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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Mar 25. 2023

해파랑길 1코스 오륙도 해맞이 공원

 기다림에 지친 동백이 빨갛게 멍이 들었네

  해파랑길 트래킹 깃발이 올랐다. 1코스인 오륙도 해맞이 공원부터 시작이다. 여행 베낭을 다 꾸린 전날 밤부터 설레서 사진을 한 컷 남긴다. 여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베낭은 미니멀해진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수원역에서 일행을 조우하니 여행 멤버 넷은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만난 임보다 더 반갑다.  승객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인지 아직은 '예스 마스크'다. 자갈치시장에서 회를 먹겠다는 야무진 생각은 시간 관계로 접고, 부산역 지하 1층에서 나름 가성비 양호한 한식으로 해결한다.


  부산역에서 시내버스 27번을 타고 오륙도 스카이 워크앞에 도착한다. 바로 공원 앞에 내려주니 편리하다.

 

   공원에는 빨간 동백꽃과 노랑 유채꽃과 꽃창포가 절정이다. 이런 꽃을 보고 나서 누구를 미워할 수 있을까. 지금 이후로 모두 용서해 줄 요량이다. 언제 마음이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내 마음은 꽃을 닮아가니, 어쩌랴.

  비록 어느 순간에 지고 마는 허망한 아름다움일지언정 이 기막힌 봄의 사치를 마음껏 즐길수 있는 여건이 뿌듯하다.

오륙도는 다섯 개인가 여섯 개의 섬이 있어서 오륙도라고 한다.

우리는 공원을 지나 이기대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바다를 낀 해안도로를 걷는 발걸음은 가볍다.  여기서부터 '노 마스크'다. 가슴을 열고 마음껏 소금기 섞인 산소를 흡입한다.





처음에는 데크 길이 재미있었는데,  한참을 가도 끝이 없으니, 오르락 내리락에 힘들어하는 일행이 있어서 미안하다. 그러나 여기가 동백섬인 듯 끝없이 동백이 서 있는 걸 보니 여간 재미있지 않다. 동백꽃이 다 졌을 줄 알았는데, 아직 생생하게 꽃을 달고 있으니 우리를 기다린 거라고 근거없이 우기고 싶다. 선운사 동백을 보러 못 간 아쉬움을 여기서 달랜다.

"기다림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이미자가 웃어 젖힐 노래를 크게 질러 본다.


떨어진 꽃잎은 더욱 운치가 있다. 목련은 떨어지면 볼품이 없는데, 동백은 질 때도 사뿐히 내려앉아 맵시를 뽐낸다. '꽃잎이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꽃잎이 내려앉은 건 과연 바람이런가 세월이런가.

 

엄청나지만, 예쁜 해안의 데크 길을 걸어 나오니 멀리 광안대교가 보인다. 걷다 지친 일행의 환호성이 통쾌하다. 땀흘려 걸어보지 않은자는 모를 통쾌상쾌 뿌듯함이다.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를 당겨서 찍어 본다. 어느 숲 속 별나라에 살다가 문명의 나라를 보는 것같다. 멀리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동화속 어느 성같아서 내가 잠시 마법에 걸린 마술 할멈같다. 내가 사는 복잡한 도시도 멀리서보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겠지. 저 불빛 속에서 지지고 볶는 삶일지라도 멀리서보면 이렇게 아름답겠지.



우리는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에서 숙박할 생각인데, 카카오가 잘 잡히지 않고 11,000원 베이스로 끼고 미터기대로 계산하면 약 사만 원 정도 된다는 문자만 뜬다. 그러니까 부르지 말라는 뜻이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기가 고양이 뿔 사기보다 어렵다. 우리는 걷기로 합의하고 야경을 즐긴다.


 

  지나가는 어머니들께 수소문하여, 광안리에서 유명하다는 '고마대구탕'집에서 시원하고 구수한 대구탕으로 포만을 누린다.  주중에 관광지는 호텔이나 모텔이나 가격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방 두 개 100,000원이다. 일단 침구가 호텔급이고, 가운도 있고 좁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전혀 춥지 않지만, 새벽에 혹시 추울까봐 전기장판을 깔아두는  배려도 있다. 어쩐지 이번 여행이 잘될 것 같은 예감이다. 펜션에서는 이부자리가 찜찜했는데, 아주 만족이다. 꿀 잠자고 내일을 기약한다.


   


다음 2~4코스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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