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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Mar 26. 2023

해파랑2~4코스 달맞이 고개,간절곶, 진하해변

우중의 여인 사 총사 달맞이 고개 가다

  따끈한 침대에서 꿀 잠자고 기지개를 켠다. 창문을 열자 어절씨구 비 님이 오시네. 그러거나 말거나 계획대로 9시에 택시를 탔다. 오늘 일정을 기사님과 상의하게 된다. 용궁사 갔다가 간절곶으로 진하 해변까지 간다니까, 달맞이 고개를 돌면서 벚꽃을 보고 용궁사까지 모시겠다고 친절을 베푼다. 주행 중에도 부산의 명물 아이파크와 엘시티를 소개하면서 일일이 설명해 준다. 부산 홍보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다. 달맞이 고개에 이르자 끝없이 펼쳐지는 벚꽃 터널에 입이 벌어져 턱 빠지게 생겼다.  비가 와서 사진은 못 찍지만, 천국에 들어선 듯 감탄사가 절로 난다. "아, 난 미운 사람 다 용서하겠어." "기사님, 감사해요.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아휴, 행복해라."  "딱 벚꽃 절정에 맞춰서 올 수 있는 나는 분명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좁은 택시 안이 야단법석이다. 채 한 시간이 안 되는 천국 여행이다.

  일단 용궁사 앞에 내려서 아침을 먹으러 한식집에 들어갔다. 임영웅 진짜 팬 집이라 사방 벽면을 임영웅 사진으로 도배를 해 놓았다. 눈으로는 잘생긴 영웅이를  보고, 귀로는 영웅이의 감미로운 노래를 듣고, 황태 미역국은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



용궁사 앞에 나와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옷은 방수가 되지만, 신발이 쫄딱 젖었다. 등산화가 아니라 운동화니, 낭패다.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다가 바지와 신발을 사면 된다는 태평성대 기질이 발동한다.

용궁사 앞에 겹 동백은 조금 과장하면 대접만 하다. 꽃이 너무 크니까 조화 같은 느낌이 든다.



108계단을 내려가니 세차게 굽이치는 파도가 심령다워 숙연해진다. 용궁사 앞 바다는 왜 저렇게 파도를 성나게 하였을까. 뭘 잘못한 나에 대한 꾸짖음인가. 우산이 뒤집어지고 모자가 날아가는 아수라장이니, 하늘이 노하신 건지 바다가 노하신 건지 종잡을 수 없다. 노여움이란 하나의 주체에 대한 관점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진다. 법당에 들어가 삼 배 올리고 초 이기적인 소원을 빌고 나오면서, 나도 나약한 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슬며시 쓴웃음을 짓는다.


너무 세차게 긋는 빗소리에 간절곶까지 택시를 타자고 결정하고, 대기한 기사님과 35,000원에 흥정이 이루어진다. 빗속을 달려 간절곶 입구에 내렸다. 여전히 빗방울은 아스팔트를 뚫을 기세다. 장대비를 헤치고 안전 운전해 준 기사님께 공금으로 쓰다 보니 땡큐팁을 못 드려서 미안함이 가득하다. 빗속에 내려주면서 우리를 걱정하던 그의 마음 씀이 귀하다. 그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 드린다.

우리는 간절곶 쉼터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맙소사! 이게 웬일? 신발 건조기가 딱 비치되어 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다리 안마기까지. 벽면에는 땡큐카드가 빼곡하다.

우리는 비치된 비닐 신발을 장착하고 신발을 집어넣었다. 싱크대가 준비되어 있고 전자레인지와 인덕션과 식수까지 비치되어 있다. 옆에 매장이 있으니 컵라면을 사고 맥반석 계란도 사고 준비해 간 호두 아몬드 차와 생강차도 마시고 식후 커피까지 완벽하게 해결한다.

