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밟았다

by Anima

매일 걷기에 빠진 요즘은 버스 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

보통 7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면 일찍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불안해서 알람을 5시에 맞춰 놓지만 어김없이 4시쯤에 눈을 뜬다.

다음 날 일찍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는 버릇으로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가 어렵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타지를 여행하며 지에서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아 일찍 일어나는 괴로움을 감수하곤 했다.

아직은 버스 여행이 끌리지 않아 관망하고 있는데 언젠가 시동을 걸긴 할 것이다.


당일 여행은 신경 쓸 일이 없지만 숙박을 할 경우는 싱글룸이 아닌 이상 모르는 사람과도 한 방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덕산과 예산을 돌아보는 버스 여행을 할 때였다.

가끔 이용하는 여행사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신청을 했다.

혼자 앉아 가면 좋겠지만 신청자가 많으면 옆에 누군가가 앉아 가게 마련이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반갑게 인사하고 간식도 나눠 먹고 2인 1실이라 같이 방을 쓰기로 합의했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덕산도립공원, 산책길을 걷다가 온천으로 향했다.

덕산온천은 예로부터 율곡 선생이 효능이 뛰어난 약수라고 언급해서 유명한 온천이고 게르마늄이 함유되어서 피부병, 신경통, 관절염, 혈액순환에 좋은 물이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과 온천에 들어가기 쑥스러웠지만 물이 좋다 하니 탕에 들락날락하며 개운하게 즐기고 나왔다.


여행사에서 지정해 준 식당에서 누룽지백숙을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온천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누구 앞에서건 옷을 훌렁훌렁 벗는 사람이 아니다.

젊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와 사랑한다고 착각한 사람과 있을 때만 허용되는 일이다.

대중이 이용하는 온천을 갈 때는 할 수 없지만

이제 온천도 경험했으니 남 앞에 맨몸을 내놓을 일이 없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내 앞에서 어느새 발가숭이가 돼가지고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같은 여자라도 눈 둘 데가 없어 나는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아니마님, 뭘 그리 부끄러워해요?

같은 여자끼리. 하하.

내세울만한 몸매도 아니고.....

아직 부끄러움을 타요.

아까 보니까 그런대로 몸매가 보기 좋더만요.

우리 나이에 보통인 울퉁불퉁 뱃살도 없고.


그리 봐주니 고맙긴 한데 그녀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맨몸을 보여 줄 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다.

각자 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달라고 한다.

어른이라 재미있는 전래동화를 얘기할 수가 없어 내가 쓴 단편소설집 중에 19금 소설 두어 가지를 과장되게 얘기해 주었다.

어머, 그게 소설이에요? 사실이에요?

아마 70프로는 사실이겠죠?

나머지는 제가 덧붙여 쓴 거고요.

믿어지지가 않네요.

교사가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가 있지요?

어떻게 남편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날 수가 있어요?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렇지......

이건 무슨 반응인가요? 말문이 막혔다.


어쨌든 소설은 소설일 뿐,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 그래도 그렇지. 교사가 그런 행동을, 그리고 그럴 시간이나 있어요?

그때 혼자 영상을 방출하고 있던 텔레비전에서 한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희생당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제를 돌렸다.

참, 저 부모님이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자기들이 풍족했으면 아들이 저렇게 힘든 일 하다가 죽는 일이 없었을 텐데.....

아니, 어떻게 저게 부모 탓이에요? 아니마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저게 부모 탓이냐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 잠이나 잡시다.

그 여자의 역사를 알 수 없지만 무슨 사정이 있기에 저리 화를 낼까?

등을 돌리고 자고 일어나 서먹서먹 아침밥을 먹으러 가려는데 갑자기 어제 그 얘기를 또 꺼낸다.

어제 뉴스 보고 부모 탓이라고 했는데

왜 그게 부모 탓이에요.

말해 보세요?


가정 형편이 좋았으면 그렇게 궂은일 하다가 사고사를 당하는 일이 없었을 거라는 뜻이었어요.

어제 일 가지고 또 왈가왈부할 일인가요? 그만합시다. 미안해요. 말 잘 못해서.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똥 밟았다!

여행을 같이 해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안다는데,

어제 만난 사람 진면목은 몰라도 되는데 알아버렸다.

그날 보고 다시 안 볼 사람이란 것이

참 다행이었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