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서 시작된 삶 - 섬 제주
내 나이 서른에 2년째 사는 곳은 제주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마을 중에서도 외지디 외진 곳에 있어 가로등 하나 없다. 가끔 읍내에서 볼일을 보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올 때에는 마을에 평생 사셨다는 기사분도 "여기는 집이 없는데" 하다 찾곤 하신다.
집 뒤 초원에는 듣기로 경주마를 기른다는 목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말들의 천성인지 호기심이 많아 부르면 오기도 하고 손길을 허락하기도 한다. 자주 보는 갈색 말의 이름은 철수라 내 마음대로 지었다. 철수는 흰 양말을 세 개를 신고 있듯 네 발 중 세 발에만 흰 무늬가 있어 말들 중에서도 발만 확인하여 금방 알아보곤 한다.
말의 눈은 그 빛이 깊고 오묘하여 보석 같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곧 목소리를 내서 내게 말을 걸 것 같다. 철수의 눈을 바라보며 뺨을 어루만지면 철수가 분명 살아있고 나도 분명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말뿐만 아니라 개 꿈이, 고양이 사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키우는 개의 이름을 항상 내 기준에서 정감 가는, 사실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누렁이, 똘순이, 봉순이, 봉삼이, 또복이, 영식이, 순이 등. 꿈과 사랑은 집에 놀러 온 내 여동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원래 꿈이는 장군이, 사랑이는 영희로 짓고 싶었지만 여동생의 강경한 반대와 긴 가족회의 끝에 꿈과 사랑이가 되었다. 동생에게 고맙다. 내가 꿈과 사랑과 살고 있다니! 그래, 꿈과 사랑과 함께 사는 것이다.
매일 아침 꿈이는 옆집 개들과 함께 말 목장에서 뛰어논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놀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논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말 그대로 바람을 가르며 뛴다. 초원을 뛰노는 개들과 개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다니는 말들. 창가로 그들을 예의 주시하며 나도 언제 한번 뛰쳐나가 저들을 제압할까 고민하는 고양이 사랑이. 이 모두를 바라보고 있으면 숨을 쉬게 된다. 숨을 쉬는 것이 시원하고 상쾌해진다.
밤에 나가 앉으면 하늘에 달빛, 별빛, 풍력발전소의 풍차에서 반짝이는 빛 이 세 개의 빛으로 시야를 확보한다. 물론 턱없이 부족할 때는 집주인이 설치해준 등을 켠다. 하지만 나는 그 적막과 고요가 좋아 웬만해서는 전기등을 켜지 않는다. 높게 자란 풀들을 바람이 쓸고 가는 소리, 목소리를 낮춘 새들의 소리, 어제처럼 비가 온 날에는 개구리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노루 소리, 그 모든 소리의 배경음이 되어주지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가장 웅장한 풀벌레들의 소리. 콧속으로 가득 들어오는 짙은 풀냄새. 과거의 나는 보아도 보지 못했고 들려도 듣지 못했고 맡아도 맡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에 부모님은 오랜 싸움을 멈추시기로 하고 이혼하셨다. 나는 정이 더 깊었던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별 볼일 없는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간 대학은 진작 때려치우고 어머니가 아버지께 받은 위자료로 시작하신다는 사업에 함께 뛰어들었다가 받기 싫다는 데도 억지로 쥐어주는 한 꾸러미의 빚만 받아 들고 주저앉았다.
집과 차를 팔아 발등에 떨어진 급한 빚을 우선적으로 갚고 남은 돈으로 1층에는 중국집, 2층에는 교회가 있는 상가 꼭대기 월세방을 얻었다. 나는 생계를 위해 학원에서 아주 잘하지도 않는 영어를 가르치며 근근이 먹고살았다. 결혼도 하고 이혼도 했다
내 코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무지하고 무모한 어린아이처럼 살았다. 성숙한 어른 흉내를 내기 위해 짙게 화장을 하고 유행하는 옷들로 허리를 조이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진탕 마시고 다녔다. 무엇을 보상받으려는지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들. 가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깊은 호흡이 먼저 필요했다.
분명 나의 삶인데 무엇하나 내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중에도 도통 뭘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지가 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
뒷걸음을 쳤다. 나의 삶에서 처음으로 몇 걸음을 떼서 보았다. 정신이 아득했다.
그리고 또다시 몇 걸음 뒤로 갔다. 그리고 뒤돌았다. 뛰었다.
난 있는 힘껏 도망쳤다.
그리고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