아 있으면, 처음엔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그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마치 그가 내 곁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고, 고개를 돌리면 미소 짓는 얼굴이 보일 것 같았다. 숨소리조차 들릴 듯 했다.
그래서 계속 갔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몸이 무거워도, 그곳에 가야만 했다.
진짜 그 사람이 그곳에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없었지만, 그 침묵조차 그와 나만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곳에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납골당은 차갑지만 그 안에서 나는 오히려 그 사람의 온기를 가장 가까이 느꼈다.
그 사람이랑 함께 걸었던 길을 친구들과 다시 걸으며 나는 힘을 냈다. 발걸음마다 눈물이 치밀었지만, 그래도 걸었다. 불과 석 달 전, 우리의 신혼여행지였던 경주에도 다시 갔다.
떠나는 길부터 눈물이 났고, 도착해서도 눈물이 났다. 황리단길을 따라 걷는 내내 시야는 흐려졌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도, 내 귓가에는 그 사람과 함께 나눴던 목소리만 맴돌았다.
그럼에도 나는 버텨냈다. 울면서도 걸었고, 가슴이 찢겨나가는 것 같아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람을 추억으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내 안에 그를 좋은 기억으로, 좋은 사람으로 남겨두려 했다. 함께 웃었던 순간, 나를 바라보던 다정한 눈빛, 사소한 농담에도 귀까지 붉어지던 모습. 그런 장면들만을 꺼내어 내 마음에 새겼다.
나쁜 기억은 단 한 조각도 없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좋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모아 버티고 있었다. 좋은 사람으로만,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내 안에 심어두고 싶었다.
2024.06.17.
안녕. 내일 오빠 49 재래. 그래서 오늘 12시에 제사하면 된다고 해서 조금 긴장했어. 조금 이따 햄버거 시킬 려고. 위패 있으니까 그거 두고 하면 되겠지? 우리 남편 햄버거 좋아하니까. 그거 먹고 가라고. 아니 가지는 말고. 혹시 모르니까. 진짜 마지막으로 나 보는 걸 수도 있잖아. 그래서 오늘은 슬프네. 어제는 애들이랑 경주에 다녀왔어. 갈비찜 먹고 왔어. 우리 제일 맛있게 먹었던 거 있지? 맛있더라. 엄청 보고 싶었어. 오늘 이상하게 기분이 이상하네. 오빠 진짜 마지막인가. 아니지? 계속 내 옆에 있는 거 맞지? 가슴이 너무 아파. 나 언제까지 울어야 되는 건데. 나 언제까지 슬퍼? 괜찮아지기는 할까? 너무 보고 싶다 여보.
투정이 늘었네 미안해.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너무 사랑해서. 내가 오빠 엄청 사랑하는 거 오빠가 제일 잘 알지? 오빠도 나 사랑하는 거 내가 제일 잘 알 듯이 말이야. 열두 시 되면 오빠가 딱 올 것 같아서 긴장돼. 거기서 맛있는 거 많이 먹을 테니까 나는 햄버거만 준비한다. 내 사랑 햄버거 너무 좋아했는데. 자기가 잘 먹던 걸로 두 개 사놓을게 많이 먹고 가요. 불쌍한 내 사랑. 너무 아까운 내 사랑. 너무 보고 싶다. 세상에서 내 사랑의 크기가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해요. 내 사랑 다음 생에도 꼭 부부 하자 그때는 꼭 오래오래 같이 살아요. 너무 사랑해. 우주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