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포럼 _죄인을 친구 삼으신 예수님의 초월적 사랑

<논리로 풀리지 않는 삶>

by 치유 보드미

오늘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가장 크게 마음을 친 문장은 이것이었다.

“문제는 논리로 풀어지지 않는다.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풀어진다.”

나는 논리로 많은 걸 해결하려 했다.

설득하려 하고, 설명하려 하고, 사람을 바꾸려 하고,

심지어 내 아픔도 ‘이해받고 싶어서’ 논리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풀리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꼬였고, 말은 상처가 됐고, 감정은 파편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아주 정확하게 말했다.

“천하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나를 풀어줄 이름도, 내 관계를 풀어줄 이름도,

미래를 풀어줄 이름도 오직 예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 ‘세리 레위’가 아니라 ‘제자 마태’로 부르신 예수님

레위는 당시 기준으로 보면

가장 불편한 사람,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 죄의 체질이 굳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멀리하지 않으셨다.

정죄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단 하나였다.

“나를 따르라.”

레위는 그 한마디에 과거를 끊어내고 마태가 되었다.

이름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재정의된 것이다. 나는 오늘 이 부분이 크게 마음을 울렸다.

“주님, 저도 레위처럼 매일 무너집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다시 불러주세요.”

이 고백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2. 거짓된 사랑과 진짜 사랑을 구별하라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빠진 사랑은 위험하다.”

맞다. 사람을 잃지 않으려고, 관계를 깨기 싫어서,

내 불편함을 감추려고 ‘좋은 말’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것을 덮어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패배였다. 체념이었고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구멍이었다. 진짜 사랑은 죄를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살려내는 것이다. 레위의 옛 체질을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예수의 친구가 되는 것’뿐이었다.

오늘 나는 내 안의 위선, 체면, 감정적 피곤함들을

주님 앞에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가지 진실이 보였다.

예수는 죄인을 친구 삼으신다.

나를,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친구로 부르신다.

3.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신다”

말씀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크게 붙잡은 구절이다.

나는 지금 광야 한가운데 서 있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지치고, 사람들 관계는 부서져 있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라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광야기 때문에 길을 낸다”라고 하셨다.

오늘의 현실은 절망처럼 보이지만, 정말 끝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한 번도 ‘끝’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시작의 자리라고 부르셨다.


< 오늘의 적용 고백 >

• 나는 논리가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문제를 해석하겠다.

• 사람의 말보다 예수님의 부르심 하나를 따라가겠다.

• 관계 속 위선과 감정의 가면을 벗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으로 정직하게 살겠다.

• 예수님이 나를 “친구”라 부르신다면

내가 나 자신을 더 이상 낮게 보지 않겠다.

• 지금의 광야가 끝이 아니라 길의 시작임을 믿겠다.


<오늘의 고백>

“주님, 저도 레위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를 마태로 부르신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만 붙잡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주님을 보겠습니다.”

아멘.


<글쓴이의 한마디>

“지금 당신은 무엇 때문에 지치고 있나요?

그 문제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석해 본 적 있으신가요?”



#예수그리스도 #말씀묵상 #말씀포럼 #김서권목사 #복음의 유일성 #성경말씀 #레위와 마태 #죄인을 부르신 예수님 #영적전쟁 #정체성회복 #그리스도의 사랑 #오늘을 위하여 #예수사랑교회 #초월적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