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까지 나보고 어찌하라고

by Anima

며칠 전에는 생활 연기의 달인이 나왔다.

늘 설악산이나 지리산 갈 차림으로 오는 남자인데

그날은 압구정 로데오에서 식사를 하고 명품거리를 걷다가 한강공원으로 가니 등산복차림으로 오지 말라고 공지문에 써놓았다.

그런데 댓글도 달지 않고 전화를 하더니 지금 간다고 하는 것이다.


마누라와 같이 오려고 했는데 늦게 준비하는 바람에 싸우다 혼자 왔다는 것이다.

그냥 계속 싸우고 결판을 낼 것이지 오긴 왜 와?

식당 위치를 자세히 알려 줬는데 못 찾아서

몇 번 통화 끝에 마중 나가서 만났다.

‘등산복 안 입고 오셨지요?’라는 물음에

'아, 네.‘라고 답해 놓고도 나타난 모습은

완전군장 도보 40km 실시! 차림으로.

식사 때에도 밥 먹고 왔다고 간단한 음식을 시키더니 국물을 들이켜면서 계속 어허, 어허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식당에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거의 로데오 젊은이들이라 신경 쓰이게 내내 마음에 걸리는 행동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청담동 명품거리에서 눈요기나 하자고 천천히 걷는데 역시 오늘도

딱 내 옆에 붙어서 말을 시키며 걸었다.

한강공원에서도 이리로 가면 앞서 막아버리니 걸리적거려 스텝이 꼬이고 사진도 잘 못 찍겠다. 그것뿐인가? 훈수를 둔다.


오늘 강바람이 세군!

이럴 때는 바람을 등지고 가야 하는데,

코스를 정할 때 바람을 안고 가지 않게 해야 돼요.

네? 제가 바람 방향까지 파악하라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강풍이 부나

매일 걸으면서 그런 것까지는 못해요.

이 정도 바람이야 겨울이니까 할 수 없지요.

허~참, 길잡이가 그런 것도 파악해야지요.

그러면 어허님이 길잡이 하세요.

바람 방향도 잡고, 바람을 등지고 가게.

평지 길잡이에게 바람방향까지 고려해서

코스를 정하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산악회에서 고산을 다니다가 무릎이 부실해져서 하산한 사람이 완전 등산복차림으로 나와서

풍향도 고려하라니 부담스럽다.


며칠 전 응봉산을 오를 때까지 좋았다.

역시 부인 있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또 마누라님 얘기를 꺼낸다.


우리 마누라도 이런 데 나와서 걸으면 좋을 텐데

안 나오려고 해요. 다리 아픈데 뭐 하러 걷냐고.

집에서는 내가 연극배우예요.

맛없어도 맛있다고 하고, 안 예뻐도 예쁘다고 하고,

안 그러면 골치 아프거든. 매일이 연기지, 뭐.

어허! 참 좋다! 여기는 처음 와봐요. 좋네!

와아, 참신한 생각이신데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좋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가정 평화가 유지된다면 좋지요.


호탕하게 웃으며 연기를 하며 산다는 말에

신선한 느낌으로 다시 봤는데

두 번째 나와서 실망을 주는 어허님,

다음에 또 나올까? 싫다, 싫어!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