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천상병 산길

아름다운 소풍 천상병 산길

by 소봉 이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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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펜클럽 문학기행으로 ‘천상병 소공원’을 찾았다. 수락산역 3번 출구를 나오면 오른편 끝 지점 길가에 바로 귀천정이 보이고 그 정자에는 노인들이 한가로이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시비와 육필 원고를 새긴 의자와 시인을 형상화한 청동 등신상이 이채롭다. 자녀가 없던 시인이지만 이곳에서는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이 정겹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 시 ‘귀천’이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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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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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천상병 시인이 생전에 썼던 안경, 찻잔, 집필 원고 같은 유품 41종 203점이 타임캡슐에 묻혀있다. 이것은 시인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 2130년 1월 29일에 개봉된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도로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언덕에 살았던 집터는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키 재기를 한다. 시인이 자주 들락거렸을 수락산 입구는 많은 사람이 찾는 등산로다. 이 입구의 지명이 ‘아름다운 소풍 천상병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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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은 마산중학교 5학년 때 담임교사인 김춘수 시인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죽순(竹筍> 지에 詩(공상 외 1편)을 발표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와 인연이 되고 누구와 사귀느냐에 따른 환경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서울 상대에 입학하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졸업 6개월을 앞두고 돌연 학교를 중퇴하고 가난이 수식어로 따라붙는 문학인의 삶을 선택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푸르른 하늘처럼 비상하는 날개에 스며있는 문학적인 내면의 자유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저녁 명동 유네스코 회관 건물이 있는 선술집에서 대학 친구 강빈구를 만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강빈구는 동독을 방문했던 경험을 말했으며 사심 없이 막걸리나 사 먹으라고 몇 차례 몇백 원을 주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 유명한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북괴 대남간첩사건’이란 죄목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3개월간 전기고문을 포함해 상상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취조를 받고 6개월의 투옥 후에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폐인처럼 생활하다 행려병자가 되어 청량리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당하여서 결국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시 60여 편을 모아 유고시집을 출간하고 나서야 그가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옥고를 치른 지 3년이 지났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소변을 마음대로 볼 수 없어 큰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했다. <그 날은>이라는 시를 읽으면 고문의 은유가 가슴 아리게 슬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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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및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 날은

이제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뒤 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고문을 당하고 나온 시인은 자유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었다. <새>로 상징되는 자유의 화신은 삶과 죽음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육신이 죽어 영혼의 새가 되어 하늘을 날면서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착상은 얼마나 문학적인 상상력인가. 고문을 당하고 폐인이 되었던 천상병에게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이란 여인이 자주 찾아왔다. 결국 72년 목순옥과 결혼하였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결혼 후에도 계속 술을 마시며 가난을 직업으로 삼았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 여사가 인사동 골목에 ‘귀천(歸天)’ 이란 찻집을 열었고, 예술인들이 단골손님이 되어 주었다.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삶을 초월한 시를 썼다. 아래 詩는 <나의 가난은>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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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이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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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3차례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던 시인은 1993년 4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묘지는 의정부 시립공원묘지에 있다. 목 여사도 3년 전에 이 세상 소풍을 끝냈다. 천상병이 떠난 10주년 때인 2003년에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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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대기를 표현한 연극 <소풍>과 뮤지컬 <귀천>이 제작되어 공연되고 있으며, 기일에 맞춰 해마다 천상병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가난했지만 어떤 작가보다 많은 작품집을 출간했으며, 동심의 순진성과 맑고 순결한 서정으로 가난과 죽음, 고독 등을 봄눈 녹듯 풀어준 시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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