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중심주의에 대하여
이게 통할까?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이건 통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콘텐츠는 제작은 오래 걸리지만, 제작이 완료되면 배포와 반응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답안지를 제출하자마자 '성적표'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기획에서도 당연히 '독자 반응'을 염두에 두고 기획을 진행하는데, 언론사의 특성상 단기 프로젝트가 많아 정교하게 유저 분석이나 샘플링을 하기가 어렵다.(당연히 분석기법이나 사전조사 등의 방법도 모른다. 기획을 맡고 있지만 '기획'을 할 줄 모른다는 의미다)
대부분 '감'에 의존해서 "이거 될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따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반복해서 기획을 하다 보면, 이 '감'이라는 게 조금씩이지만 늘어서 타율이 좀 올라가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분야가 아니라 어제는 북한, 오늘은 선거, 모레는 맥주 콘텐츠를 만드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매일 만들지는 않지만, 이게 또 뉴스가 적절한 때를 지나버리면 더 이상 뉴스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터라, 타이밍 싸움도 여기서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또 배운다.(심지어 이들은 '뉴스'를 보러 온 사람들이 아닌가?? 서점에 온 사람들에게 라면을 팔아야 하는 숙명인가...)
하지만 덜떨어진 '감'이 말하는 바는 최근 독자의 관심사가 점차 '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네이버'의 영향으로 주류 독자들은 네이버가 선택한 큐레이션에 따라 콘텐츠를 소비(네이버는 활자 중심에서는 아직 왕이다)한다. 첫 화면에 있는 기사는 50~60만 뷰를 쉽게 찍는다.
하지만 점차 독자의 관심사는 다양해지고, 분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 정도를 언급해 보고자 한다.
1.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의 영향
SNS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여기의 핵심은 네트워크라는 점인데, SNS에서 보게 되는 콘텐츠들은 내 친구, 내 지인, 내 이웃이라는 네트워크 내에서 공유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내 경우를 보면 주로 관심사나 흥미로운 콘텐츠를 공유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당연히도 '나에게' 흥미로운 콘텐츠가 타임라인에 많이 노출되며 관심사가 깊어지고 좁아진다. 흔히 말하는 필터 버블 효과다. (많은 언론에서 필터 버블을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취향 선호 집단의 필터는 수많은 정보를 여과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2. 두 번째는 AI의 발전이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머신러닝의 학습효과다. 아기가 없는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육아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비패턴에 맞춰 콘텐츠가 제안되는 건 지금 당연한 추세가 됐다. 사용자의 패턴 학습과 개인화된 콘텐츠 추천이야 말로 독자의 관심사를 다양하게 분화시키고 깊이 있게 만드는 거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빠져보자. 지난해까지 마포 망원동에 살았던 나는 하루하루 바뀌어가는 골목을 보는 게 즐거웠다. (내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 소위 '뜨는' '힙한' 가게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몰개성 한 길이 다양한 개성을 가진 곳으로 바뀌는 게 흥미로워서다.
최근에 회사 동료의 지인이 합정에 만든 '취향관'이라는 곳의 이야기를 들었다. 개관 전 팀 세미나를 했는데 참석을 못해서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가본 것 같다)
기사 하나를 언급하자면.... (중략) 합정 '취향관'은 사색과 대화가 있는 프랑스 살롱 문화를 재현하는 걸 목표로 한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지친 이들이 찾는다.
<관련기사 : “대화가 필요해” 요즘 다시 뜨는 살롱문화 : http://news.joins.com/article/22746947 >
흥미로운 트렌드다.
취향(趣向)은 특이한 단어다. 한자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나 경향'을 뜻하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Taste, Preference 정도로 번역된다. 취향에 맞는 이들이 모이는 것. 뭐가 떠오르는가?
꽤나 나이를 먹은(?) 나는 동호회가 떠오른다. '동호( 同好)'라는 단어는 '어떤 일이나 물건을 함께 좋아함'을 의미인데, 동호회와 취향관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 큰 간극이 있다고 '직감'한다.
동호는 카테고라이즈 된(categorized) 관심사다.
반면 취향은 세분화(segmentation)된 방향(direction)에 가깝다.
이는 동호가 큰 범주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모여서 서로를 보며 안심하고 네트워킹을 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에 반해, 취향은 더 분절된 관심사를 향한 '나'의 지향이 우선되는 거다.
예를 들면 나는 SF 소설을 좋아하지만, SF 동호회에는 관심이 없다. 이는 '모임'이라는 네트워킹의 유무와도 관련이 있지만, 취향의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 남들에 대해서 관심이 적고 내가 좋으면 되는 거다. 특히 SF 중에서도 '테드 창'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 중에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작품이 갈린다. SF를 좋아하면서, 마블의 세계관을 좋아하고, 얼리어답터 기질이 있고, 삼국지와 역사를 좋아하고, EPL의 특정팀 경기를 챙겨보는 것이 나의 '취향'인 거다.
취향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중에 포커스를 둔 분류는 답답하다. 네이버 뉴스의 분류를 보면 정치 / 경제 / 사회 / 생활문화 / 세계 / IT과학 등이다. (우리 회사 부서 분류도 대동소이하다.) 근데 사실 저 분류에서는 취향이 등장하기 어렵다. 내가 SF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으면 과학 카테고리로 가야 하나? 문학 카테고리로 가야 하나? 아니면 SF카페에 가입해서 '어떤 경로로 가입하셨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어야 하나?
유튜브가 현명한 건 카테고리가 없다는 점이다.
유튜브는 홈에서는 내가 본 취향을 중심으로 영상 콘텐츠가 큐레이션 되고, 내가 구독하는 것들만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 똑똑한 건 해시태그(#) 하나로 취향에 맞는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다.
자 글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정리를 하자.
취향 이야기를 한건, 온라인 콘텐츠 시장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취향'을 중심에 놓은 소비와 마케팅이 점점 눈에 띄어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는 저서 <구별 짓기>에서 "취향은 계층에 따라 구분되는 동시에 계층을 구분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취향이 주목받는 것은 계층의 분절화가 뚜렷해 짐을 의미한다.
단지 '색다른' 경험이 아니라 구별 짓기를 원하는 '다른' 경험을 원하는 거다. (여기서 개성의 재발견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역시나 입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취향을 갖춘 계층의 등장은 '지갑을 여는' 시장이 만들어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취향 중심주의
그게 지금 콘텐츠 생산자로서 주목해야 할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주류가 1원을 쓰고, 비주류가 1000원을 쓴다면 주류 1만 명보다, 비주류 10명이 나은 거 아닌가? (1*10000 = 1000 * 10이지만, 관리비용 등을 생각하면 팬 10명이 무관심한 1만 명보다 낫다)
자 다시 내일 뭘 먹고 살지 고민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