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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May 05. 2021

현대판 귤화위지

복숭아 나무에  매실이 연 사연


 복숭아 나무를 사다 심었는데, 매실이 열려서 송사가 벌어졌다는 뉴스에 귀가 쫑긋해진다.

필자도 이런 비슷한 사연이 있기에 웃어넘기지 못하고 많은 생각이 오간다.

복숭아 나무라고 사서 심었는데, 알고보니 매실 나무여서 묘목상에 가서 블루베리 나무로 변상해 달라고 했단다.

물론 묘목상 주인도 복숭아와 매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그랬을 거다.

 문제는, 블루베리 묘목을 차에 싣다가 묘목상에 고소를 당해 1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법이라는 잣대가 때론 융통성이 없기도 하여,  블루베리 나무 한 그루가 무슨 100만원이나 할까마는 괘씸죄까지 얹혀졌겠지.  

복숭아 나무를 달라고 했으면 법에 저촉되지 않았을지언정 얼토당토않은 블루베리를 가져 가려 했으니 문제가 된 것 같다.

그보다 먼저 서로 양해했으면 그깟 복숭아 한 그루가 문제 될 것도 없었겠지만, 서로 감정이 상했던것 같다.




유난히 복숭아를 좋아하는 나는 복숭아에 대하여 쓴 시를 아래에 소개한다.

밭에서 금방 딴 복숭아를 먹을 때의 그 단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동 시누이가 농사 지은 복숭아를 두 상자 보냈는데,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던 맛이었다. 물론 좋은 것만 골라 보냈겠지만, 그때부터 복숭아 예찬론자가 되었다.



시댁 근처에 상속받은 작은 밭이 있다.

 복숭아 과수원을 하겠다는 임차인이 있어 2014년 초봄 흔쾌히 계약했다.

묘목을 키우는 4년 간은 임대료없고 5년째부터 일년에 임대료 100만원 지불하겠다는 조항으로 10년간 임대차 계약서를 썼다.  

그 때의 계약사항은 일방적으로 임차인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고, 고향에 있는 조카를 통해 연락이 와서 조카가 대리 계약을 했다.

4년이 지나고 5년째 임대료 청구를 하니, 그때서야 복숭아가 아니라 매실 나무를 심었다는 거다.

이런 황당하고 범박한 시츄에이션을 보았는가?

제비도 얼굴이 있고 빈대도 콧잔등이 있는 법인데 이건 어느 지방 법인가.


현대판 귤화위지를 떠올리니 쓴 웃음이 나왔다.

엄연히 복숭아 과수를 계약해 놓고 임의대로 매실 나무를 심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시댁 이웃동네 분이기도 하고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백번 양보하여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임차인도 복숭아 과수인줄 알고 심었는데 몇 해 키우고 나서 매실인줄 알았던가?

그렇다면, 이건 완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와서 눈 흘기는 격이 아니던가.

묘목상에 손해배상 청구해야 하는데, 같은 고장에서 서로 아는 처지라 찍소리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의문이 하나 둘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민다.


 첫해는 임대료를 순순히 부치더니 다음 해는 매실 판로가 없고 농사도 잘 안되어서 어쩌고 하면서 미룬다.

원래 매실은 판로가 활발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지 누구 탓을 하는가.

해가 지나서야 입금하고 이제 매실 농사 안 하겠다고 배를 내민다.

 차라리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응하겠는데, 일방적으로 안하겠다고 하니 임대차법은 원래 임대인만 지켜야하는 법인가 하는 억울함도 없지 않다.

판로는 임차인이 개척해야 하고 농사도 임차인이 정성껏 가꾸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미개봉 중고 새내기란 말이 있다. 20학번과 21학번은 한번도 펼쳐보지도 못한채 대학생활이 끝날수도 있다는 언택트 수업을 빗댄 슬픈 농담처럼, 복숭아 구경도 못하고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간다.

해마다 복숭아 한 상자쯤은 얻어 먹을수 있으리라는 가당찮은  꿈은 산산조각 나고 밭만 망가져서 휑뎅그렁하게 되었다.

그러면 나무를 다 캐 내고 원상복구 해 달라고 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 기간이 엄연히 2023년 가을걷이까지니까 나는 그 임대차 기간을 지켜야 한다.

아퀴를 짓지 않고, 다른 임차인을 구했다가 갑질 논란에 휩쓸리기 싫어서다.

혹시라도 나중에 내 아들이 청문회장에 서는 날이 있다면, 그 어머니의 복숭아 과수원 임대가 문제 될 수도 있으니까.

진실보다 아니면 말고식 마녀사냥이 판치는 세상이니까.

이를테면,

그 어머니는 청바지를 입었고, 운동화는 르까프를 신었고, 모자는 나이키를 썼었다 등등.

내가 자주가는 추어탕 집 아들도 불려 나올지 모르니 아서라, 아예 10년을 손해보고 살겠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옛교훈을 허투루 생각하지 말아야 하노니.

누가 장담하랴! 르까프는 페라가모로 나이키는 구찌로 둔갑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흥, 칫 뿡" "밭떼기라도 있다고 자랑하는거야 뭐야?" 하는 거부감을 갖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죄스러움이 크다.

고사성어 '귤화위지(橘化爲枳)'는 남쪽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로 사람은 환경에 따라 바뀐다는 뜻이다.

현대판 귤화위지는 복숭아 나무 심었더니 매실이 열렸다는 어처구니없는 맷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인 내가 뭔가를 어필하면 내 마음밭만  좀스럽고 민망한 간장종지 될까봐 저 파란하늘에다 썩소만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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