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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드 May 19. 2018

매일이 똑같고 허무한가요?

일상을 복구하고 충돌을 일으키려면.

Be my B <브랜드 살롱>에서 준비한 북토크, Be my B:ookchoice의 첫 모임!

[ Be my B:ookchoice X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장순 | 별 것 아닌 습관이 만든 별난 일상 ]을 다녀왔다.


원래 항상 쓰던 후기처럼 쓰고 싶었지만, 최장순 CD님이 '남의 말과 나의 말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내가 위로를 받았던 걸 정리하기로 했다. (말을 참 잘듣는 어른이)






요즘의 나는 매일의 루틴에 집중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펴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한다. 이불을 개고 베개를 정리한 뒤 무게를 단다. (몸무게를 잰다 라고 표현하면 어쩐지 부담이 되어, 무게를 단다 라고 물건마냥 표현한다 ㅋㅋㅋ) 물을 한 잔 마시고 앉아서 5분에서 20분간 명상을 하고는 짧은 아침 일기를 쓴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출근.



저녁 귀가. 가방을 건다. 옷도 건다. 화장을 지우고 씻는다. 대화나 할 일들을 끝내면 저녁 일기를 쓴다. 스트레칭을 한다. 취침 (+ 명상앱)


요즘 쓰는 명상 앱은 Simple Habit!



우리 엄마 말대로라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나오면 누구나 할 법한 일들을 사실 나는 삶이 정상적일 때는 거의 하지 않는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의식해서' 하지 않는다. 몸이 찌뿌둥하면 스트레칭하고 그 날 특별히 일기가 쓰고 싶으면 일기를 쓰고 다이어트를 할 때만 신경써서 몸무게를 데일리로 잴 뿐이다. 사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정리도 진짜진짜 못한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보면 이불은 아침에 자고 일어난 대로 아무렇게나 펼쳐져있는데, 다시 몸만 거기 들어가 다시 덮고 자는 수준이다. 옷도 안 걸고 가방도 안 걸어서 애초에 비싼 거, 관리해야 하는 걸 잘 사지도 않는 정도다.


그런데 이런 내가 가장 작은 스텝들에 집중하는 이유는 최근 삶이 통째로 와장창 흔들렸기 때문이다.


어떤 삶에도 지진은 몇 번씩 온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허무가 같이 온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뭐 한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지냈지, 하는 마른 감정들이 온다. 뭐 바뀌는 것도 하나 없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싶은 상한 마음을 끌어안고 있다 보면 '이렇게 해봤자 어차피 똑같은데...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같은 허무와 후회가 남는다.


최장순 CD (Creative Director)님도 언젠가 한번쯤은 나처럼 바보같고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경험을 하셨던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하셨다. 즉,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일이 똑같으니 그냥 이렇게 있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기획자의 습관>을 썼다고 하셨다.  


#클리나멘 = CLINAMEN = 편위 = 위치를 편집하다

매일은 아주 똑같지만 원자의 위치가 아주 조금 바뀔 만큼만 힘을 가하면 충분하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들이 방향을 바꾸는 습관(habit of swerving) 안에 있지 않으면 자연은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않는다.


최장순 CD에게 하루는 똑같은 매일매일이 아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어제 Be my B:ookchoice에서 선물 받은 책 <기획자의 습관>에서는, 그가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 하고 있는 습관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같아 보이는 매일매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도록 노력함으로써 '위치'를 바꾸고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는 아침, 저녁 루틴을 통해 나는 삶을 겹겹이 복구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같지만 매일 다르다. 내가 수십 년간 놓쳐 왔던 '순간'을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오른쪽 위에 이불 귀를 맞추었다. 토요일이지만 회사 행사 때문에 출근을 했는데 스테이플러를 아주 똑같은 곳에, 최대한 문서를 열기 좋도록 찍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것 하나하나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다. 동시에 원자 하나 하나의 위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아주 나답지 않은' 행동이기도 하다.


복구의 과정이 루틴이 되고 습관이 되어, 내게도 원자가 충돌하는 일이 생기기를.




덧. 그 날의 감상 (역시 후기는 후기 다워야 .. )


1. 항상 정말 길어지지만, 이렇게 좋은 대답이 나오기 때문에 놓칠수 없는 #Be my B의 공식 질문.

- 당신이 생각하는 '기획'이란?

(옆에 계셨던 분) 아이가 여섯이 되던 때 일을 그만 둬서 지금 아이가 아홉살인데요. 제가 지금 삶에서 하고 있는 모든 게 기획인 것 같아요. 아이를 지각하지 않게 하는 일, 남편을 꼬셔서 나가서 저녁을 먹는 일 같은 것 모두요.


(보금 #나) 예전엔 기획이란 아주 창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발상을 해내는 어떤 것. 그런데 요즘은 기획이 '정리'에 가까운 일인 것 같다.  각기 다른 직무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아이디어와 자기 직무에서의 걱정들을 쏟아내면 그것들을 잘 정리해내는 것. 그것이 능력있는 '기획자'가 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 Be my B:ookchoice 는 책만큼이나 흥미로운 저자를 모셔서 책만큼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세션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게 첫 번째 세션이었는데 정말 그러했다. 책을 훑어봤는데 저자의 느낌과 책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만약 내가 서점에서 이 책을 그냥 골랐더라면 최장순 저자의 책이라고는 매칭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만큼, 책은 훨씬 쉽게 쓰였다. 실제 뵙고 이야길 들은 CD님은 철덕이셨다. 철학덕후.

브랜딩이 하는 일을 플라톤의 동굴비유로 설명하시는 분을 처음 보았다.


3. 쌓는 것의 중요함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항상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편이다. 졸필이기도 하고, 내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게 뭐랄까.... 알몸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최장순 CD 님의 말과 책에서도 느꼈고 최근 여러 분의 글과 조언으로도 느낀 것. 정리하지 않은 과거는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거의 힘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더욱 더 정리하고 드러내야겠다고 2917번째 다짐. 또 어기면 체벌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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