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냥 말없이 행동하면 될 텐데
나를 알아달라는 듯 한 마디씩 하고 넘어가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이다.
장은 뭐가 잘못됐는지,
내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데
내 마음이 이러니 알아 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 있나.
오늘 집안 남자 친척들과 부부동반 모임이 있단다.
첫 모임에는 가자는 말도 없이 훌훌 혼자 잘 가더니 이번에는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아프다니 갈 수 있겠냐는 물음에 안 간다고,
앞으로도 쭈욱 안 갈 거라고 말했다.
아픈 것이 잘 된 일이다.
장은 남들 앞에 나를 내세우기 싫어하니까.
오래전 공항에 마중 나갔을 때
1년 만에 만난 나를 거들떠도 안 보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던 모습에 서운하여
돌아오는 차 안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내게 사과를 하던 일이 갑자기 생각난다.
남들 앞에서 우리를 느끼지 못할 바에는
그 속에 끼지 않겠다.
부부로 함께 가서 각각 따로 온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임에는 가고 싶지 않다.
여자는 여자끼리 수다 떨고 남자는 남자끼리
술 먹으며 떠드는 모임에는 가지 않겠다.
한 차례씩 돌아가며 모임을 주관한다고 하는데 우리 차례가 오면 할 수 없지만
지금 상태로는 전혀 가고 싶지 않다.
젊었을 때는 주변 사람들 말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했지만
이제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며칠 후에는 시집에 가자고 할 텐데
그것도 안 간다고 해야겠다.
그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는데
나도 아내, 며느리 역할을 잘할 마음이 없다.
그가 하는 만큼 나도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데이트레이더를 한다더니 며칠 사이에
새로운 일을 한다고 다시 밖으로 돈다.
이제는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는 줄 알라 하고 일요일에도 나간다.
나도 일요일 오후에 친구에게 전화 오기로 해서 나갈 거니까
일찍 와서 애들과 같이 있으라고 했다.
장에게 4시 전에 전화가 왔다.
친구 전화는 오지 않았다고 하니
지금 들어간다고 한다.
일이 공교롭게 꼬여 장의 전화를 끊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즐거운 낯으로 들어서는 장에게 친구 전화가 왔다고 하자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몇 마디 서로를 자극하는 말을 하고
서둘러 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다 큰 어른은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했더니
대꾸도 없다.
장은 애들과 같이 먹을 때 애들을 챙기는 법이 없다.
애들 제쳐두고 자기 먹을 것만 챙긴다.
저런 아빠가 다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할 때가 많다.
28에 주성을 낳아 아빠 되기에 그다지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준비가 안 된 채로 아빠가 된 사람이다.
저녁을 먹고 차 한 잔의 담소를 나누고 들어오니
애들은 자고 있고 그는 거실에 있으면서도
문소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시계를 보더니 그제야 자리를 뜬다.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비교적 일찍 들어와서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언제나 그렇듯이
장은 눈이 마주치자 눈을 흘긴다.
그리고 속 좀 썩이지 말라며 안는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나 좀 자극하지 말라고......
어제 애들 데리고 KFC에 가려고 했는데......
하루 지나면 늘 하는 말인데 정말인지
그냥 하는 소린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