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속은 쓰리지만

by Anima

처음 길잡이를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해 주었다.

자주 걸으러 나오는 아니마가 드디어 길잡이를 한다니 반갑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선배 길잡이가 ‘이렇게 어려운 길잡이를 택하셨다니 앞으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잘 해내기를 바란다’고 덕담인 듯 걱정인 듯 건네는 것이다.

걷겠다고 나온 사람들보다 앞서서 정해진 길 가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지 하고 의아했다.

물론 길치며 방향치에다 공간 지각능력이 떨어지긴 한다.

처음 가는 길은 남에게 묻기도 싫어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은 길을 찾으니 매번 길이 어긋나면 모로 가도 목적지만 가면 된다고 느긋하게 마음먹기도 해서 길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침이 튀는 방향으로 갈까 하다가

감각으로만 제대로 찾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신기하다.

그래도 길잡이를 하려고 나선 것은 내 체력에 맞는 길이 많지 않고 길잡이들이 자주 취소를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취소 없는 길잡이를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길벗들이 내게 요즘 초심을 잃고 있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한다.

처음에는 참가 인원을 제한하지 않았다.

전날 저녁에 마감했다가 당일 아침 8시 전후로 마감한다고 했다가 며칠 전부터 나를 포함해서 8명만 같이 걷기로 했다.

인원 제한을 하지 않았을 때는 2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주로 도심이나 가까운 수도권을 걷는데 많을 때는 20여 명과 같이 걷기도 해 복잡한 곳에서는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걷기 전 매식을 하면서부터 주로 맛집을 예약하거나 좁은 노포식당을 갈 때 인원 제한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무조건 나를 포함한 8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한눈에 파악하기도 쉽고 식당에서 두 테이블을 차지하면 딱 맞기 때문이다.

걷기 전 매식이 원칙인데 때로는 식사 후 가겠다,

메뉴가 입에 안 맞아서 집에서 먹고 간다고

나중에 합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심지어 참가 댓글도 안 달고 나타나 같이 걷겠다고 오는 사람,

지금 전철 탔다고 문자 하나 틱 날리고 오는 사람,

15분 늦어서 지각비 1,000원 내라고 하자 그냥 가버리는 사람,

대놓고 밥만 먹으러 왔다고 몇 걸음 걷다가 가버리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걸을 때는 알만한 사람들인데도 번잡한 곳에서도 꼭 좌측통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기도 해

한 줄로 우측통행을 하라고 해도 다시 좌측으로 걷는다.

왜 그럴까? 이해하려 들지 말자.

모자에 선글라스 끼고 배낭 메고 몰려다니는

무리는 십중팔구 걷기 모임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막내딸이 묻는다.


엄마, 길 가다가 보면 모자 쓰고 배낭 메고

등산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 다 엄마 같은 사람들이지?

나는 도심 평지라 등산복, 등산 배낭 안 메고 다니는데?


그래도 몇 사람이 등산복 차림으로 다니면

다 그렇게 보여.

아마 엄마가 평상복 입고 다녀도 다 그렇게 볼 걸.


글쎄 말이다. 도심 평지라 운동화만 갖춰 신고 등산복 차림으로 나오지 말라는 데도

있는 게 등산복이고 편하다고 늘 그렇게 입고 나오더라.

심지어 고궁나들이도 당장 설악산 갈 차림으로 온다니까. 같이 다니면 나도 좀 기분이 그래.


솔선수범이 아니고 나의 원래 차림새가 평상복에 운동화, 일상 백팩이나 크로스백이고,

웨딩드레스만 아니면 된다고 하니 내 길에 오는 길벗들의 차림새도 다양해졌다.

사진을 찍을 때도 아무래도 차림새가 좋은 길벗들 중에서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찍는다.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앞에 있는 인물들이 입성과 표정이 좋지 않으면 사진도 잘 나오지 않는다.

처음 나오는 사람이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예뻐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니 인사치레라도 기분이 좋다.

처음 시작할 때 길잡이 선배가 우려했던 바를 직접 겪으면서도 길잡이를 그만두지 않는 것은 그래도 길벗들과 걸으면서 얻는 즐거움이 속 쓰린 일보다 많기 때문이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