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에서 마주한 인간의 한계와 그리스도의 답
율법 앞에서 시작된 진짜 갈등
율법은 나쁘지 않다.
율법은 거룩하고 선하다.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율법을 붙든 ‘나’였다.
율법을 붙들면,
나는 점점 더 잘 살 것 같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결과는 정반대였다.
율법은 죄를 없애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에 숨어 있던 죄를
정확하게 끄집어냈다.
계명을 붙들수록,
나는 더 교묘해졌고 더 스스로를 속이게 되었고, 결국 생명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사망으로 기울어 갔다.
율법은 거룩하지만, 율법은 나를 거룩하게 하지 못한다.
율법은 진단은 하지만, 치료는 하지 않는다. 율법이 드러낸 진실, 율법은 “너는 죄인이다”라고 말해줄 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해결해주지 않는다.
율법은 내 안에
이미 죄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탐욕적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율법은 죄를 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죄가 활동할 무대를 제공한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그러나 그 율법으로 나는 죽음에 이르렀다.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율법 앞에 선 타락한 나 자신이 문제였다.
바울의 갈등, 그리고 나의 고백,
바울은 누구보다 율법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바울이 결국 이렇게 고백한다.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
이 고백은 패배 선언이 아니라
영적 눈이 열린 순간이다.
그는 깨달았다.
자기 힘으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 안에는 선을 원하는 마음도 있고
동시에 그 선을 무너뜨리는 다른 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도하지 않으면 생각에 빠지고
생각에 빠지면 바울은 다시 바울이 된다.
이건 바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사단의 망대와 인간의 한계
사단은 내 밖에서만 공격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내 생각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도 모른 채
같은 자리에 다시 쓰러진다.
사단의 망대는
내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다.
바울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탄식은 절망이 아니라
구원의 문 앞에서 나온 절규다.
답은 오직 한 분, 바울은 답을 찾았다.
아니, 답을 발견당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율법이 아닌 은혜의 법.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
이 법 아래에서는 버티는 신앙이 아니라
이기는 삶이 시작된다.
내 힘으로 싸우지 않아도
이미 이기신 분 안에 들어가는 삶.
결론: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율법을 붙들고 스스로를 고치려 하지 말고,
복음을 붙들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라.
기도는 결심이 아니라 복음에 머무는 방식이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기신 승리에 동참하는 삶.
그때 영적 갈등은 싸워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
사망의 몸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의 삶.
이것이 바울이 살았던 길이고
지금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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