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복이 터지는 날)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조간 주우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오잉? 커다란 멜론 상자가 음전하게 문 앞을 지키고 앉았다. 둘째가 보낸 멜론 상자다. 하긴 그저께 수박을 샀더니 허옇게 썩어서 못 먹은 시점이라 무척 반가웠다. 수박 산 마트는 승용차로 다녀서 다시 가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20,000원을 버린 속 쓰림이 아직 남았는데, 어쩜 에미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더운데 외출하시지 말고 시원하게 드세요.'라는 톡이 온다. 속살이 진한 주황색이다. 당도가 믹스 커피보다 높다. 주황색의 당도보다 둘째 마음이 더 달달하여 기분 좋은 며칠을 더운 줄 모르고 보냈다.
오늘도 신문 찾으러 현관문을 열었다.
어머나! 이번엔 복숭아 상자가 쒸익 웃고 중전마마를 기다린다. 역시나 둘째 왕자다. 아직 멜론도 남았는데, 풍요롭다. 복숭아를 한몫 사다 놓으면 상하고 수시로 사려니 마트에 자주 나가지 않아서 불편하다. 이래저래 게을러서 못 사 먹는다. 그런 사정까지 헤아려서 이모님과 나눠먹으라고 보냈단다.
예쁜 마음에 감격하며 조간을 펼쳤다.
오늘의 운세를 보니 '먹을 복이 터지는 날'이라고 써져서 신통방통하다. 자고 일어나서 눈곱도 떼기 전인데, 이모에게 놀이터로 나오라고 전화한다. 얼른 잠옷을 내동댕이치고 나선다. 이모님과 나눠 먹으라는 말이 귀해서 운동기구가 딸꾹질하도록 둘째 얼굴에 분 바르고 연지 찍으며 즐거워했다. 언니가 주는 빨간 자두까지 얻어서 냉장고에 넣으니, 보기만해도 그득하여 포만감에 젖는다.
더우니까 청소는 로봇청소기에 맡겨 놓고 윤홍길 장편소설 <문신>을 읽으며 담뿍 빠져드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우렁차다. 고종 올케가 시골서 옥수수가 올라와서 가지고 온단다. "와우, 나는 옥수수 킬러야. 좋아라. 어절시구 좋을시고!" 거실 바닥은 로봇이 닦아주고 과일은 종류별로 있으니 고종 내외가 와도 걱정이 없다.
자식자랑은 바늘을 몽둥이로, 몽둥이는 전봇대로 키워서 한다는데 자랑도 할 겸 대접할 과일이 많아서 즐겁다. 쇠뿔은 단 김에 뽑고, 호박떡은 더운 김에 먹으라고 미리 하나 남은 멜론을 갈라서 접시에 담아 랩을 씌워서 냉장고에 넣었다. 사촌끼리 모여서 화기애애 왁자지껄 떠드며 먹을 일이 기쁘고 즐겁다. 큰 접시 두 개에 나름 멋을 내어 담고 미리 셋팅을 마쳤다.
룰루랄라 기다리는데, 또 다른 친척 집에 배달 가야 해서 못 들어오니 주차장으로 나오라고 한다. 동작이 너무 빠른 게 탈이다. 멜론을 잡지만 않았어도 그냥 담아 주면 될텐데 해체해 버렸으니~~~.
집에 들어가자고 우기다가 날씨가 호랑이 장가가는 날처럼 작달비가 오다 가다 하고 해는 기울어가고 운전이 위험해서 붙들수가 없다. 결국 옥수수만 받고 빈손으로 보냈다. 언니 불러서 옥수수 나눠주고 둘이서 과일 파티하고 앉았다. 빠릿하지 못한 동작으로 복숭아라도 담아주지 못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든다.
옥수수 킬러는 앉은자리에서 두 자루 먹어치웠다. 풍성한 하루다.
늘 재미로 보던 <오늘의 운세>가 이렇게 딱 들어맞는 날은 처음이다.
오늘의 운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