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영적 싸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서다"
사도 요한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리를 알고, 사랑으로 행하며, 성도의 교제 안에서 영적 싸움을 통해 끝까지 자신을 지키라는 것이다.
생명의 복음은 말에 있지 않고 삶에 있다
1. 사랑과 진리는 함께 간다
사도 요한은 사랑을 말했지만, 죄에 대해서는 한 치의 모호함도 두지 않았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라.” (요일 3:8)
*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복음의 본질은 사랑이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마귀의 일을 멸하는 영적 싸움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
진리 밖의 사랑은 어느 날 시기와 질투, 상처로 변질된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딤후 3:5)
2. 자기 왕국을 세운 디오드레베
으뜸 되기를 좋아했던 디오드레베는 자기중심으로 자기 왕국을 세우려 했다.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이단으로 매도하며 교회에서 내쫓았다.
종교는 언제나 그리스도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한다.
3. 유대교는 왜 고통 가운데 있는가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고 말하는 유대교는 왜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창세기 1장 2절, 흑암, 공허, 혼돈의 정체를 모르고 창세기 3장의 원죄 문제를 외면한 채 자범죄만 강조하여 죄책감과 두려움을 심고 율법과 행위, 헌금만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창세기 6장,
네피림으로 사람의 마음과 계획이 항상 악해졌고
창세기 11장,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약자의 것을 약탈하는 바벨탑을 세웠다.
이들은 의의 원수로서 그리스도의 길을 막았고,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았으며 사도 바울을 심히 괴롭게 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다는 이유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부르며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겠다고 맹세할 만큼 완악했다.
* 이 말씀은 지식을 늘리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삶에서 실제로 싸우고 일어서기 위한 말씀이다.
4. 그럼에도 바울이 끝까지 증언한 것
그러나 사도 바울이 끝까지 증언한 것은 단 하나였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 능력과 응답을 두셨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요 14:14)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 이름을 부르면
죽은 나사로도 살아난다.
5. 종교와 제자의 차이
예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는 것, 그것이 종교다.
무너질 성전을 짓는 것은 종교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전을 세우는 것은 제자를 세우는 일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눅 23:28)
요셉, 모세, 다니엘, 사무엘, 이사야와 같은 후대를 키우라.
6.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성령을 힘입어 더러운 귀신, 강한 자를 내쫓으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자신의 들보부터 뽑아버리고 침상을 일어나라.
7.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결론
온전한 번제를 드려 블레셋을 물리친 사무엘처럼, 임마누엘 하나님 그리스도 이름으로 바벨론을 이긴 이사야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의 피와 능력을 소유하면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곳에 영혼의 치유와 사랑, 평강이 임한다.
아멘.
— 여기서 잠깐 —
지금 이 말씀은‘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영적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왜 이 말씀이 ‘바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말씀’인가
<요한삼서 1:11, 13–15>
사도 요한은 말한다. 선을 본받고 악을 본받지 말라. 말로는 복음을 말하지만, 삶으로는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이 교회 안에 존재했고, 요한은 그들을 분별하라고 경고한다. 진리는 말이 아니라 삶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요한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라.”사랑을 말하는 사도 요한이 죄에 대해 가장 단호하게 말한 구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분명하다.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 심이라. 사랑은 영적 싸움 위에 서 있다. 싸움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디모데후서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겉으로는 신앙처럼 보이지만. 능력이 없는 신앙,
그리스도의 실제 역사가 없는 종교를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멀리하라”고까지 말한다.
능력이 없는 신앙은 결국 사람을 묶는다.
<사도행전 13:10>
바울은 엘루마에게 말한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의의 모든 길을 굽게 하는 자여.” 복음을 막는 영적 정체를 분명히 드러낸 장면이다. 복음은 중립적이지 않다. 진리는 거짓과 타협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16:1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했고, 더러운 귀신은 즉시 떠나갔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그 이름 안에 능력을 두셨다는 분명한 증거다.
<사도행전 19:9>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을 비방하자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웠다. 무너질 종교 체계에 매이지 않고
사람을 세우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제자도다.
<사도행전 17:3>
바울이 증언한 핵심은 단 하나였다.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모든 논쟁의 중심, 모든 박해의 이유, 모든 복음의 결론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이었다.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응답과 권세를 두셨다. 신앙은 막연한 간구가 아니라 이름을 붙드는 믿음이다.
<누가복음 23:28>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예수님은 감정적 신앙이 아니라 후대를 살리는 믿음을 말씀하셨다. 지금의 눈물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믿음을 요구하신다.
<마태복음 12:28>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임하는 통치다. 어둠이 꺾이고, 강한 자가 결박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난다.
<사무엘상 7:7–9>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블레셋을 물리치셨다. 사람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께 전부 드리는 헌신이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이사야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리스도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실제다.
정리하면
이 모든 말씀은 하나로 모인다. 사랑은 진리 위에 서야 하고 진리는 영적 싸움을 포함하며 그 싸움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다.
그래서 바닥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의지가 아니라 지금도 일하시는 그리스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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