신발은 보송하게 말랐고 바지도 저절로 다 말랐고, 밖에는 비가 그쳤다. 쓰레기를 종류별로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모아서 컵라면 용기에 담고 일회용 랩을 씌워둔다. 완벽한 쉼터를 만들어 준 울주군 관광과를 엄지척으로 칭찬해 준다.



옆 매장 선물 코너에는 여러 가지가 비치되어 있다. 배낭족에게는 공짜로 줘도 못 가져가니, 예쁜 물건을 봐도 시큰둥하다. 100% 실크 머플러가 오만 원이라는 데도 관심이 없다. 글쎄, 여성성을 파도가 집어삼키셨나?

비가 그친 간절곶 해변은 쌀쌀하지만, 상쾌하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우리 일행은 보송한 신발을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해변을 걷는다. 간절곶 등대와 소망 우체통 앞 포토존에는 사진 찍느라고 줄을 섰다. 이 간절곶 해변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고 한다. 영일만 호미곶보다 1분, 정동진보다 5분 일찍 해가 뜬다고 한다.

진하 해변을 향해 해파랑길을 따라 데크 길을 걷다가  '고래 막썰어(회)센터' 라는 상호가 보여서 '푸흡' 웃음이 난다. 정말 고래고기를 막 썰어 줄까? 막 썰어 준다니 어쩐지 더  친밀한 느낌이다.

예쁜 데크 길을 따라가는데, 산에는 벌써 철쭉이 불붙었다. 바다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지만, 산에도 밀물처럼 철쭉 불이 밀려든다. 이 기막힌 봄을 어쩌랴. 함께 보지 못하여 아쉬운 얼굴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든다.


해파랑길 리본을 따라 진하 출렁다리를 걷는다. 처음에는 출렁다리 난간을 잡고 어정쩡하게 무서워했으나 이젠 두 손 놓고 잘도 다닌다. 이래서 경험이 필요하다. 먼 산에도 꽃들이 희고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 멀리서 당겨 찍어보니 흐릿하다. 산에 꽃 무리가 좋아서 희미함에도 소개하고 싶다. 해안 길 따라 조성된 데크 길이 옛날 철길같이 길게 연결되어 있다. 반경 2미터나 됨직한 하수처리 배관에서 폭포처럼 하수가 쏟아지니 주위가 오염되어 녹조와 검은 기름때가 보기 흉하다. 울산 중공업 단지에서 자체 정화해 내보내겠지만, 바닷물이 오염되어 생물에겐 치명적이겠다. 해파랑길의 유일한 단점이기도 하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곳에 조성된 이 운치 있는 데크가 아까울 지경이다. 조금 더 지나가니 수십 개의 배관이 꽁무니를 드러내고 있다. 공무원이 더 자주 출동해서 조치할 일이다.

진하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 나섰다. 고을 전체가 모텔인데, 그중에 간혹 있는 호텔을 찾아서 들어갔다. "주중이니 객실 두 개 쓰시면 40,000원씩 해서 80,000원에 드릴게요." 앗, 어제보다 이만 원이 더 저렴하니 쾌재를 부른다. 일단 방을 보니 넓어서 좋고, 침대가 싱글 두 개라 좋고 욕조가 있으니 금상첨화다. 다니다 보면 욕조 있는 숙소 찾기가 어려운데,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싹 가신다. 그런데, 저녁 먹으러 나가기가 어설프다. 귀차니즘 사 총사는 치킨을 배달시키기로 한다. 호텔 주변에 페리카나 집이 있다고 한다. "양념 하나 후라이드 반을 주문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내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후라이드 다리만 납시셨다. 양념만 좋아하지 후라이드는 잘 안 먹는 데다가, 밑간이  되지 않아서 조약돌 삶은 맛이다.

그러나, 어쩔티비?

창문을 열고 끝없이 밀고 썰며 바닷물을 정화하는파도를 바라본다. 이 파도 앞에서 시시포스의 노동을 논하지 말라. 오늘 이 사소한 문화충돌을 순화시켜 저 파도에 실어보내리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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