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보다 더 한 외로움

by Anima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와이셔츠는 안 다리고 자판을 두드리는 심정을 아는가?

시간이 있어도 와이셔츠는 안 다린다.

다리기 싫다. 그것이 전부다.

어제 자기 전에 부탁한 대로 국수나 비벼주면 된다.

아침부터 웬 국수, 메뉴를 말해 주니 편하긴 하다.

어제 한참을 소란스럽던 아이들은 아빠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안 자더니 어느새 침대 발치에 널브러져 자고 있다.

자다가 문이 열린 틈으로 바람이 불어 얇은 이불을 끌어올려 주다가 아예 잠이 깨어버렸다.

밤늦게는 아이들 재우지 않고 뭐 하냐고 잔소리고

새벽에는 잠자지 않고 뭐 하냐고 잠결에 한마디 던진다.

그럴 시간에 와이셔츠나 다리지 하고 싶겠지.

장은 집에 오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내가 자판 두드리는 것은 영 못마땅해한다.

글 쓰는 아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구 때문에 시작했는데......

하기야 이것도 글이라고 큰소리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어제 처음 한 소리는 ‘배 고파. 밥 줘.’ 이뿐이다.

경상도 사나이도 아닌데 한마디 하고 끝이다.

그런 다음에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본다.

남편 노릇 잘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 역시 점수를 매긴다면 50점이나 될까?

적어도 아빠 노릇은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에게는 관심 없는 영역이다.


남편 구실 안 해, 가장 노릇 안 해, 아빠 역할 안 해......

점점 갈수록 나만 노력한다는 말조차 피곤해진다.

어쩔 수 없는 사고의 차이, 인식의 차이로 돌려버리니 편할까?

아니, 편하지 않았나 보다.

어제 잘 때 남몰래 흘린 눈물의 의미는......

이제 아이들 앞에서는 울지 않지만

아예 말라버린 것은 아닌가 보다.


아직도 장에게 일말의 기대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가끔 그가 안으면 싫을 때가 있다.

입을 맞출 때 싫다.

이렇게 살리라 생각을 못했건만,

그도 이런 삶을 꿈꾸지 않았을 텐데......


표면적으로는 평화스럽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말을 하려다 멈칫한다.

할 말이 있어도 길게 말하지 않는다.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하려면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 전에도 진지한 대화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웃고 가끔 현실의 난관 앞에서 운 것 외에는.

이미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편하다고 생각하겠지.

그가 꿈꾸는 삶은 스트레스받지 않는 편한 삶일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주고받지 않으려고 대화를 점점 줄여가고 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있다.

내가 대화 끝에 말이 통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그는 끝까지 따라다니며 마음을 풀어주려고 하는 것.

그래도 그는 내게 해줄 것이 없고 나도 바라는 것이 없다. 이것은 행복이 아니다. 비극이다.

친구야, 결혼하지 않은 친구야!

내가 소개해 만나고 있는 친구야,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행복한 연애만 해라.

가끔 느끼는 외로움도 결혼하지 않은 외로움이 더 나으리라.

월, 수, 금, 일 연재