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세브란스, 그 수액 한 방울이 나를 무너뜨렸다"
열여덟 살.
처음 몸이 이상하다는 걸 ‘감각’으로 느끼기 시작한 나이였다. 그때의 나는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오디션 공고만 뜨면 무조건 버스를 탔다.
남들 앞에서는 당당한 척하고 싶었고, 힘든 건 절대 티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발목이 ‘까딱’하며 올라붙는 순간들.
허벅지가 이유 없이 파르르 떨리는 순간들.
대본을 들고 서있다가도 손가락이 이탈하듯 흔들리는 순간들. 처음엔 “내가 긴장했나 보다.” 그다음엔 “허리가 안 좋은가?” 그러다 점점,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몸 안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지하철역 계단에서 다리가 툭 하고 꺾여
한참을 앉아 있었고, 어느 날은 오디션장 앞에서 턱이 덜덜 떨려 물을 들이켰지만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나만 모르는, 어딘가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진짜 지옥은 ‘정답이 없는 시간’에서 시작되었다
병원을 돌기 시작한 건 거의 본능이었다.
동네 병원부터 시작해, 2차·3차 병원을 거치며 혈액검사, 근전도, MRI, CT… 이름도 모르는 검사를 수없이 받아도 결론은 늘 같았다.
“특이 소견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으신가요?"
“젊은 분이 왜 이러지…”
그러는 사이,
나는 날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발떨림 원인’ ‘젊은 여성 발목 까딱’ ‘긴장 아닌 떨림’
‘발목 불수의 운동’...
조합을 바꾸고 단어를 바꾸고, 밤새 검색창을 파고들다 보면 새벽이 왔다. 손목이 아파도 멈출 수가 없었다.
왜냐면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직접 찾아내야 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그 단어 하나가 눈에 박혔다.
파킨슨병.
그 단어를 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설마. 설마 이 병?”
정말 설마였는데, 내 증상은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까딱거림’ '불수의 떨림’ ‘한쪽만 먼저 시작되는 증상’
인터넷, 신문기사, 의학자료…
나는 그날 이후
내 병명을 나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온 세상 자료를 뒤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매일 흔들렸다.
“제발 아니어라.”
“차라리 이거면 원인을 찾은 거잖아.”
두 감정이 번갈아 쳤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정적과 공포 속에서.
그러다 도착한 곳이, 영동세브란스였다
그 병원에 갈 때 나는 거의 마지막 기대를 잡고 있었다.
“그래, 여긴 다르겠지. 여긴 ‘대형병원’이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나는 멈추지 않고 이야기했다. 떨림이 언제 시작됐는지, 언제 더 심해지는지, 오디션 앞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잠깐만요. 이쪽 의자에 앉아보세요.”
그 앞에는 꽤 어려 보이는 레지던트 의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 한가운데 놓였다.
그때 주치 의사가 내게 말했다.
“이걸 맞으면 떨림이 멈출 거예요.”
그 말이 나를 구했다. 아니, 구한 줄 알았다.
나는 그 말 한 줄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제발… 멈추면 좋겠다…”
손목에 바늘이 꽂히고 수액이 들어오자, 기적처럼 다리가 조용해졌다. 딱 5분.
단 5분 동안, 나는 다시 ‘정상’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토록 바라던 고요였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살았다…?”
그 순간은 나에게 너무나 컸다.
그런데—
떨림이 다시 올라왔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리고 의사가 무심하게 말했다.
“아… 이거 포도당 수액이에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팍 하고 꺼졌다. 절박했던 내 심정은 그대로 밟혀버렸고,
나는 마치 병원 안에 갇힌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은 수치심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들은 ‘케이스’를 봤고,
나는 ‘살려고’ 온 사람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벽처럼 느껴졌다.
그날의 공기, 수액 냄새, 의사의 무심한 목소리,
레이스처럼 살갗을 파고들던 굴욕감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병원 행렬…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그 병원 이후에도 나는 또 다른 병원들을 전전했다. 희망을 걸고 갔지만, 돌아오는 길엔 항상 길이 더 어두워 보였다. 수많은 약을 먹고, 부작용에 시달리고, 결국 마도파 단독 복용을 선택하기까지
내 몸은 내 인생의 중심을 빼앗아 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은
나를 멈추게 만드는 ‘예고편’이었다.
그리고 아직 모른 채로 걷고 있었지만,
그 멈춤은 결국, 복음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가장 깊은 멈춤은 몸이 아니라 영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혹시 당신에게도
“그날, 한마디로 무너졌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리고 그 이후, 당신은 어떻게 다시 걸어 나왔나요?
당신의 이야기를 댓글로 들려주세요.
누군가의 밤을 지켜주는 불빛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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