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서너 번은 전철을 탄다.
환승하고 또 환승한다.
전철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재미있다.
타자마자 거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남이 뭘 하는지 상관하지 않지만
큰 소리가 날 때는 저절로 그쪽을 향하게 된다.
노약자석에서 들리는 소음이 대부분이다.
영상을 보면서 소리를 크게 틀어 놓거나
크게 통화하는 소리다.
오늘도 사람이 많아 서서 가고 있는데
한 여자 노인이 탔다. 70 중반은 되어 보인다.
탈 때부터 아구구구, 아구, 힘들어.....
과장되게 가쁜 숨을 몰아쉬니
앉아 있던 남자 노인 중 한 명이 일어선다.
이제 여자 노인 셋이 나란히 앉아 가게 되었다.
옆에 노인들은 곱게 나이 든 얼굴에 기품 있는 차림새다.
운전기사를 어디 보내 놓고 모처럼 전철을 탄 사모님들처럼 보인다.
숨이 가쁜 노인이 앉자마자 옆에 앉은 사람에게 계속 말을 건다.
아구구, 나 교사 생활하다 퇴직한 사람인데
요즘 젊은것들이 참 못됐어요.
노인이 앞에 있어도 양보도 안 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다니까요.
애고, 어디까지 가시우? 난 종로에서 동창회가 있어 가지고 거기 간다우.
두 분이 친구이신가 보네. 70은 넘으셨겠고...... 나는 낼모레가 80이라우.
남들은 젊게 보인다고 하는데 나이는 못 속여요. 이제 힘들어서 전철도 겨우 타고 다닌다우.
허억, 요즘 정치판이 아사리개판이에요.
정치하는 것들 보면 복장이 터져요.
김대중이 어떻고, 노무현이 어떻고, 윤석열이, 이재명이 어떻고, 시진핑이 어떻고, 트럼프가 어떻고.....
여러 대통령을 소환하고 끝없이 주절 거린다.
물어 놓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또 자기 말만 한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것마저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다.
이 전철이 빨리 목적지까지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표정이다.
나는 다행히 그 끝을 못 보고 먼저 내렸다.
길벗들 중에도 걸으러 나온 것인지 말을 하러 나온 것인지 구별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길잡이보다 두어 걸음 떨어져서 따라오면 좋으련만 굳이 옆에 붙어서 말을 건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나를 옆으로 밀어붙이고 팔로 가끔 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스텝이 엉켜서 불안정한 걸음이 되기도 하고 너무 밀착되어 답답하기도 하다.
나는 제쳐두고 다른 길벗들과 나란히
정담도 나누면서 걸어오면 좋겠다.
그렇다고 멀찌감치 떨어지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서 일부러 빠른 걸음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면 뒤에서 왜 저렇게 빨리 가냐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답니다.
걸은 지 30분 정도 되거나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나면 잠시 쉰다.
간식을 나눠 먹다가 자연스레 화제가 이어진다.
주로 건강에 관한 이야기 거나 주변 이야기들이다.
내 남편은, 우리 신랑은, 우리 마누라는......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손주 자랑이 한창인 사람도 있다.
배우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밝히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말하는 단어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이 걷다 늘 느끼는 것은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내가 자주 못 나오는 이유가 점점 무릎이 아파서 그래요.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는데
영 좋아지지를 않네. 그런......
나도 조심하느라고 일주일에 두 번만 걸으러 나와요. 애들도 자주 나가지 말라고 해서......
저기 고양이 봐라. 아주 통통하네!
이것 좀 봐요. 며느리가 우리 손주 노는 것을 영상으로 보냈어요.
귀엽지요? 볼 때마다 귀여워 죽겠어요.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
아까 먹은 점심은 별로더라. 인사동에 아주 괜찮은 보쌈집이 있어요.
핸드폰에 저장해 뒀는데..... 여기예요.
다음에는 이 집으로 가요.
이러는 나도 걷다가 사진 찍으려고
길벗들의 말을 끊는 경우가 많다.
걷는 중에 구구절절이 말을 꺼냈다가는
십중팔구 나의 ‘잠깐만’ 소리를 듣는다.
말을 중간에 끊기가 미안하지만
길잡이로서 걷고 찍기를 같이 해야 하는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자마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사람,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다가
시큰둥한 반응에 돌아서는 사람,
잘 듣는 것 같다가 엉뚱한 데로 눈 돌리는 사람,
옆에서 계속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적인 하소연을 풀어내는 사람,
신체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고래도 도망갈 정도로 칭찬을 늘어놓는 사람,
호들갑스럽게 반기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내비치는 사람......
그들뿐 아니라 나도 저질렀을
그 언행들을 반성하며
내일은 관악산 무너미고개를 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