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벌리 힐스의 브런치족
베벌리 힐스(Beverly hills)의 브런치족
지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목적지로는 기왕이면 눈부시고 화사한 곳이 좋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는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고 대자연의 풍경과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꿈에 그리는 여행지라 할 만하다.
오늘은 아들의 안내에 따라 로스앤젤레스 부근에 있는 베벌리 힐스 거리를 걸었다.
쪽빛 하늘이 눈만 흘겨도 ‘짱’ 하고 금이 갈 기세다. 이곳 LA에서는 밥은 굶어도 선글라스가 없으면 못산다는 말을 증명하듯 맑은 햇살에 눈이 부셔 홍채가 빠져 버릴 것 같다.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적의 아지트를 범인의 홍채를 인식시켜서 열던 장면이 떠오른다. SF영화가 사실로 다가오니 미래과학은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게 아니라 상상이 실존에 앞선다는 게 맞지 싶다.
그것뿐 아니라 앞으로는 공인인증서 인증이나 금융 결재를 홍채 인식으로 대체한다니 애써 보호하고 잘 갈무리해야 할 신체 일부다. 우리는 톰 크루즈처럼 시커먼 안경을 장착하고 그의 집을 찾아 나섰다. 땅이 워낙 넓은 나라인지라 다운타운 말고는 거의 단층 아니면 3층 정도가 전부였다.
톰 크루즈 외에 제임스 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유명인의 저택을 겉에서만 볼 수 있었다. 역시 고급주택가로 모두가 하나의 성을 연상시킨다.
LA에서도 베벌리 힐스는 행정적으로 독립된 구역이므로 경찰과 학교를 별도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 구쯤으로 학군 때문에 아주 작은 집에 살면서도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많단다. 오나가나 자녀 교육에는 헬리콥터 맘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게다가 거리에는 야자수의 도열이 얼마나 멋스러운지, 그 큰 키가 꺾이지 않고 꼿꼿이 자란 우듬지를 올려다보니 설렘이 배가되어 가을 잠자리처럼 몸이 가벼워진다.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다채롭다.
우리도 모델이 되어보지만, 도시의 규모에 주눅이 들어 마음껏 미소도 나오지 않는다. 잘 산다는 것, 보람 있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행객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친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식당가 테라스마다 식사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거였다. 일요일 정오에 어째서 저렇게 사람이 많으냐니까 아들이 그들 모두 브런치족이라고 한다.
휴일에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다. 휴일을 즐기며 다정하게 나와서 식사하는 모습이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수십 년 부르짖던 아점을 한 번도 성공치 못한 나로서는 일상에서 고스란히 배어나는 그들의 여유가 부럽기만 하다.
"한 번 못 먹으면 평생 못 찾아 먹는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아침마다 곤히 자는 나를 깨워 밥 타령을 하던 옆 사람을 힐끔 곁눈질해 보니 그 큰 키가 작게만 보인다. 나란히 걷기 싫어서 보폭을 좁히자 옷깃도 여미기 전 퉁바리가 나올라는데, 야자수가 흔들흔들 도리질해대니 새파란 하늘에다 ‘참을 인’ 자를 세 번 새기고 말았다.
외식은 불량 식품 취급하면서 집밥만 고집한 남자. 천하에 제일가는 구두쇠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자린고비는 아닐지라도, 여건을 줘도 즐길 줄도 모르는 꼴통 보수라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내가 눈에 콩 꺼풀이 단단히 씌었던 거지. 어디 흔들리는 것이 갈대뿐이랴. 그래도 어쩌겠는가. 뒷담화 한 자락 늘어놓고 나니 박하사탕 깨문 듯 후련하기는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