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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Aug 16. 2022

'중(中)'과 '등(等)'의 인문학적 고찰

            ‘중(中)'과 ‘등(等)’의 인문학적 고찰

     

                                                                                               소봉  이숙진     

   ‘가운데 중(中)' 자가 만들어진 원리는 깃발 형상에 표시 부호인 '입구(口) '자를 추가하여 가운데에 있음을 나타냈다. 군대에서 깃발이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한 곳이고 중심이 된다.’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등급 等' 자는 같을 등이라고도 한다. 강등, 고등, 고등고시, 고등법원, 고등학교, 고등학생을 쓸 때 이 자를 쓴다.


   ‘중’과 ‘등’의 품사는 의존명사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중’은 여럿의 가운데, 무엇을 하는 동안, 어떤 상태에 있는 동안, 어떤 시간의 한계를 넘지 않는 동안이다. ‘등’은 명사나 어미 등에 쓰여 그 밖에도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생일에 친구를 초대할 때 엄마가 “영구와 맹구 중 착한 친구를 데리고 와라.” 하면 영구와 맹구를 한정하여 데리고 오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영구와 맹구 등 착한 친구를 데리고 와라.” 하면 영구 맹구를 포함하여 영희와 철수 같은 다른 친구도 착하면 다 데리고 와도 상관없다는 말씀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로 시끄러울 때가 있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거부권 행사로 법 개정이 어려우니, 취임식 전에 허둥지둥 졸속 추진하느라고 참으로 궁색하고 비겁한 모양새였다. 불법 탈당의 꼼수도 썼다.


   그러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완전 원위치 즉 ‘검수 원복’으로 돌려놓는 일이 벌어졌다. 인문학적 해석을 한 장관이 법안에 의존 명사 ‘중’을 ‘등’으로 바뀐 것을 보고 ‘등’을 재해석한 거다. 그러다 보니, 온 나라가 완전히 이분법으로 갈라치기가 되었다. 한 편에선 유도 경기를 관전하다가 한판승이 나올 때의 그 통쾌함으로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을 때 보다 더 우렁찬 환호가 터져 나왔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이의를 달 명분이 없는 분통으로 야유와 저주의 마이크가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내민다.

 

   조선 시대 과거 제도가 요즘 백일장처럼 시제를 하나 걸고 시를 써내던 것을 보면서 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과거 제도로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는데, 이제 얼풋 알 것 같다. 사람 되는데 기여하는 인문학에 이 우주의 철학이 다 들어 있으니까. 아무리 직업 교육이 중요하고 응용과학과 자연과학이 유망하다지만, 대학의 교양과목에서는 인문학이 첫째고 필수다.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공부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경쟁 사회에 살다 보면 실존이 본질을 앞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책은 지식과 교양을 넓히기 위해 만들었으나, 어떤 책은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쓰이기도 하는 경우다.

  4차 산업 시대라도 인문학적 소양은 공학적 소양보다 더 중요하다. ‘부모의 인문학적 소양’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 철학이 있는 부모는 아이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 시중의 논객 중 미학과 출신이 정치 훈수를 두는 것도 인문학의 저력이다. 말을 잘한다고 무조건 훈수를 둘 수 있는 건 아니다. 자기 나름의 정치 철학이 확고하고 신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근간에  '톡파원 25시'라는 TV 프로에 유럽 여행 중 3대 허무 관광지가 소개되자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오래전 유럽 여행에서 벨기에의 60㎝ 남짓한 오줌싸개 동상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잃고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코펜하겐에 80㎝ 정도의 인어공주를 보면서 차라리 우리나라 해운대 공주인어상이 훨씬 크고, 청동색 빛깔이 올리브색처럼 곱고 예쁘다고 일행 모두 입을 모았다. 더구나 로렐라이 언덕 노래를 읊조리며 독일 로렐라이 언덕에 간 일행은 고향 뒷산 언덕만도 못한 것을 보고 또 얼마나 실망했던가.

   음악 교과서에 ‘로렐라이 언덕’이 있어서 여린 감성의 사춘기 정서에 깊이 박힌 까닭이다. 인어공주는 세계적인 동화로 유명하니까 유아 시절부터 인어공주를 들으며 잠들기 때문에 상징성이 더 크지 싶다. 오줌싸개 소년 동상도 어느 조각가의 작품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전설로 전하고 옷을 매번 갈아입히는 관광청의 노력도 볼거리로 작용했다. 실제로 볼 때 얼마나 작고 허무하면 허무 관광지라는 말이 회자하였겠는가.


   예술이 전하는 스토리텔링이 관광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니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우리도 K-관광지에 관한 동화도 짓고 노래 가사도 부지런히 쓸 일이다. 노벨상 작품에 우리 관광지가 소개된다면, 유명 관광지가 될 것은 뻔하다. 어느 구름에 비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벨상이라면 꼭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후보에 오르면,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각종 비리를 들먹이며 비판해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것도 세간에 떠들썩하게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내부 총질과 무엇이 다른가. 경쟁은 국내에서만 하고, 국경을 넘으면 모두 형제가 되어야 한다. 개국 초 이승만 대통령이 강조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만고 진리도 잘 지켜지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은 넓고 경쟁자는 나라 밖에 더 많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자.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라는 정호승의 시처럼 인문학적 사고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는 어떤 사업이든 성공하기 어렵다.

    

   이번에 의존 명사 ‘중’과 ‘등’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문자를 갖고 노는 문단 말석에 한 발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인문학 근처를 배회한다는 뿌듯한 자부심으로 잣바듬히 몸을 젖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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